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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Feb 08. 2024

트러블 메이커, 앤 셜리 첫 출근하다.

진땀 나고 아무 기억도 안 났던 선생님의 첫 시간

조용한 에이번리 마을의 트러블 메이커였던 앤 셜리. 그랬던 그녀가 선생님이 되어 돌아왔다.

자기가 다녔던 그 학교.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나름 교육대학 최우수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말이다.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길버트는 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더 큰 도시인 화이트 샌즈로 갔다. 

앤에게는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 1일 첫 출근하는 앤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대화의 배경이

20세기 초 캐나다이니 너무 현실에 대입하지는 않길)


 앤이 한숨을 쉬며 길버트와 제인에게 말했다. "너희는 나보다 나아. 너희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너희들을 모르잖아. 나는 예전에 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린드 아주머니 말씀이 첫날

부터 아이들을 단단히 잡지 않으면 아이들이 존경심을 보이지 않을 거래. 아, 책임감이 너무 무거워!"

"우린 다 잘해 낼 거야." 

제인은 편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제인은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포부 같은 것으로 마음을 끓이지 않았다.

제인이 원하는 것은 월급을 제대로 받고, 이사회를 만족시키고 장학사들이 주는 표창장을 받는 정도였다. 제인의 포부는 딱 거기까지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서를 잡는 거니까., 선생님은 아이들을 혼낼 수밖에 없어. 나는 학생들이 내 말을 안 들으면 벌을 줄 거야."

"어떤 벌?"

"당연히 호되게 매를 맞는 거지."

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세상에, 제인, 설마, 그런 건 안돼"

제인은 단호했다.

"정말이야. 나는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거야. 아이들이 맞을 짓을 하면."

앤도 못지않게 단호하게 말했다.

"난 아이들에게 매는 절대 못 들 거야.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 스테이시 선생님은 한 번도 회초리를 들지

않고도 아이들을 잘 이끄셨어. 필립스 선생님은 매번 매질을 했지만 교실은 엉망이었고. 매질은 안돼. 내가 매를 들어야만 뭔가를 할 수 있다면 학교를 떠나는 게 나아. 더 나은 방법들이 있잖아. 난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게끔 만들 거야. 그럼 아이들도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를 거야."

제인이 현실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따르지 않으면?"

"그래도 아이들에게 매를 들진 않을 거야. 그건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오, 제인 학생들을 때리지 마.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하든 말이야."

제인이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길버트? 가끔은 매가 필요한 아이들도 있지 않니?"

앤이 잔뜩 진지해진 얼굴로 물었다.

"글쎄."

길버트는 자신의 진짜 생각과 앤에게 동조해주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둘 다 일리가 있어. 나도 아이들을 때리는 게 그렇게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내 생각에는, 앤이 말한 것처럼 원칙적으로 아이들을 다루는 더 나은 방법들도 있고, 체벌은 마지막 방법이어야 돼. 또 한편으로는 제인 말

처럼 가끔씩 다른 방법으로는 마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있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매를 맞아야만 잘못을 고치는 아이들도 있잖아. 아무튼 체벌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게 내 원칙이야."



길버트는 두 사람의 기분을 다 맞춰주려고 애썼지만, 그런 노력이 흔히 그러하듯 한 사람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했다. 이후에도 앤과 제인의 논쟁은 계속되는데  선생님이 지시를 했는데 버릇없이 말대꾸를 하는 학생에게 어떻게 하겠냐는 제인의 물음에 앤은 '방과 후에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설명'하겠다고 대답한다. 누구나에게 장점이 있으니 그걸 키워주고 쓰기나 더하기를 가르치는 것보다 옳은 쪽으로 지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앤의 신념은 신임교사로서 열의에 찬 각오였다. 아이들이 나쁜 행동을 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무슨 벌을 줄 거냐는 제인의 질문에 앤은 자신이 필립스 선생님으로부터 당했던 벌을 떠올린다. 그때 받은 벌이 길버트 옆에 앉는 것이었는데 그 길버트가 자신 옆에 바로 있으니 마주 보고 바보처럼 웃는 수밖에. 세 사람이 헤어질 때  제인은

'시간이 지니면 어떤 게 최선의 방법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활은 당겨졌으니 어디로 가든 날아가게 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 당시 사회 분위기 상 '어린이 체벌'은 당연한 문화였고 주변에 나이 든 장년층의 의견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린드 아주머니부터 해리슨 씨까지 앤이 애들을 때리면서 가르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우리의 앤이 누구인가. 그녀는 자신은 분명 다르게 살 거라고 다짐했다.


첫 출근 하는 그날의 '얼어붙은' 분위기



"그날 아침 학교에 가는 길에 앤은..... 평생에 처음으로 자작나무 길의 아름다운 풍경과 소리들이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전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새 선생님이 오실 때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어야 한다고 일러둔 덕이었다. 앤이 교실에 들어서자 '아침처럼 빛나는 얼굴들'과 호기심이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단정히 줄 맞추어 앉아 앤을 맞아주었다. 앤은 모자를 벗고 학생들을 마주 보며, 겁에 질린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들키지 않기를, 그리고 얼마나 떨고 있는지 아이들이 알지 못하기를 바랐다.

전날 앤은 열두 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앉아서,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에게 건넬 인사말을 짰다. 앤은 준비한 인사말을 공들여 고치고 수정하고 외웠다. 아주 훌륭히 완성된 인사말에는 특히 서로 돕고 부지런히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멋진 내용도 들어있었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 단 한 마디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년 같기만 한 십여 초가 흐른 뒤에.... 앤은 잔뜩 움츠러든 목소리로 "성경책을 꺼내세요"라고 말하고는 아이들이 뚜껑을 여닫느라 달그락 거리는 사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지듯 자기 의자에 앉았다. 아이들이 성경구절을 읽는 동안 앤은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어른의 세계로 행진하는 어린 순례자들을 살펴보았다."



앤의 첫 출근은 어느 신임교사의 첫 출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밤새 인사말을 준비하고 그 인사말을 겨우 하려고 하는 데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그런 순간 말이다. 다행히도 앤은 위기의 순간에 '행동하기'보다 마음을 진정하고 '관찰하기' 상태로 자신을 다스리고 책을 읽는 아이들을 하나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한다. 첫날은 아이들에 대해 사전 정보를 파악하는 것 그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후에 앤이 돌아봤을 때 첫날에 대해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아이들을 가르친 느낌이라고. 일단 주어진 대로 기계적인 동작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첫날 요주의 인물을 파악해 냈다.

'앤서니 파이'. 그 유명한 조시 파이네 집 아이였다. 여자 아이 목에 물을 남김없이 부어버린 그 아이. 앤은 자신의 신념대로 방과 후에 앤서니를 불러다가 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해 꾸짖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앤서니는 앤의 상냥한 태도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앤의 말을 듣고 비웃기라도 하듯 휘파람을 불며 나가버렸다. 앤은 어차피 한 숟갈의 물로는 바다를 퍼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힘을 냈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학교를 나선 뒤, 앤은 녹초가 되어 의자에 털썩 쓰러지듯 앉았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좌절감이 이만 저만 드는 게 아니었다. 그리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니 좌절감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그 하지만 앤은 몹시 지친 데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게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좋아하지도 않은 일을 매일같이... 40년 동안 계속한다면? 앤이 집에 가서 울지 아니면 여기서 울지 망설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웬걸 이상한 학부모가 등장한다.

드레스와 복장이 해리슨 씨 말에 의하면 '꿈에 나올까 무섭다'는 정도인데. 아마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황야의 마녀 정도 되는 복장이었나 보다. 학부모는 자신의 소개를 한 껏 과장되고 부풀려하더니 '선생님에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이야기하러 왔다'라고 말한다. 앤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잘못한 것은 없다고

기억을 떠올리는데 학부모의 대답이 황당하다. 자기 아들이름이 '도네엘'인데 선생님이 '돈넬'이라고 부른다는 것. 부를 때 마지막 음절에 강세를 두어서 부르라고 요구한다. 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대답했다. 이 부인은 자신의 아들을 제이콥이라고 부른 것이 너무 서민적이라면서 꼭 세인트 클레어라고 부르라고 주문하고 가버린다.  


그나마 퇴근길에 폴이라는 학생에게 받은 풀 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폴은 선생님이 좋다며 앤에게 사랑의 인사를 전하고 떠난다.

집에 돌아와 오늘 하루가 어땠냐고 물어보는 마릴라에게 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말 뿐이었다.


"한 달쯤 있다가 다시 물어봐주시면, 그땐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대답을 못하겠어요.... 저도

모르겠거든요.... 이제 막 시작했잖아요. 지금은 누가 온통 머릿속을 휘저어 놓은 것처럼 뒤죽박죽이에요.

오늘 확실히 해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클리피 라이트에게 A를 A라고 가르친 것밖에 없어요. 여태 그걸 몰랐더라고요. 이렇게 첫걸음을 뗀 아이가 나중에 셰익스피어가 될 수도 있다 눈개 굉장하지 않아요?"




앤의 첫 출근 기를 읽으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A를 A라고 가르친 것 밖에 없다니. 너무나 앤 다운 표현인데 

A로 시작한 학생이 첫발을 내디딘 것처럼 앤도 사회생활과 교사라는 직업의 A를 겨우 뗀 것이다. 이후에도 앤은 현장에서 자신의 신념과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 고민하게 되고 우왕좌왕하면서 마릴라와도 이야기하는데 이때 마릴라의 현명한 대답이 작품의 '포인트'. 부분은 다음에 다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3월이면 시작될 새 학기를 준비하고 계실 여러 교사분들에 대한 생각이 났다. 3월은 둘째가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달이기도 하다. 해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부디 선생님과 아이들이 행복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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