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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Mar 30. 2021

실버걸의 싱글 하우스

검은 때를 벗는 법

 

          

나는 부단한 노력을해도 실버걸이었다.

 Silver(銀)는 귀금속 계열 중 깔끔하고 우아한  971.78℃에서 녹고, 2162℃에서 끓는다. 

나는 사랑에 잘 녹고, 열정도 끓는 4n살이다. 나이 든 싱글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전성(넓게 퍼지는 성질)과 연성(길게 늘어나는 성질)도 갖추어 84개국을 비행하며 사랑을 찾아다녔다. 열을 잘 전달하며 가공성이 좋아 빛을 잘 반사해 늘 반짝거린다. 문제는 늘 금 다음이란 것이다. 은이란 아무래도 예민해서 관리도 어렵단다. 그 말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따지자면, 금이 낫다는 뜻이다. 

자부심을 품고 맞선 시장에 여기저기 나가 보았지만, 어느새 연식이 높은 사양이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기껏 동안을 유지하며 운동과 보톡스로 노력형 실버걸이 되었건만, 요즘은 타고난 신분과 능력 있는 골드미스가 대세란다. 연애에 성공하여 결혼까지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토할 거 같다. 


  실버걸은 학창 시절부터 인기투표로 반장을 해왔었고, 그림을 잘 그려서 주목을 받았다. 서울에 있는 미대에 이대라는 학벌이면 시집을 잘 간다는 소리를 80년대부터 들어왔다. 현실에서는 드라마틱한 신분 상승의 기회는 없었다. 그래도 안 되니 선망의 직업이라는 승무원을 해서 내 삶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동안 노력이 상당했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에도 넘지 못하는 뭔가가 있었다. 앞으로 골드 우먼 되기 위해서는 강남에 살아야 하고, 외제 차와 고급 아파트에서 싱글라이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김포로 이사를 했다.

  ‘ㅉ ㅉ 설마 이사 중에 손을 탔나…. 은수저 뭉치가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네. 아까워라’

엄마는 이삿짐을 풀며 은수저를 애타게 찾고 계셨다. 평소에 집에서 써본 적 없는 은수저, 그런 게 우리 집에 있긴 했었나? 안 쓰고 모셔둘 은수저를 엄마는 왜 샀는지, 어디서 난 것인지 궁금해진 건 나중에서야였다. 갑자기 잊은 옛 물건이 새삼스레 하나씩 생각났을 때.

‘엄마, 근데 찾고 있는 그 은수저들 어디서 난 거야?’

손님들에게 한 번 대접하고 그대로 묻어둔. 그 후로 사용한 적도 없었던. 쓰기 아깝기도 하고 사용 후, 관리가 불편하여 묵혀둘 수밖에 없었다고는 했지만. 

  은수저는 항상 집안 어딘가에 있었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사용했던 은수저는 검게 변해서 흙수저가 되기도 한다. 내 삶도 돌아보니 반짝반짝 빛이 나고 싶어 준비만 하다가 애타는 심정으로 온갖 노력을 해봤다. 뭐든 열심히 하다 보면 인생도 빛이 날 줄 알았다. 


  곧 다가올 여름에 어울리는 은 악세사리를 찾았다.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던 티파니 은목걸이와 귀걸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자주 까맣게 변해서 백화점에 들르면 은 세척을 맡기려고 어딘가 둔 게 마지막 기억이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모녀는 잃어버린 은 때문에 같은 마음을 겪었다. 아쉬운 미련 뭉치들을 잃어버린다는 것에 대해. 아끼다 똥이 된 건지, 죽 쒀서 개 준건지 무엇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며 

엄마가 말을 건넸다.

‘다른 일에 집중하고 천천히 찾아봐, 그럼 문득 나타날지도 몰라’ 

티파니를 아니면 남자를? 아침부터 한참을 집안 구석 뒤지며 찾았다. 외출할 시간이 되어 나갈 준비를 하다 왠지 어디선가 땅기는 느낌이 났다. 무심코 열어본 화장품 파우치에는 내가 찾던 것이 버젓이 들어있었다. 

오랫동안 체온과 손길이 닿지 않아 속이 까맣게 타버린 모습이었다.

‘엄마 차라리 처음부터 금수저를 사지 그랬어.’라고 마음이 중얼거렸다.


 처음엔 모두 반짝이는 것 같이 보이나 태생이 다르다. 금과 은의 성질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은을 보관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변색이 되어 까매진다. 관리 대상이다. 나는 티파니 은 제품을 세척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아무리 유명한 티파니 브랜드라도 은 제품은 어쩔 수 없이 특별한 조치가 필요했다. 유튜브로 찾아보니 뜨거운 소금물에 쿠킹포일을 넣고 은을 담가 두면 때가 빠진다고 했다. 그래도 지독하게 거무튀튀할 때 구정물을 완전히는 못 벗었다. 그걸 지켜본 엄마는 치약으로 닦아보라고 한다. 그리고는 다 헤진 아버지 러닝셔츠와 치약을 가져오셨다. 귀걸이가 마찰열로 뜨거워질 때까지 문질러댔다. 종일 은을 만지다 보니 은에 대해 안 것은 민감하다는 것이다. 뜨거운 물, 소금, 치약….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은은 점차 외부 자극에 내면의 빛을 찾아갔다. 닦으면 닦을수록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열심히 닦아야만 서서히 광이 났다. 


한국 사회에서 골드미스라고 하면 긴 설명이 필요했다. 말을 안 하려면 능력 있으면 된다. 난 그동안의 경험으로 책도 쓰고 강의를 하며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요즘은 트렌드가 바뀌어서, 일만 하다 늙어버린 노처녀보다는 고생 안 한 금수저가 꼬이지 않았다나. 금수저는 일을 안 해도 자체가 금이라 높은 가치가 있다나? 

금은 관리가 필요 없이 항상 변함이 없었다. 금값이 오르고 안정적인 시세의 때인 것이다. 

최근 결혼의 문화를 보니 능력이 된다면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를 즐기며 사는 것이 행복도 면에서 훨씬 높다는 통계다. 누구나 자유롭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비혼의 쿨한 매력으로 호감을 주는 듯했다. 고전적인 결혼관으로 흐름이 바뀌길 기다릴 바엔, 망가진 홍콩 주식의 원금 회복을 평생 기다리는 게 낫겠다. 

(금수저라니 골드 디거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지.)

나는 은의 성질을 가진 여자다. 잘 삐지고 변덕도 심한 예민한 계집애다. 게다가 사랑을 받지 못하면 죽어버리는 성질을 지녔다. 좋은 사람은 볼 때마다 사랑해줘야 계속 만날 수가 있다. 노력해야 사랑도 빛나듯 좋아한다면 옆에 두어야 한다. 


 광택 유지를 위해 금처럼 가만히 있다가는 금방 도태당한다. 한 번 닦는 것으로 안된다. 서러움과 외로움이 뼛속까지 박혀서 잠시라도 방심하면 심장이 시꺼멓게 멍들었다. 손으로 쓱 문지른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광택이 살아난다. 그러나 내면에 충만한 밝은 에너지가 있으니 어두움도 빛을 감출 수 없다. 은은 공기나 물과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세상의 공기와 마음껏 접촉하여도 산화되어 녹슬지는 않는다. 튀지는 않아도 노력하면 빛날 수 있는 목표와 이상을 이루기 위한 실버 걸만의 방법으로 가자. 자극에 반응하여 변화의 가능성을 가진 은이 왠지 더 좋아졌다.

나처럼 인생을 부지런히 광을 내고 있는 나의 짝꿍은 어디 있을까?




반짝반짝 빛나는 실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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