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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May 06. 2024

가벼운 여행

우리 부부는 대형 캐리어를 갖고 있지 않다.


늘 가볍게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여행동안 입을 속옷과 최소한의 옷, 세면도구, 책 정도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선다. 짐을 싸는 데까지는 당일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여행은 마음이 가벼워야 하기에 ‘가벼운 여행’이 좋다. 꼭 필요한 거라면 여행지에서 사면 된다.


우리의 신혼여행도 그랬다. 포르투갈로 떠나는 2주 간의 여행에 소형 캐리어를 각각 한 손에 들고 갔다. 주위에서는 신기해했다.


“신혼여행은 주위 사람들 선물만으로도 꽉 차는 거 아니야?“
”유럽에서 쇼핑 안 했어?“


주위 사람들의 칭찬일 리 없는, 쇼핑도 안 했냐는 선의의 참견 혹은 조언을 들으며 나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생각의 큰 변화는 없다. 첫 본격 여행인 신혼여행부터 마음 홀가분한 여행이어야 했다.

“정말 쇼핑을 위해 남은 일정을 마음 부담 가득하게 넣었을 거야?” 그렇게 물으면서.


작은 캐리어로 떠난 떠난 포르투갈에서 우리의 마음가짐만큼 발걸음도 참 가벼웠다.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 단출함을 즐겼다. 세수 후 캐주얼한 셔츠 하나를 걸쳐 입고 숙소를 나선다. 길거리에 파는 에그타르트가 눈에 띄면, 에그타르트를 하나 입에 물어 도우루 강에 앉아 맛있게 먹는다. 그렇게 길을 나서다 동네 주민이 권하는 진자주(전통 체리주)를 먹으며 ‘얼마나 일하셨냐, 너무 맛있다, 직접 담그시냐’ 등의 수다를 나눈다.


또 길을 걷다 생맥주를 파는 노포가 나오면 지중해 햇살을 누리며 시원한 목 넘김을 하는 거다. 그렇게 남편과 별말 없이 ‘아 진짜 행복하다’를 외친다.

책도 읽고 수다를 떨면 짜릿하게 행복해진다. 몸이 가벼운 만큼 생각도 자유롭다.


어디를 들러서 무엇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강박감도 벗어날 수 있다. 누구도 우리말을 잘 모르고 누구도 우리를 모르니 더 자유롭게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 정갈한 여유를 햇살과 함께 나른하게 느낀다.

리스본, 포르투, 신트라... 동네가 익숙해지면 부담 없이 작은 캐리어를 손에 끌고 떠난다. 가벼운 몸차림은 여행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즈음 짐을 어디에 맡겨놓아야 할지 걱정이 일지도 않는다. 가볍게 떠나 더 가벼워져 돌아오는 여행. 무리 없이 복귀할 수 있는 단출함은 덤이다.


여행은 결국 비워내기 위해 떠나는 것 같다. 살며 생기는 고민과 잡념, 불안함을 털어내고 다시 가벼워져서 돌아온다. 그렇기에 가볍게 여행에만 집중해 떠나는 우리의 방식이 좋다. 봄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는 어딜 또 떠나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작은 캐리어 하나면 여행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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