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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재영 Nov 25. 2020

아등바등 애쓴다는 것

집을 고치던 날



나흘째 되는 날 저녁, 나는 큰방의 벽을 칠하고 있었다. 두 번이나 페인트칠을 했지만 지긋지긋한 붉은 꽃무늬가 여전히 드러나 있었다. 밥을 먹고 세 번째 페인트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니 낯선 남자가 방 안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페인트가 묻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서 있는 나와, 온갖 도구로 난장판이 된 방을 쳐다보다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세요? ”
내가 되물었다.
“그쪽은 누구세요?”
그는 전 세입자의 남동생이었다. 지방에 사는 그는 친구
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왔다고 했다.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누나가 자신의 집이 비어 있으니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전 세입자는 여동생이나 집주인 대리인에게 아무 설명을 듣지 못한 것일까? 그가 알려준 전 세입자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서로의 상황을 모르고 있을 뿐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자기소개를 하고 상황을 설명하자 그녀는 갑자기 반말로 고함을 질렀다.


“당신이 뭔데 내 집에 함부로 들어와? 당신이 뭔데? 주거 침입으로 신고할 줄 알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집주인의 허락을 받았는데요.”
정확하게는 ‘집주인의 대리인’과 합의한 것이지만 뒷말을 생략해도 그녀가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더욱 흥분했다. ‘집주인’이라는 단어가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누가 ‘집주인’이야? 내가 ‘집주인’이야! 거긴 아직 ‘내 집’이라고!”

나와 같은 세입자이면서 ‘집주인’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니 혼란스러웠다. 두 세입자가 다투는 이런 상황이 아니라도 누가 이곳의 주인인가? 소유자인가, 거주자인가? 흔히 말하듯이 소유자만이 집주인이라면 언제나 세입자였던 나는 한 번도 주인이 아니었던 사람, 집 없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그녀는 “내 집”, “나가”, “주거침입”이라는 세 마디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내 말을 가로채기도 했지만, 그녀의 여동생이 부탁해서 내가 이사 전부터 월세를 내고 있다는 사실과 그 기간 동안 집을 수리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을 겨우 전달할 수 있었다.


“수리?”
여자가 의아한 듯 말했다.
“그 사람들이 웬일이래? 내가 화장실 문짝 좀 바꿔달라고 했을 때에는 들은 척도 않더니.”
나는 집주인이 수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비와 노동력으로 하고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여자는 내 말을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나서는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쪽이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아등바등 집을 고치고 있단 말이야? 월셋집을? 누구 좋으라고?”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히스테릭한 웃음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나는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대답했다.

“사는 동안은 내 집이니까요, 월셋집이든 전셋집이든.”




다음 날도, 다음다음 날도 페인트칠을 했다. 일주일 째 되던 날 롤러를 집어던지고 바닥에 누웠다. 팔, 다리, 어깨, 허리,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추운 곳에서 땀을 흘린 탓인지 몸살기가 밀려왔다. 전 세입자가 이 집에서 보냈던 불운의 시간이 허공을 떠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달리 나는 이 집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집 안 어디에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아등바등 집을 고치고 있단 말이야?”


‘아등바등’이라는 표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무언가를 이루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양새’라는 의미였다. 돌이켜보니 아등바등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사는 것을 비참한 일로 여기면서 건성으로 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동안 가족들은 나의 몫까지 아등바등 살았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몸부림을 밟고서 서울행 기차를 타고, 학교를 다니고, 집을 구하고, 글을 썼을 것이다. 내가 지낼 공간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간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순간이었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이 집이 온전한 나의 집이 되리라 믿었다. 내가 바꾼 공간이 이곳에서 보낼 나의 시간을 바꾸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일상의 모든 것이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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