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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Mar 26. 2021

에어버스 380에게

그 날 비행기에서 내려와 공방을 열었다.

           

 서른여덟의 나는 열사의 나라 중동 두바이에서 에어버스 380과 함께라면 어디든 좋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비행이다. 둘 다 가진 아이러니다. 

2층 구조의 초대형 비행기에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국경을 넘는 50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 아무리 멋진 환경이라도 내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을 때가 있다. 

보통의 어느 날, 나는 기내 화장실에 달린 거울을 보며 내 인생에 황량한 모레 바람이 그치길 기도했다. 샤넬 아모르 92번을 바르면 기분이 화사해지길 바라면서 독백이 담긴 편지를 남겼다. 


A380 비행기 



Dear A380,     


  난 기계와 수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를 공학적으로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가 않가는거야. 아직도 그 무거운 것이 오랜 시간 날 수가 있는지 신기하기만 해. 

비행기의 구조와 안전장치들을 매일 외웠어. 성경 책보다 더 두꺼운 책, 동아 전과보다 더 다양한 지식이 담긴 매뉴얼이 있어. 어떤 황당한 일이 있어도 절대 당황하지 말고 기억하라고 색깔도 빨간색이구나.

 모든 예상 가능한 일에 대해 그림과 함께 설명을 빼곡하게 적어줘서 고마워. 다행히 펼치면 웬만한 것들은 설명서 덕분에 해결되었어. 근데 꼭 영어여야만 했니.

그렇지 않으면 비행 준비가 안 되었다고 판단되어 비행을 못 가. 자격이 안 되어 스케줄에서 제외되는 거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시험도 봤어. 트레이닝 기간에는 책상에 앉아 빨간 매뉴얼을 공부하는 수험생이야. 매뉴얼을 수도 없이 들춰봐서 문제 상황 판단 능력과 함께 내겐 자신감도 생겨났어. 불이 나면 소방수도 되었다가, 화장실 청소부, 아픈 승객에겐 의사, 꼬마 승객을 위해서는 유치원 선생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작가도 되었지. 

  너를 대하는 법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암기와 훈련이 필요했어. 그게 7주나 걸렸어. 입사 후 7주 동안의 엄청난 훈련을 받아. 내가 전혀 알지 못하던 세상이었어. 매일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시간이 걸렸어.

그 과정을 통과해야 드디어 자격증을 받고 비행을 할 수 있었어. 윙을 다는 그날까지 너를 기다렸어. 좋은 일에 ‘우리’라는 복수형을 쓰고 싶은 건 같이 고생한 동료들이 떠올라서야.

  누군가를 완벽하게 아는 건 어려운 일이었어. 넌 계속 업데이트가 되고, 내 머리와 체력은 따라가기 힘들어졌지. 네가 진화하는 속도를 맞추려면 나도 계속 성장해야겠지. 억지로 상대를 알려고 하는 건 힘든 일이야. 

그래서 자꾸 헷갈렸어. 사람도 어렵고 헷갈리더라. 좋아한다는 건 알아가는 건데, 불편하면 알고 싶지 않아. 내가 알아가려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던 거 같아. 사람을 알아가는 일도 이처럼 서로 돕고 노력한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텐데. 그래, 사랑은 이해하는 거였어.


  비행기에서 긴급 상황이 생기면, 사실 급할 땐 이름도 기능도 기억이 안 나. 그래서 자꾸 그거(it), 저거(something), 이거(this)라고 해. 외국 영화를 보면서 배우 이름은 모르고, 팝송을 들어도 가수 이름을 모르고 멜로디만 알고, 이성보다 감성 위주고, 지식보다는 재밌는 이야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줘.

너처럼 복잡한 기계는 알려고 노력하면 언제나 답이 있었어. 내 인생에도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 비행에 대해서 알기 위해 이렇게 노력을 했는데, 나에 관해서는 공부해본 일이 없었어. 고민은 수만 가지에다 예상치 못한 일들의 가짓수와 경우의 수도 짐작 못 해. 그래서 답답하고 괴로울 때가 너무 많거든.

  종종 난기류(Turbulence)를 겪었지만, 때론 더 심한 감정의 난기류를 매일 여러 번 만나기도 해. 

너처럼 시스템화 되지 않아서 이유 없이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면 일하기 싫어져. 그때마다 나는 콜씩(Call Sick)을 했어. 회사에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꾀병으로 병가를 낸 거야. 그러고 나면 정말 내가 아픈 거 같더라. 

너도 전 세계를 많이 다니면서 이런 적 없어? 살다 보면 외로움, 향수병, 시차 적응, 승객의 불만, 육체와 감정 노동으로 애증이 생기던데. 승무원이 이럴 줄 몰랐다고 실망해도 아무도 탓할 수 없지. 그러니까 1928년 독일에서 비행기에 처음으로 승무원을 탑승시키면서부터 이 일이란 으레 이랬으니까. 


 끝도 없이 늘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경이로웠지만, 내 것으로 흡수하지 못할 정도로 소화해내지 못했어.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슬퍼지는 마음 혹시 이해해?  외국에 나가면 자신에 대해 객관화가 되거든. 내 취향과 기분의 변화를 집중해서 의지하고 살피게 돼.  업무는 기계적으로 익숙한데, 사람들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 다양한 감정과 기분을 맞춰줘야 하고 눈치도 봐야 해. 감정 노동이 장기간 되다 보면 마음 어디든 꼭 병이 나게 되더라. 그 증상과 후유증이 오는 타이밍도 달라. 나도 퇴사 증후군이라는 언젠가 후폭풍을 맞겠지.

  내 마음은 이렇게 무거워서 뛰어다닐 기운도 없는데, 나보다 몇천 배나 무거운 너는 어떻게 나는지 신기하다. 날아다니지 않고 땅에 붙어 있고 싶은 날 있잖니. 그러면 너는 최대한 높이, 멀리 가서는 세상 구경을 시켜주었지. 돌아오는 길도 잃지 않았지. 너의 크고 포근한 날개 안에서 내 몸은 녹아내렸고 세상 근심 잊고 코를 골며 자기도 했어.


 요즘은 연식이 오래된 비행기는 크고 돈이 많은 항공사는 너를 다른 항공사로 보내더라.  너는 안전한 우리 비행기로 다시 태어나 전보다 더 많은 세상을 보게 될 거야. A380이 안전하지 않다고 운행을 중단한 항공사도 생겼어. 어디서나 환영받고 사랑받기는 힘들지.  나는 늘 사랑받고 싶어서 힘들었나 봐. 우리 자유롭고 안전하자.  너와 함께한 세상 구경 행복했어. 늘 설레고 든든했어. 승무원 하길 정말 잘했다. 나에게 딸이 있다면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한 번쯤은 꼭 해보라고 할 거야. 집보다 오래 머물렀던 이곳에 마음의 편지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두었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나에게 많은 기회를 보여줘서 고마워.      


그리고 기내 방송이 나왔다. “우리 비행기는 집으로 가는 당신 편입니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날 사표를 내고 나는 늘 꿈꿔왔던 도자기 공방을 열기로 했다. 


내가 그만둔 날에는 중동 사막에도 비가 오겠지.          

 



이미지 참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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