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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힘을 다 쓰지 않는 히어로

영화 <원더 우먼 1984>

by 다정 Jan 25. 2025

히어로 영화가 선사하는 쾌감은 영문도 모른 채 일상이 파괴되는 일반 시민들의 당혹감을 뒤로한다. 히어로가 빌런을 무찌르겠다고 완력을 자랑하며 건물을 부수면 그 안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던 누군가가 다칠 테고, 도로에서 싸움을 벌이다 자동차가 망가지면 운전자는 내일 당장 출근길을 걱정할 테다. 주인공이 세상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벌이는 난장판에 주변에 있었을 뿐인 누군가는 일상이 무너진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힘없는 사람들이 희생되는 건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둬도 된다는 태도는 안일하다. 패티 젠킨스 감독이 그리는 원더 우먼은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히어로라서 신선하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처음 인간 세계에서 활약한 원더우먼은 1984년 다이애나 프린스(갤 가돗)로서 인간들 틈에 섞여 살아간다. 66년이 흐르는 동안 소중한 우정을 나누었던 인간 친구들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종종 다이애나 홀로 불의에 맞서곤 하며 예전 모습 그대로 살고 있다.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스티브 트레보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다이애나 앞에 거짓말처럼 스티브(크리스 파인)가 다른 사람의 몸으로 돌아온다. 유일한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게 꿈만 같지만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나중에 인지한다. 세상 모든 욕망을 흡수한 듯한 맥스 로드(페드로 파스칼)와 무시당하며 살았다는 억하심정으로 비뚤어진 바바라 미네르바(크리스틴 위그)를 상대하기 위해 다이애나는 결국 진실을 마주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원더 우먼은 힘의 원천과 힘이 세상에 미칠 영향을 찬찬히 고려하는 히어로다. 은행 강도를 제압하면서 위험에 처한 아이를 먼저 피신시키고, 맥스 로드를 자동차로 뒤쫓는 중 도로 위의 아이들을 구하느라 그를 놓친다.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들도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선에서 제압하려고 늘 신경을 곤두세우며, 영화는 계속해서 그들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해 준다.


심지어 다이애나는 빌런들에게 피해를 입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자신이 가진 힘이 누군가를 사적으로 단죄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통쾌한 액션을 원했다면 절제된 힘의 행사가 재미를 반감시키겠지만, 바로 그 통쾌함을 불편하게 여기던 입장에서는 원더 우먼이야말로 정말 보고 싶었던 히어로다.


<원더 우먼 1984>의 빌런들은 일상의 결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맥스 로드는 사람들의 탐욕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다. 우리는 소원이 정말 이루어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모르는 채로 많은 것들을 바라곤 한다. 그런 까닭에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 치르는 대가를 뒤늦게 인지한다. 맥스 로드는 당장의 욕망에 눈이 먼 사람들을 이용해서 힘을 기르는 빌런이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과 너무 닮아서 빌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핏발 선 눈에서 세상을 실제로 망가뜨리는 더 현실적이고 위협적인 욕망을 볼 수 있다. 약자로서 가졌던 울분을 폭력으로 분출하는 바바라 역시 과거에 겪은 비극이 지금 휘두르는 폭력을 정당화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을 닮아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대규모 영화만이 그릴 수 있는 스펙터클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관객들 사이에서 갖는 영향력의 규모도 다르다. 패티 젠킨스 감독은 히어로 영화가 미치는 영향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여타 히어로가 가던 길을 당연시하지 않은 듯하다. 그 결과 <원더 우먼 1984>는 히어로 영화의 전형을 벗어나 있다. 원더 우먼이 고상한 이상을 좇는 세상 물정 모르는 히어로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일상 중에 만난다면 가장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히어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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