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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Oct 25. 2022

"엄마 음식 맛이 없어!"

요리를 향한 TJ인간의 접근법 

세탁기 돌리는 법을 배운 것은 대구로 발령 받고 혼자 살게 되었을 때였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부모님과 함께 살던 터라 살림을 직접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엄마도 “닥치면 다 한다.”며 크게 말씀이 없으셨다.



요리 역시 그러한 영역이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두 돌 지날 무렵이었다. 아이에게 먹을 음식은 직접 해 먹여야겠다 싶었다. 평일에는 직장 다니느라 바쁘니 주말이라도 요리를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공을 들여 나름 열심히 음식을 차려주었다. 아이는 먹는가 싶더니 주저주저하다가 울었다. 왜 우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맛이 없어. 엉엉 

우는 아이를 보고 할 말이 없었다. 아이고 하는 탄식과 함께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럴 만도 했다. 삽 십 년 동안 요리 한번 안 해본 내가 얼마나 맛있게 할 수 있을까. 레시피대로 따라 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감이 있어야 맛을 살릴 수 있었다.


게다가 아이에게 건강식을 먹이겠다며 밀키트도 마다하고 직접 간 맞추는 것부터 하던 터라 맛이 있을 리 만무했다. 현타가 세게 왔다. 친정에 가서 엄마에게 내가 한 음식을 먹고는 아이가 울었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살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며 토닥이며 간단한 팁 몇 가지를 알려주셨다.


집으로 돌아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을 정리했다. 대단한 요리를 하기보다 기본적인 음식부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잘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 생각했다.


간이 맞으면 음식은 맛이 있다는 엄마의 말을 곱씹으며 내가 한 요리가 왜 맛이 없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로 내 음식은 전반적으로 간이 좀 싱거웠다. 건강을 생각해서 소금이나 간장을 조금씩 덜 넣곤 했는데 저염식이었지만 아무래도 맛은 부족했다.


두 번째로 아이와 가족의 영양섭취를 고려해서 재료를 다양하게 넣는 버릇이 있었다. 양파, 마늘, 대파, 버섯, 당근 등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기꺼이(?) 마트에 가서 부족한 재료를 사 오곤 했다. 채소들은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기에 많이 넣을수록 간이 약해졌다. 또한 특유의 맛이 있는 재료들이 한데 섞이면 감칠맛이 나기도 했지만 조합이 맞지 않을 때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나의 요리 습관 중 하나는 준비한 재료가 쓰다 남으면 어차피 다음에는 못쓸 것이니 그냥 다 넣어버리곤 했는데 그것 역시 요리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문제점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재료를 많이 넣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했다.


그래도 음식 실력이 급격히 좋아지지는 않았다. 온전히 요리에만 집중하기에는 그에 앞선 중요하고 급한 일들이 더 많았다.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음식을 하기보다 그저 얼른 한 끼 먹고 끝냈으면 하는 생각에 배달음식을 시키게 되었다. 또한 둘째가 태어나면서 음식을 직접 해먹여야 겠다는 마음은 점점 안드로메다로 간 듯 희미해졌다. 요리 잘하시는 이모님이 계실 때에는 그래 이걸로 되었지 싶었다.


맛없다고 울던 아이의 모습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음식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불과 얼마 전부터였다.

첫째가 입학할 때쯤 코로나가 찾아왔다.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학교나 유치원에 갔다면 점심까지 먹고 왔을 텐데 집에서 지내다 보니 오롯이 세끼를 챙겨 먹이게 되었다. 돌봐주시는 이모님이 계셔서 여러모로 손을 덜긴 했지만 이모님도 어느 순간 오늘 저녁을 뭘 해서 먹일까요 하며 자주 물었다.


뭘 해서 먹일까에 대한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고급 식재료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아니라 해도 아이들은 입맛에 맞으면 잘 먹었다. 평범한 음식이라도 예쁘게 꾸미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면 반응이 좋았다. 


어느 날 저녁으로 주먹밥을 준비하던 중에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나도 해봐도 돼?” “어? 그래. 비닐장갑 끼고 와.” 아이들은 동그랗게 주먹밥을 만드는데 재미를 느꼈다. 덕분에 평소보다 더 맛있게 잘 먹었다. 이걸 보고 삼각김밥틀을 하나 사 왔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재료를 식탁에 늘어놓았다. 소금, 참기름, 식초로 간을 한 밥, 길게 자른 구운 김, 마지막으로 참치캔에 마요네즈를 섞어 참치마요를 준비했다. 그리곤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은 신나 하면서 삼각김밥틀에 밥을 깔고 참치마요를 올려 삼각김밥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김으로 감싸서 하나의 그럴듯한 음식을 만들어냈다. 단무지나 올리브 같은 반찬 하나만 있으면 근사한 한 끼 차림이 되었다.


첫째는 카레에 하이라이스를 섞은 맛을 좋아했다. 여기에 토마토를 익혀서 넣고 국물이 잘박하게 한 상 차려주었더니 게눈 감추듯 두 그릇씩 뚝딱했다. 둘째는 순두부찌개나 강된장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열이 나거나 감기 기운이 있을 때 갓 지은 밥에 찌개 하나 끓여주면 없던 입맛도 돌아온듯 손뼉을 치고 반겼다. 찌개는 둘째를 위해 작은 뚝배기에 담았는데 식탁에서도 보글보글 끓는 모습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들 반응이 좋았던 음식들은 기억해두었다가 물리지 않도록 돌아가면서 차려주었다. 급하게 식재료를 써야 할 일이 꼭 생기기에 평소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늘 얼마간 재고를 마련해두었다. 여전히 외식과 배달음식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벗어날 생각도 없지만 어느 순간 음식 투정이나 맛이 없다는 말은 사라졌다.


몇 주 전 첫째의 학교 수업참관이 있었다. 부모님 자랑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첫째를 통해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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