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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Jul 26. 2023

구두쇠 남편과 산다는 것

“오빠는 정말 스크루지야.” 남편과 살면서 깨우쳐 가는 아쉬운 진실이다. 운동화만 8켤레가 있는 사람이 있고, 반면 신발 하나를 사서 닳을 때까지 신는 사람이 있다. 신발도 여러 켤레 바꿔가며 신어야 오래 신을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한 켤레를 오래 신는 게 좋다는 생각이 부딪친다. 옷도 마찬가지다. 옷장에 옷이 가득한 사람이 있고, 한 칸으로 정리되는 사람이 있다. 눈치챘겠지만 앞쪽이 나고, 뒤쪽이 남편이다. 나는 취미가 쇼핑일 정도로 물건 사는 걸 좋아하고 일상에 다양한 물건을 두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남편은 필요한 물건은 하나씩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가능한 가성비를 챙긴다.


이런 문제로 우리는 신혼집을 꾸밀 때 다툴 일이 꽤 있었다. 남편의 돈 씀씀이가 나만큼 크지 않다는 걸 알기에 10만 원 정도 수준의 책장 링크를 보냈다. 정작 내가 사고 싶었던 건 USM에서 나온 220만 원짜리였다. 그런데 남편은 책을 꽂을 용도라면 이것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며 2만 원짜리 책장을 보냈더랬다. 신혼집 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집이었다. 20년 된 오피스텔에 살며 어떤 리모델링도 하지 않았고, 작은 냉장고에, TV도 없다. 그러니 책장 하나만큼은 좋은 걸로 사고 싶었는데, 2만 원짜리 책장? 신혼 공간에 대한 로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남편을 통해 세상에 ‘물건’이 주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10년도 넘은 대외활동 때 입은 티셔츠와 입사키트로 받은 백팩을 여태 견고하게 입고 메고 다닌다. 가죽 지갑을 해질 대로 해져 이제는 실밥도 보이고 가죽 특유의 번질거림을 잃은 지는 오래다. 혹자는 오빠의 이런 모습이 ‘진짜 멋있다’고 까지 이야기한다. (남편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

구멍 난 발망 셔츠, 몇 번 밟힌 느낌의 골든구스… 이런 빈티 나는 스타일이 패션 코드로 자리 잡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내 마음을 남편은 알까?


다행히 남편의 스크루지 잣대는 나를 향하지는 않는다. 각자 용돈에서 살 수 있을 만큼만 사면 된다. 생일날 룰루레몬 요가 바지를 사 오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절약쟁이 남편과 함께 살며 나 또한 시간에 따라 가치가 줄어드는 소비의 즐거움을 조금씩 잊어보려 노력하고 있다. 대신 갖고 있던 물건의 쓸모를 발견하고 제대로 써본다. 이전처럼 돈을 썼다간 돈을 못 모을 거 같으니 나로서는 노력할 수밖에 없다.


도저히 좁힐 수 없다고 생각했던 소비의 차이는 함께 살며 좁혀지고 있다. 우리의 비슷한 점이 우리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면, 이러한 차이점은 상대를 조금 더 이해하고 나아가게 해 준다. 만약 나와 똑같은 성향의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금세 빈털터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과 살며 나는 미니멀리즘의 편안함을 배웠고, 덕에 옷이나 가방, 신발을 고르느라 드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을 만나 새로운 세상이 열렸듯, 남편에게도 그런 순간이 열렸으면 좋겠다. 때론 멋진 옷을 입어 기분이 좋다거나, 좋은 신발을 신고 발걸음이 가벼워지거나 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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