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에필로그
이 책에 등장하는 집들은 내가 그곳에 살지 않았다면 지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쓰였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여전히 북성로 집 마당에서 무화과를 따먹는 아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외로운 전학생이다. 트럭 조수석에 몸을 싣고 서울의 북쪽을 떠도는 이주민, 나의 공간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애쓰는 비혼자다. 그 정체성들이 모여 나의 취향과 불호와 사고방식을 형성했다.
내 욕망의 많은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도, 적어도 일부는 내가 살았던 곳에서 비롯되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욕구, 고정된 성 역할을 거부하는 마음, 자기만의 방과 나의 자리에 대한 애착처럼.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내가 뭔가를 알게 되는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현재의 집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이곳을 영원히 상실한 다음일 것이다. 아직 이 집은 한 시절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