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현관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의식’이 있다. 남편은 이 방식이 자리 잡으면 시간을 단축해 효율적일 것이라 했다. 처음에는 이런 의식이 유난이다 싶었다.
남편이 밖에서 집으로 들어가기까지의 프로세스는 이렇다.
1. 엘리베이터에 타면 ‘닫힘’버튼을 먼저 누르고, ‘층수’를 누른다. 이렇게 해야 집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뒤에 탈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파악한다.
2.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에게 집에 가면 우선하여 집중할 역할 분담 한 가지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내가 야채 씻는 동안, 규리가 쌀 씻어 안쳐줘”등이 있다.
3. 엘리베이터에 내려서 현관문까지는 서른 걸음 남짓인데, 이동하면서 재킷과 마스크를 한 겹씩 벗겨낸다.
4. 현관문의 앞에 서면 극도의 집중력으로 문 앞 여덟 자리 비밀번호를 틀리지 않게 누른다. 대충 눌렀다가 틀리는 경우를 한 번 봤는데, 효율적인 프로세스에서 약 5초를 늘린 자신의 실책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이 인간, 여기에 진심이구나’ 깨달았다.
5. 현관에 들어오면 마스크 걸이와 차 열쇠 걸이, 지갑 수납함이 문에 설치되어 있다. 남편은 미리 벗어둔 마스크와 차키, 지갑을 순차적으로 건다. 마스크 걸이 4개 중 본인 자리는 2번, 내 자리는 1번으로 남겨둔다. 나머지 2개는 손님용이다. 수납함에 각자의 지갑을 올려두면 현관에서 신발을 벗을 ‘자격’이 생긴다.
사실 처음에는 장난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각 프로세스에 진심을 실어 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속는 기분으로 이 ‘현관문 프로세스’에 임해주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평소 내 습관이 있다 보니 지갑을 재킷에 그냥 두거나, 마스크를 거실에서 벗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별 이야기 없이 내 루틴을 조금씩 자신의 프로세스에 젖어들게끔 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외출할 때면 당연하게 지갑이나 마스크를 문 앞에서 챙기고 있었다. 외출 전에 뭘 두고 가는 건지 늘 신경을 쓰고는 했는데, 기본적인 것들이 현관에 세팅되어 있으니 물건을 까먹고 외출하는 일이 없고, 낭비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소 장황한 현관 프로세스는 이제 합이 딱딱 맞는다. 이 글을 읽고 저 부부, 독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가 집으로 들어가는 이 의식들이 좋다. 집이라는 공간에 들어서기 전 우리가 함께 하는 의식. 거기엔 일종의 같은 프로젝트를 앞둔 한 부부만의 경쾌한 리듬감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