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비둘기 같이
구구구, 구구구
비둘기가 창문께에서 걸어 다니고 있으면 기분이 어떠냐고요? 어 쫌, 현실 안 같고 그래요. 방충망 찢길 거 같고, 실수로 문 열고 들어올 거 같고. 우리 집이 온통 탐색당하는 거 같고. 막 창문 톡톡톡 찍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거 같다니까요.
자고 일어난 아침 따사로운 햇빛을 기대하며 커튼을 제쳤을 때 나를 마주한건 네 마리의 비둘기들이었다. 소문난 윗집에 밥 먹으러 온 비둘기 선생님들. 여기는 그 집 부지 아니라니까요. 저리 가세요. 훠이훠이. 간신히 날려 보내고 온갖 흔적들로 뒤덮인 창가를 보며 조금 울먹였다. 아. 인생 쉽지 않다.
우리 집은 하우스 페어발퉁(Hausverwaltung)이라 하는 관리자가 있는 곳이다. 집주인은 따로 있지만 건물을 부동산에 관리를 맡기고 집주인은 월세만 받는다. 즉 부동산이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는 것이기에 문제가 있으면 거기다가 바로 이야기하게 된다.
비둘기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드릴이 이제 천장을 뚫을 것 만 같아질 무렵- 소음이 시작되고도 4개월 만이었다. 첫 번 째 이메일이 쓰였다.
"제가 비둘기랑 소음 때문에 사는 게 힘들어서 연락해요."
놀랍게도 답장이 순식간에 날아왔다. 비둘기 먹이 문제는 다른 사람의 항의로 문제의 세입자에게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한두 달 경과를 보고 연락 주세요!
간단하고도 명료한 이메일과 힘찬 마지막 느낌표. 정말 명료한 사람이로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게다가 누군가 이미 비둘기 먹이 문제로 부동산에 이메일을 넣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이야기였다. 아하, 여기가 비둘기 맛집인 게 괴로운 게 나 하나만은 아니었구나. 약간의 안도와 이제 좀 나아지겠지 하는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이틀 뒤 시작된 주말아침의 드릴 알람 덕분에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여하튼 먹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주의를 받은 듯, 매일같이 뷔페처럼 풍성하게 놓여있던 음식들이 좀 줄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 꼴로 먹이들이 내 창문께까지 흩뿌려져 있는 것을 보아 짐작할 요소였다. 하지만 두더지의 귀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다. 드릴질과 망치질은 나날이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비둘기 러버의 먹이 줄이기 프로젝트는 한 달을 채 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날마다 배불리 먹던 비둘기들이 먹이가 있던 없던 매일 같이 찾아와 지붕과 창문을 톡톡톡 두들겨대었으니. 누군가에겐 공포가 누군가에겐 애처로움이었을지도.
이렇게 타단- 두 달이 지났습니다. 뷔페는 다시 개장했고, 윗집에는 또 다른 기계가 예열을 시작했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아랫집 두더지는 탈모가 생길 지경이었다. 스악샥- 하는 대패질 소리와 와랄랄랄 하는 드릴소리, 콰앙콰앙 하는 망치소리와 뭔가를 쾅쾅 내려놓는 소리. 우웅우웅 하며 기계 돌아가는 소리아 온 집안을 울리자 귀와 뇌가 마비되어 모든 것이 있지만 하나도 정확한 것은 없는 인터넷 세상을 그야말로 누비고 다녔다.
공사소음이 지속될 경우 세입자가 받을 수 있는 보상,
소음으로 인한 피해 보상
월세 감면의 타당한 이유
부동산에 이메일 보낼 때
월세 감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변호사의 필요성
등등
이렇게 검색내역에는 부동산을 압박할 방법만 한가득이었다. 두 달이 지나고서부터는 부동산에 쓸 이메일의 초안을 계속 작성했는데, 작성하는 족족 공격적인 어투가 나도 모르게 계속 스며들었다. 보다 못한 친구가 '솔직히 싸우자는 거처럼 보여. 그렇게 쓰면 안 될 거 같아'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이럴 거면 월세를 이만큼 감면하겠다'라는 선전포고를 굵은 글씨로 계속계속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이성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월세 감면 이야기도 슬쩍 밀어 넣고, 어떤 변호사가 이런 재판을 했더니 이런 판례가 있다더라 라는 정보도 밀어 넣은 이메일이 작성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이 집에 계속 살고 싶고, 부동산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 집에 관한 모든 사항은 당신이 전문가임을 인정한다. -라는 문구로 시작했다. 월세 이야기를 굳이 넣은 것은 부동산이 하루빨리 행동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럽겠지만 그렇게 망치에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나는 주말마다 받고 있어요-라는 강한 항의이기도 했고.
예상대로 부동산은 득달같이 답변을 보냈다. 물론 우리 집 관리인이 항상 빠른 답장을 하는 명료하고도 성실한 사람이긴 하지만, 유달리 빨랐다. 출근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답장부터 날아왔으니.
'월세 감면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라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법적으로 이야기할 거면 서로의 변호사가 대화해야 할 거다라는 으름장도 한번 나와준 뒤 시간을 주면 반드시 해결할 테니 시간과 정보를 더 넘겨달라는 내용이었다. 소음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겠다. 리모델링은 신고된 바가 없으니 공사소음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에 이어 마지막은 '우리 관계를 악화시키지 맙시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어있었다.
당연히. 나도 원하는 바였기에 얼른 답장을 써 내려갔다.
시간도 법도 권리도 전문가의 판단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고요함을 되찾는 것뿐이라는 내용과 우리 관계가 이 일로 인해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 그리고 윗집이 리모델링 중이라면 언제까지 내가 참아야 하는지 정보라도 달라는 이메일이었다. 그동안 작성한 소음 프로토콜과 함께.
부동산은 해결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답장을 보냈고 그날로 윗집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소음뿐만 아니라 비둘기 뷔페도 자취를 감췄다. 내가 혹시 못할 짓을 한 것은 아닐까, 내가 혹시 누군가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앗아가는 정보를 제공한 것을 아닐까, 내가 혹시, 혹시.. 등등의 자책감이 밤마다 어둠을 틈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소심하게 시작된 "와와와와" 드릴 소리가 그 걱정을 뭉텅이로 덜어내주었다. 종종 창가에 떨어지는 씨앗등의 비둘기 먹이들도.
그래. 천장을 온통 내리 부술 듯이 울리는 게 아니라면 종종 들리는 드릴 소리도 참을 만하다. 창가에 떨어지는 먹이들은 뭐 슥슥 밀어내면 되니까 이 정도면 괜찮다. 간장종지만 했던 마음이 그래도 밥그릇정도로는 커진 것 같다. 나 좀 살려달라고 꽥꽥 외치던 두더지도 이제 정신을 차리고 사람 모양새가 되었다. 와와와와 울리는 드릴소리와 쿵치빡치 울리는 음악소리. 사람 사는 소리가 다 이런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난 겁도 없이 주택살이의 꿈을 꾸게 되었다. 하우스에서 살면 이런 일은 없겠지? 하하.. 하지만 또 다른 갈등이 생각지도 못한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다.
사실 지금도 가끔 마음이 무겁다. 내가 예민했을까, 내가 감정을 배설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누군가의 생활양식에 대해 항의할 때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도 꽤나 배웠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내가 내 공간을 인정받는 것은 목소리를 내야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내 눈치를 살펴주는 것은 아니니 감정적으로 변하지 말고 그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이 일련의 사건으로 얻게 된 결론은 그런 갈등의 순간에서 지혜로운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삶의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며 익숙하게 우리 집 창문을 툭 치고 가는 비둘기에게 인사를 전했다. 구구.. 구구구!
독일 생활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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