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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Mar 30. 2023

아이가 마지막으로 유치원에 갔다

나에게도 끝이었다

"엄마 따라오지 마."


현관문틈으로 고개만 내밀고 한마디 남긴 채 잽싸게 딸은 사라진다.

행여 엄마가 따라올까 봐.


이날을 그토록 기다렸는데 막상 홀연히 가버리는 둘째를 보니 마음이 홀가분하기보다는 쟤 정말 혼자 갈 수 있는 거야 싶다. 첫째가 내 마음을 아는지,

"엄마, 있어봐. 내가 쫓아가볼게. 나 옷 좀 빨리 입혀줘" 하면서 바지를 들고 총총 거리며 뛰어온다. 웃옷도 서둘러 입더니 동생을 뒤쫓아간다.


그토록 기다린 아침의 여유를 즐기며(?) 출근 준비를 하는데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어젯밤 배 위로 슬그머니 올라온 둘째를 안고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내일은 민서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유치원에 가는 날이야. 기분이 어때?"

이라고 했더니 1초도 안되어하는 말. "나쁘지 않아."

그 말을 듣고 빵 터졌는데.


오늘 화장을 하면서 거울을 바라보니 그것은 나에게도 마지막이었던 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그 말을 하지 말걸 그랬나 괜한 아쉬움이 든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에게, "민서야, 오늘은 유치원 마지막 날이니만큼 혼자 가보면 어떻겠니?" 했더니

"어 좋아." 하면서 밥 먹고 난 뒤 혼자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는 이내 등교 준비를 마쳤다.

그러더니 혹시나 엄마 맘이 바뀔까 봐 쏜살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 이 아침에 일어난 [민서 혼자서 등교하기]의 전말이다.


잠깐 감상에 젖어 있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숨을 헐떡이며 첫째가 들어온다.

"엄마, 민서 유치원 잘 갔어."

"어 그랬어?"

"응 내가 따라가면서 계속 지켜봤는데 혼자서 잘 가더라고."

"언니가 오는 거 알았어?"

"응, 유치원 입구에서 뒤를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더라고."

"어 그랬어?"

"응 그래서 나도 손 흔들어줬어."

"응 잘했어."

"어후 걔가 빨리 가서 따라가느라고 혼났네. 숨 차."

"그랬겠다. 물 좀 마시고 숨 좀 돌려.

그리고 은서야 고마워."

"내가 민서 잘 갔는지 봐줘서?"

"어 진짜 고마워."

"응 알았어."


집에서 방학 마지막 날을 즐기는 첫째와도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아이와 늘 걷던 길을 혼자 걸으려니 왠지 어색하다. 담벼락을 따라 걷다가 길을 건널 때쯤 나는 둘째의 손을 꼭 잡곤 했다. 작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좋아서 항상 손깍지를 끼자고 했다.

우리는 아침에 일상얘기를 주고받으며 짧은 등굣길을 걸었다.


생각해 보니 어제가 나에게는 아이와 함께 하는 마지막 유치원 가는 길이었다.

내 인생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마지막 날.


불과 어제였는데 미처 몰랐다. 나는 평소처럼 아이의 손을 꼭 잡았던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순간들. 펑펑 울 정도는 아니지만 좀 서글펐다.


아이가 점점 크는 모습에 기뻐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스치듯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자식이 크는 만큼 부모는 늙는단다."


애가 크면 힘도 덜 들고 좋지 뭘 그러시나 했는데.

세월은 같이 먹는 거였다.

해가 바뀌면 부모나 자식이나 나란히 한 살씩 먹었다.


아이는 성장하고 부모는 성숙한다.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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