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상,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만날 때가 많다. 많게는 스무 살, 적게 차이가 나도 예닐곱 살 많은 분들과 일을 한다. 그 가운데에는 알고 지낸 지 오래된 거래처 사장님이 한 분 계셨다. 사무실이 가깝다는 핑계로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점심을 사주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사장님은 우리 아이들의 나이를 물었다.
“초등학교 4학년하고 1학년이에요.”
“아니, 그렇게 어려요?”
“제가 어려요.”
“아.”
대부분 일 얘기만 하던 탓에 거래처 사장님들은 내가 퍽 어리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눈치다. 기껏 어려야 네댓 살 정도겠지라고 여기시나 보다. (일 때문이 아닌가…?) 비단 사장님 얘기만은 아니다. 일로써 만나다가 우연히 나이 얘기가 나오면 상대방이 ‘생각보다 어리시네요.’하고 말하는 뉘앙스를 느낄 때가 가끔 있다.
나이 먹는 게 기대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초등학교 수업 중에 언제 여기를 졸업하나 횟수를 헤아려 보다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왜 그랬지?) 이윽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에 설레었다. (술집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다고!)
그 시절 전지현과 차태현. '엽기적인 그녀' (출처: 하단 참조)
서른 살이 되었을 때는 ‘이제는 술을 마신 다음날이 다르네’하는 노곤한 푸념 속에 ‘내가 사회생활 좀 했지’ 하는 은근한 공감대가 있었다. 마흔이 되고 나면 어떨까 싶었다. 나는 아직도 나이를 먹기를 바라는 걸까. 이제는 세월이 더디게 흐르기를 원하는 걸까.
매번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마다 설렘과 아쉬움이 섞인 감정이었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는 진짜 어른이 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어른들이 겪을 법한 일들을 부단히 경험했다. 꽤나 부딪쳤던 삼십 대였다. 생활 습관이 다른 남편, 안 되는 걸 굳이 우기는 팀장들, 급기야 떼를 쓰는(?) 건물주를 만나 법원에도 들락거렸다. 그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되면 행동으로 옮겼던 것 같다.
후회라기보다는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때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답을 알고 있어도(있기에) 못할 일이다. 이기든 지든 그 끝이 생각보다 후련하지 않았고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세상은 크고 길게 보니 사필귀정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해도 시간에 쫓긴다.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속은 상하지만 내 시간을 아깝게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에 웬만해서는 참고 넘긴다.
이제와 보니 30대에 치이고 쓸렸던 기억들이 많아서 굳이 어리고 초라했던 순간을 붙잡아 두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그때를 무사히 지나와 지금이 있어 고맙지만 가시덤불을 지나오면서 긁히고 쓸린 흔적들은 그 시절 사람들과 가끔씩 꺼내보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