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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재영 Nov 25. 2020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프롤로그



내가 북성로에 살게 된 것은 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1984년이었다. 부모님과 여동생뿐이던 나의 가족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결혼하지 않은 세 삼촌들로 늘어났다. 첫 손녀인 나를 유난히 예뻐했던 할아버지는 몸의 절반이 마비된 채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고, 맏며느리이자 집안의 유일한 며느리인 엄마는 대가족의 살림을 도맡느라 초췌해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집에서 행복했다. 나를 사랑해줄 어른들이 많다는 것도,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고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당이 있다는 것도, 지하실부터 옥상까지 집 안 곳곳에 숨을 데가 많다는 것도 좋았다.


북성로에는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플 때마다 엄마에게 끌려가다시피 들어갔던 소아과도, 병원을 나온 뒤 보상처럼 주어지는 유부초밥을 먹었던 분식집도, 나이 지긋한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들어가던 카바레도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것이었다.


북성로의 부조화는 식민지 시절엔 일본인의 거리였고 한국전쟁 당시엔 전쟁의 포화가 피해 간 지역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동네가, 모든 집이, 모든 건물이 그런 모습인 줄 알았다.





북성로에 살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겨우 서른 살이었다.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성을 공유하는 집에서 홀로 다른 성을 지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엄마는 할아버지의 한약을 달이고 간병을 했다. 할아버지가 완전히 거동을 못하게 된 뒤에는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병 수발을 들지 않을 때에는 대가족의 식사를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어린 두 딸의 육아도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큰삼촌과 둘째삼촌은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왔다. 두 삼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가족 구성원은 일곱 명일 때도 있었고 여덟 명이나 아홉 명일 때도 있었지만, 한 사람이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노동을 전담하는 상황은 언제나 같았다. 명절이나 경조사에 세 고모들이 각자의 가족을 이끌고 찾아오면 엄마는 더욱 바빠졌다. 가족들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화투를 치고,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주방을 향해 외쳤다. "재영 엄마, 그만하고 이리 와." 하지만 엄마가 그만할 수 있도록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엄마는 운전을 배우고 싶어 했고 같은 지역에 사는 친언니를 만나러 가고 싶어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웬만해선 며느리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집처럼 편하다'는 관용구대로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 엄마는 집을 비워선 안 되었다.



어느 저녁, 나는 1층에서 엄마를 찾고 있었다. 주방, 거실, 할아버지 방, 삼촌 방, 화장실, 마당까지 차례로 둘러본 뒤 2층에 있는 부모님 방으로 올라갔다. 아직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가 거기에 있는 것이 의아했다.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엄마는 불 꺼진 방에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웅크려 앉아 있었다. "엄마, 뭐 해?" 전등을 켜자 엄마가 말했다. "불 꺼. 나가." 나는 방을 나온 뒤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겁이 났다. 엄마의 목소리가 차가워서가 아니었다. 말끝에 묻어나던 울음기 때문이었다.





집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북성로를, 집 안팎으로 다크 헤리티지가 넘쳐흐르던 그 장소를 떠올려야 했다. 나는 일제 강점기의 집과 건물 들이 늘어선 골목을 걸어,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졸업생의 초상이 걸려 있는 학교에 갔다.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고 반공 노래를 부르면서 고무줄놀이를 했다. 그리고 날이 저물면 성이 다른 한 여성에게 무급의 노동이 집중되는 가부장제 만연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모든 기억은 이제 하나의 질문이 된다.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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