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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Apr 01. 2021

우리 집으로 가자

핀란드에서 생긴 공간의 취향

핀란드에서 생긴 공간 브랜딩의 취향     

                                 

    헬싱키는 미니멀한 겨울 풍경처럼 강렬하거나 차가운 회색이었다. 북유럽 여행 중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핀란드에서 하루 만에 돌아온 이야기다. 핀란드에 도착하면 숙소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왔으나 계획이 어긋났다. 나는 여행 전에 숙소를 예약하지 않아 해가 지려고 할 때까지도 숙소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헬싱키에 온 목적은 디자인 스폿과 아테네움 미술관이었다. 폐관 시간이 다가와서 맞은편에서 오는 트램을 무작정 올라탔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계획해봤자 현재가 중요했다. 

이 도시는 적벽돌색 건물이 많다. 러시아의 영향으로 크고 건조하며 무표정하다. 어쩐지 흥이 나지 않았다. 이곳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고 계속 낯설었다. 


Ateneum 아테sp움 미술관 전경 이미지

 미술관에 도착했다. 스웨덴 작가 ‘Carol Larson’의 전시 중이었다. 따뜻한 가정생활의 모티브로 하여 디자인 개념으로 그림을 그렸다. 직접 제작한 가구, 자수한 직물, 화분으로 집을 꾸며 단순함과 따뜻함으로 가족의 행복한 이상을 보여주었다. 시골풍의 이상화와 안락한 스칸디나비아 예술 공예의 생활 방식은 이케아(IKEA) 미학에 시작이 되기도 한 작품들이다. 나는 전시를 보며 마치 돌아갈 집을 잃은 아이 같았다. 낯선 외국을 신기해하며 눈과 발은 새로움을 찾아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마음은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애써 현재에 집중하면 평온한 일상 같은 여행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의 주제는 내게 컴백홈이었다.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뜨타안~~’


훌쩍 떠나온 여행이 멋질 거라 생각했는데 불안하다. 손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내 불안과 함께해 온 오래된 습관이다. 심취하면 혼자라는 생각이 안 든다. 온통 나에게 집중하는 나르시시즘적인 행동이다. 맘껏 불안하고 실컷 걱정했다. 

두 손이 반대쪽 손끝을 서로 만지면서 태평하게 걸으며 멋진 풍경도 만났다. 겨울의 헬싱키는 길고 가는 침엽수들이 높이 솟아 세련미가 있다. 거기에 미니멀리즘 건물들은 내가 살던 화려한 중동 건축 스타일의 두바이와 전혀 달랐다. 두바이에서는 사막에 갇힌 듯하더니, 여기서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노래의 느낌처럼 깊은 숲 속에 혼자 갇혔다. 여전히 헤매고 외로웠다. 

아무래도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공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도시에 온 지 5시간 만이었다. 중요한 것을 찾으러 가는 사람처럼 도망치듯 핀에어를 탔다. 향수병을 못 견디고 핀란드 구경을 서둘러 마쳤다. 나는 강 위, 무지개 너머로 붕 떠 있는 아치형 다리를 지나 지친 채로 해 질 녘에 핀란드를 떠났다. 행복을 찾아 헤매는 지친 내 모습이 차창에 비쳤다. 핀란드의 뾰쪽하고 건조한 풍경들에 둘러싸여 경직되었다. 헬싱키에 대해서는 이 정도 추억이다. 


핀란드 여행 후, 5년이 지나 서울에서 건축가와 업무 미팅이 있었다. 신라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나는 조선 호텔에 도착해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알았다. 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의 차이, 장충동과 광화문의 거리에 대하여.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인 순간이었다.

건축가는 중후한 무광택의 그레이톤 콘크리트 건물 같은 모습이었다. 현대적인 외관과 단색조의 실내 장식의 건물은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위엄이 있어서 동시에 호기심을 발동하게 했다. 건축 설계도를 닮은 샤프한 안경과 눈매, 창과 벽의 경계를 없애 무장해제하게 하는 매력, 군더더기 없는 까칠한 모습이다.  

그는 건축을 위한 자신의 준칙이 있다고 했다. 건축에 적합한 자재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의 엄지손가락은 나와 닮았다. 아슬아슬하게 피가 곧 나올 지경까지 손가락의 피부가 벗겨진 모습을 한눈에 알아봤다. 난 평소에도 손을 가만두지 않고 깔끔한 손에 대해 강박감이 있다. 손가락에 붙은 굳은살을 뜯었다. 피가 나야 끝났다. 우리는 ‘닥터 피시’(가라루파, 치료용 물고기) 과였다. 새 살이 날 때까지 못 참고 뜯어내는 그는 성취욕구 때문일까 불안 때문일까?

그때 향수병과 타향병처럼 떠나지도 머무르지도 못했던 핀란드가 떠올랐다. 그곳을 떠나며 차 안에서 바라본 북유럽풍의 건축물들 사이에는 닿을 수 없는 물리적인 거리감이 존재했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안 보이는 계산과 갈등으로 거리가 생겼다. 각자의 살아온 방식으로 계급을 정하기도 함을 알았다.

건축가는 마지막으로 건물의 공학적인 구조가 가지는 배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넘치지도 부족한 것도 없어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거라고. 


삶을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면 내 인생에도 설계도가 있어야 했다. 내 인생 계획은 어떤가? 지금 돌아온 이 자리에서 터를 잡았으니 내 꿈의 집을 재건축해야 하는데 이제는 타국 생활이 그리워 타향병 타령이다. 타타타. 하나를 선택하면 그 반대의 것에 향수가 생겼다. 외국에서의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버리고 추억을 경험 삼아 살고 있다. 

겨울색보다는 봄, 여름 색을 좋아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컬러와 공간을 선호하는 취향이 생겼다. 공간 콘셉트를 기획할 때도 처음 들어오는 공간임에도 어색하지 않고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도록 하게 된다.


강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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