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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Mar 29. 2021

나만의 쉼과 힐링이 있는 공간이 있나요?

흙 만지는 시간

          

이상하고 아름다운 수다 공방 나라

혼자 가도 되나요? 남자도 가능한가요?

혼자 와서 둘이 되어 나가는 사랑이 넘치는 공방

꽃이 모이면 나비가 날아온다네

작업하는 나비로 꽉 차는 화분 같은 주차장

맞장구를 치며 흙을 치며 방망이로 치며 누구를 생각하나요?

손을 움직이면 입이 열리고 속은 술술 풀린다네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가 싫은, 시간이 금방 가는 마법의 공간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는 곳, 여기는 수다 공방

   

나른한 오후였다. 커피를 마시며 도자기 원데이 클래스에 함께 할 수강생들을 기다리다 재밌는 상상을 하며 쓴 시다.     


도예 작업 이미지 사진

- (꽃님) 안녕하세요, 오늘 도자기 원데이 클래스 하려고 왔어요. 전부터 만들어보고 싶었는데,오늘 쉬는 날이라 친구랑 왔어요. 저희 이 동네 사는 K 항공 승무원 동료예요.


- 쉬는 날 잠을 자도 부족한 시간에 부지런하시네요. 저도 전에 승무원을 했었어요. 잘 오셨어요. 종일 신고 다닌 구두를 벗고 편한 슬리퍼를 신어요. 흙이 묻어도 되니 안심해요. 여기의 그릇과 도구들을 마음껏 이용하세요.


-(꽃님) 선배들 눈치 보고, 사람들에게 무조건 친절해야 하는 게 요즘 들어 힘들어요.


-어떤 마음인지 저 알아요. 친절하기 싫죠? 힘든 게 아니라 싫은 거잖아요.


-(꽃님) 네, 싫으면서 애쓰는 저 자신이 역겨워요. 거짓말로 친절한 건 아니지만요.

만들고 싶은 게 있는데, 제 맘대로 만들어도 되나요. 요즘 제가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거 같아요. 나만의 것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요. 예전부터 제가 쓸 접시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SNS에서 평소에 만들고 싶은 디자인을 찾아봤는데, 오늘 접시 만들려고요.


-판 접시네요. 판 접시는 처음 시작으로 흙과 친해지며 물성을 알아가기에 좋아요.

사진 보고 만드셔도 돼요. 아무리 똑같이 만들려고 해도 절대 같은 느낌 안 날 거예요. 만들다 보면 응용이 되어서 나만의 스타일이 생겨요. 모방에서 창조력이 생기듯이. 사실 도자기는 우아한 헛수고예요. 그냥 사서 쓰면 되지 집에 모셔둘 거면서 왜 힘들게 만들어요? 그러나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니까요.

단계별 진도가 있지만 우선 원하는 걸 만드셔도 돼요. 도예는 자연의 재료들로 관계를 성찰하는 방식이에요. 비행도 그렇죠? 저를 둘러싼 세계와 교류하고, 그릇은 사용하는 이들과 관계를 갖는 거죠. 셰프는 사용할 그릇을 직접 만들고, 플로리스트는 자신만의 꽃병을 만들 듯이.

자, 여기 나무 방망이요. 흙을 다지고 펼 때 사용해요. 돈가스 만들 때 돼지고기 다지듯이요. 그럼 흙 배열이 고르게 되어 성형 준비를 한답니다. 찰지게 두들겨서 평평하게 펴봐요. 자 이렇게 쿵. 쾅. 팍. 탁. 쫙. 흙을 다룰 때 몸의 변화를 느껴봐요. 적절하고 절묘하게 힘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요. 흙과 힘을 겨루지 말고요. 손과 정신이 끼어들 틈을 찾아봐요. 감정, 몸의 변화가 만든 흔적이 그릇 위에서 선이 돼요.


-(꽃님) 후우~ 땀이 나요. 속이 시원하네요. 방망이가 흙에 촉촉한 소리를 내며 찰싹 감겨요. 흙이 말을 거네요. 정신없이 쫓기며 사느라 망가진 저를 위로해주는 거 같아요.


-최근에 이렇게 큰 소리 내 본 적 없죠? 늘 상냥하고 조용히 받아들이기만 해서 밖으로 뿜어내어 표현하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어요. 무엇을 담고 싶은지에 따라 접시 모양과 형태를 생각하면서요. 그릇의 크기와 용도를 정하는 건 도예가 맘이에요. 그릇을 만드는 방법에 따라 흙의 도구를 정할 거예요. 다져진 흙 판 위에 드로잉을 할거예요. 선을 그어봐요. 너무 힘주지 말고요. 맘에 안 들면 문질러서 지울 수도 있으니까.


-(꽃님) 제 마음이 지금 울퉁불퉁 찌그러졌나 봐요. 손맛이 느껴지게 자연스럽게 놓아둘래요. (흙을 다듬는 소리. 스윽. 촤악. 삭삭. 시익식)


-실수해도 괜찮아요. 대칭이 안 맞고 찌그러져도 사랑스러워요. 불완전함 속에 멋스러움이 있다니까요.

지금, 이 습도와 점력을 기억해둬요. 흙을 오리고 붙이고 할 수 있는 흙의 상태예요. 멈춰야 할 때를 아는 타이밍이죠.  조급함을 버려요. 귀찮고 힘들어도 반복해야 해요. 결과는 자연이라는 불의 영역이에요. 흙을 잘 다루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같을까요?

그릇은 사람과 닮았어요. 모두를 좋아할 수는 없죠. 10개의 그릇을 만들면 그중에 몇 개만 맘에 들어요. 상품으로 내놓을 수 없는 도자기들이 대부분이에요. 자신의 취향이란 어쩌면 무수히 많은 실패를 통해 만들어지는 거 같아요. 그릇을 만들다 보면 모습, 성품이 스며들게 돼요. 사람이 그릇을 닮은 것인지, 그릇이 나를 닮은 것인지. 우리가 보고 경험한 취향으로 만들게 되어있어요.

접시 테두리를 만들려면 흙을 코일링해서 원 테두리 밖에 두른 뒤에 붙일 거에요. 꼼꼼하게 잘 붙여봐요. 흙 풀을 사용해서요. 물을 흙에다 걸쭉하게 풀어서 흙과 흙이 붙도록 하는 거예요. 빗살 칼로 빗금을 낸 뒤에 붓으로 흙 풀을 툭툭 얹어놓듯 발라요. 거기에 길게 늘여 놓은 흙을 말아 올립시다. 귀찮다고 대충하면 꼭 깨져서 나오더라고요.


-(꽃님) 비행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 해서 좋겠어요. 저 사실 진지하게 퇴사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다음 뭘 할지 몰라서 고민하던 중에 도예가 생각났어요.


-좋아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흙을 누구나 다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퇴사 신중히 생각해봐야 해요. 그만둔다고 행복해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꽃님) 매일 반복된 일상에 의미를 찾고 싶었어요. 내일 비행인데 가기 전에 힐링하네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게 좋은 걸까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이 맞을까요. 저도 뭐가 맞는 건지 몰라서요. 뭘 할건지 정하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릇 종류도 얼마나 많아요. 만들고 싶은 것도 많고.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거죠. 저도 퇴사하는 데 몇 년 걸렸어요. 힘들면 그만둬요. 다 살기 마련이더라고요.


나도 누군가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고 싶었다. 힘내라는 말보다는 ‘괜찮아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힘껏 견디는 삶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 빨리 달려야 할 것 같은 성과보다는 재밌는 걸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레 앞에 앉아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셨다. 흙 묻은 도구들을 하나씩 스펀지로 닦는다. 거울을 보니 작업의 흔적으로 머리카락에 흙이 묻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공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줍은 예쁜 꽃 같은 사람에게 꽃향기가 났다.

나는 소매를 걷고 앞치마를 다부지게 매었다. 우리들의 흙을 만지는 시간이 또 다시 시작된다.      

도자기 악세사리 수강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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