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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독일에서] 내 이웃의 사생활 _ 3

내 주말을 망치러 온 나의 이웃, 우리 집의 파괴자

by 노란대문

"드르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륽"

들어 본 적도 없는 드릴 소리가 천장을 온통 뒤덮었다. 귀를 마비시킬 정도였다. 눈송이가 소란스럽게 내리기라도 하는 것일지 귀를 의심하며 창문도 연신 내다보았다. 마비된 것은 귀인가 뇌인가.


20시가 다 된 시간, 해는 이미 진 지 오래, 눈 덕분에 밝은 거리는 말도 안 되게 고요했다. 그래 이건 내 이웃이구나. 또 다른 이웃이 행동을 개시했다. 아, 인생이란 이런 것일까. 다람쥐 쳇바퀴처럼 문제 하나 해결하면 약간의 행복, 그리고 또 다른 문제의 분분한 등장. 이번엔 어째 느낌이 쎄하다. 왕을 만나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아니 근데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윗집에 리모델링하면 어떻게 견뎌내시나요? 이걸.. 견뎌요?




머리 위를 온통 헤집어 놓던 드릴 소리와 망치질 소리는 꼬박 두어 시간을 성실하게 채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만 음악의 풍류와는 결이 다른 것이 한 켠에 잊고 있었던 우리 건물 왓챕방이 폭발할 듯 메시지가 밀려들어왔다. 그동안 소소하게 "계란 남는 사람?" "나 DVD재생 기기 빌려줄 사람?" 등등 귀여운 질문과 대답만 오고 가는, 소포 맡아놨다 찾으러 오라-는 메시지만 한가득인 평화로운 뽀로로 동산에 "누가 공사하니? 나 돌아버려"라는 메시지가 올라온 것이다.


나 말고도 돌아버릴 사람이 또 있다는 안도감(?)과 아닌 밤중에 이 난장은 무엇인가 하는 황당함도 몰려왔다. 그러나 충격은 지나갔고 고요함은 지속적이니 또 너른 마음인척 이웃의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어쩌면 갑자기 새로운 가구를 조립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혹은 갑자기 상부장이 떨어졌다던가, 작동이 안 되던 드릴을 오늘 고쳐 왔다던가, 혹은 별자리상 오늘이 내 이웃의 손 없는 날이라던가(?) 등등등. 그래. 그런 날도 있는 거겠지.


나도 벼르고 벼르던 옷장이 집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기뻤다고. 식탁도 오고, 책상도 오고. 심지어 이삿날은 엘베가 없는 집에 이삿짐을 옮기느라 계단을 온통 끙끙거리는 소리고 채우고 집에도 물건을 쿠당쿠당 내려놓고 그랬을 거다.


이케아 가구들이 조립이 손쉬운 거 같지만 막상 하려고 들면 끝이 없다. 가구 조립 할 거라고 했더니 당장 전동드릴부터 빌려주던 회사 동료가 있었고, 어 괜찮은데- 하며 사양하며 받은 꾸러미에는 생전 본 적도 없었던 공업용 드릴이 들어있었다. 게다가 망치도 없는 집에 망치부터 못이며 줄자며 온갖 것들이 들어서고 나서야 겨우겨우 조립을 할 수 있었다는 눈물 없이 쓸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그때 다른 이웃들도 말은 안 했지만 얼마나 고통이었겠는가. 출근을 목전에 둔 직장인인지라 아주 이틀 동안 '우에에엥' 거리며 드릴질도 했었다. 지금 되돌이켜보니 다른 이들의 배려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러니 나도 어느 정도 넘어가야지. 이게 더불어 사는 세상이지 뭐.


끝도 없이 올라오던 왓챕도 대답 없는 '소음의 근원지'에게 "조심해 주면 좋겠어. 나 너무 놀랬어"라는 다른 이웃의 메시지로 끝이 났다. 심증으로는 윗집이지만 근원지를 찾는 다른 이웃들의 질문에 딱히 말을 얹지 않고 그렇게 왓챕이 끝나게 두었다. 내 딴에는 배려였고, 뭔가 '고발'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마침 찾아온 주말, 아침부터 두더지 집 헤집는 드릴 소리가 성실하게도 울렸다.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던 내 계란은 예고 없이 울리는 드릴소리에 '으악-'하는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착지했다. 물론 계란이 비명을 지른 것은 아니고. 놀라면 온몸이 용수철처럼 튀는 것은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일까. 완벽하게 터져버린 계란 노른자를 닦으며 생각했다.


성실하다. 말도 못 하게 성실하게 주말을 보내는 내 주말의 파괴자여. 흥이 붙었을까. 이제는 뭔가 다른 기계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 그냥 집을 나섰다. 빵이고 뭐고, 계란이고 뭐고. 피하고 보자. 건물을 나서며 나의 윗집의 창문께를 흘끗 보는 것이 그날 나의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공사소음과의 동거 아닌 동거는 인간을 점점 예민하게 만들었다. 몇 달을 감내했냐면 6개월. 정말 장하지요? 반년을 참았다. 주말을 꽉 채우는 소리와 평일 밤낮으로 울리던 그 소리를. 내가 두더지였으면 정말 스트레스받아 온몸의 털이 빠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빰빰 거리는 음악소리는 금세 이야기 하러 가놓고 왜 기계소리는 오래도 참았는가 하면, 이유가 있었다.


우선 '그만해 달라'라는 말로 단순히 멈출 성질의 소음이 아니기 때문에. 기계까지 구비해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제가 증말 죽겠으니 그만합시다'라고 항의한다고 해서 그만둘 것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집을 고치는 '리모델링'이라면 당연히 계획한 순간에 도달해야 소음이 멎을 것 이기 때문에 항의를 한다고 해도 의미 없는 협의점을 찾기 위한 노력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는 강력한 제지를 통해 멈출 것이 아니면 소소한 항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외부적 요인을 통해 제지를 가할 때 '이미 협의했다'라는 내용이 있으면 나는 영원히 털 빠지는 두더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소음의 근원지인 이웃은 결단코 왓챕방에 들어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른 이웃들이 소음이 날 때마다 꾸준하게 '그만 좀!!!'이라고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했기 때문에. 그러니 나는 나대로 독일식으로 승부를 보기로 결심했다. 드릴소리에 못 이겨 머리를 부여잡고 있자 '이건 기록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문서화되었을 때 힘을 발휘하는 문서와 기록의 나라. 독일. 이런 게 반가울 때도 있구나.


표를 만들었다. 어느 날, 언제, 어떤 소리가 어떤 음량으로 나를 미치게 했는지 차곡차곡 자료가 쌓였다. 녹음본과 영상본도 차곡차곡 쌓였다. 그새 새로운 기계가 온 것일까 대패질 소리까지 추가되었다. 온갖 산업장비가 그득 들어차 있을 그의 집 문을 두드릴 용기는 한 톨도 없었기에 관리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제가 소음 때문에 죽겠어요. 그리고 비둘기 때문에도요


그래. 내 윗집은 비둘기를 키웠다. 가끔 환풍기를 통해 구구구 하는 소리도 들렸다.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나 고양이도 키우는데 비둘기가 뭐, 조류도 키울 수 있지 암.


근데 비둘기를 사랑하니 다른 애들에게도 마음이 쓰이겠지. 내 이웃은 먹이를 창가에 가득 얹어두었다. 윗집에 가득 쌓인 먹이는 도시의 비둘기들에게 그야말로 구글평점 5점에 빛나는 맛집이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고 소화가 잘 되었는지는 내 창가에 떨어진 먹이들과 그들의 배변과 그들의 깃털로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도시의 온갖 비둘기에게 사랑을 베풀자 비둘기들은 나에게도 그런 것을 기대했다. 아니 우리 건물의 모든 세입자에게 기대했다. 심할 때는 건물이 온통 비둘기에게 점령당한 것만 같았다. 아니, 근데 집 보러 올 때는 이런 기미가 없었는데 왜 1년이 지나고서야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윗집도 소리소문 없이 이사 들어온 집일까?


여하튼 창가에 앉아 터벅터벅 걸어 다니는 비둘기에게 '제발 우리 집 창가는 앉지 마셔요'라는 의미로 쓱쓱싹싹 반짝반짝 닦으며 생각했다. 아, 두더지로 살기 힘들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웃을 거치지 않고 바로 관리자에게 연락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비둘기와 눈 마주치는 창가와 드릴로 뒤덮인 천장은 두더지도 행동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독일 생활 팁!


집에서 생활 소음 이상의 공사소음이 발생하는 작업의 경우, 작게는 이웃에게, 지속된다면 건물 관리인에게 신고해야 합니다. 신고되지 않은 공사는 벌금이나 경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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