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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May 29. 2021

동경 제국 호텔

거장 건축가의 잊혀진 걸작

흔히 근대 건축의 4대 거장으로 미국의 Frank Lloyd Wright, 독일의 Walter Gropius와 Mies van der Rohe, 프랑스의 Le Corbusier가 언급됩니다. 곳곳에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이들이지만, 대부분은 유럽과 미국 중심이었고, 아시아에 남긴 작품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Corbusier가 인도의 Chandigarh라는 도시를 계획하며 남긴 기념비적 건물들이 가장 큰 규모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본 문화에 관심이 컸던 Wright가 일본에 남긴 몇 개의 건물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Wright가 디자인한 도쿄의 제국호텔(Imperial Hotel)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제국호텔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 시작됩니다. 메이지 유신은 사무라이들이 왕 위에 군림했던 막번 체제가 붕괴된 후, 권력을 되찾은 메이지 왕이 펼쳤던 근대화 정책을 말합니다. 아직 막부시대였던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개국 요구 국서를 들고 일본을 찾았고, 1854년 미일 화친조약이 체결됩니다. 뒤를 이어 1858년에는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와도 화친조약이 체결됩니다. 그러나 이 조약들이 형식적이나마 왕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로 체결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를 빌미로 반 막부 세력이 들고 일어서 1866년 막부를 붕괴시키고, 일본은 원래의 왕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후 메이지 왕정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모델로 강력한 근대화 정책들을 추진합니다. 아쉬운 부분은 이들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 자신들의 문화를 지우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서구 세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의 이면에서, 주변 국가들에 대한 군국주의의 야욕을 키워갔다는 것 또한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렇게 문호가 개방된 일본에는 이방인들의 발길이 분주해집니다. 이에 내각 대신들은 1887년 근대적인 대형 호텔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왕에게 올려 승인을 받고, 정부가 최대 지분을 갖는 법인을 설립하여 이를 전담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독일 건축가인 Heinrich Mänz로부터 받은 르네상스 양식의 스케치를 기반으로 일본 건축가 유즈루 와타나베가 설계한 최초의 제국호텔이 60실 규모로 1890년 문을 열었습니다. 이 곳은 화재로 파손된 의회 건물이 복구되는 동안 임시 의회 건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영업이 기대만큼 신통치 않았습니다. 러일전쟁 발발 이후 영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서, 1906년에는 42실 규모의 별관을 증축했고 인접한 호텔까지 사들이며 150실 규모의 호텔로 성장해갔습니다.


두 번째 제국호텔


한일합병이 있었던 1910년에는, 매입했던 호텔을 허물어 더 큰 규모로 신축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하고 미국의 거장 건축가 Wright를 일본으로 초청합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1912년 메이지 왕의 죽음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916년이 되어서야 이사회가 Wright의 계획안을 최종 승인합니다. Wright는 자신의 설계사무소였던 Taliesin에서 작성한 실시설계 도면과 함께 1918년 일본으로 돌아왔고, 1919년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22년에는 대규모 지진으로 와타나베가 설계했던 최초의 제국호텔이 소실되었고, Wright는 임시로 사용하기 위한 별관을 빠르게 설계했습니다. 1923년, Wright가 설계했던 임시 별관이 철거되고 드디어 280실 규모의 두 번째 제국호텔이 문을 열었습니다.



평면은 가운데 공용 및 부대시설 동이 I자 형태로 배치되고 여기에서 H자 형태로 연결되는 객실 동이 양쪽에 배치됩니다. 공용 및 부대시설 동은 4층, 객실 동은 3층 규모로 객실동은 길이가 대략 100m에 이르렀습니다. 주출입구에서 보면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낮고 깊은 건물로 안정감과 동시에 권위를 느끼게 하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타일은 당시 Wright가 미국에서 즐겨 사용하던 마야 건축 양식의 디테일이 주축을 이루었고, 벽돌과 콘크리트 블록이 사용되었습니다. 다만, 화산 지대인 일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화성암 오야이시가 폭넓게 사용되었고, 점토질의 지반에 대응하기 위해 말뚝 기초가 아닌 매트 기초를 사용했다는 점이 다소 특이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매트 기초는 Wright의 생각과 달리 지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건물이 철거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어쨌든 압도적인 스타일의 호텔은 문을 열자마자 일본 내에서 돌풍을 일으킵니다. 제국호텔의 건립 당시 Wright 수하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던 일본 건축가 아라타 엔도는 이 제국 호텔의 스타일을 차용하여 1930년 효고현의 니시노미야에 고시엔 호텔을 설계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 고시엔 호텔은 무코가와 여대의 건축학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고시엔 호텔은, 마찬가지로 Wright의 제자였던 미국의 건축가 Albert McArthur가 Wright의 텍스타일 블록 스타일을 차용하여 설계한 피닉스의 Arizona Biltmore 호텔과 유사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황 체제에서 일사불란하게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성장해가던 일본은 1936년경 4년 후 개최될 도쿄 하계 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도쿄의 대표적 호텔이었던 제국호텔의 규모를 확장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이 시기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제국호텔을 허물고 대규모의 호텔을 건립하는 계획이 처음으로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올림픽은 취소되고 제국호텔의 재개발 논의는 중단됩니다. 그리고 전쟁 중 제국호텔의 일부 시설이 파손되고 맙니다.


세 번째 제국호텔


전쟁이 끝난 후, 미군의 관리 하에 제국호텔의 일부 시설이 복구됩니다. 그리고 1952년 원래의 소유주에게 반환된 이후 전면 보수가 시행됩니다. 이후 1954년 200실 규모의 별관이, 1956년 450실 규모의 또 다른 별관이 증축됩니다. 그러나 취약한 지반 위의 매트 기초가 침하되면서 본관 건물의 손상이 심각해졌고, 안전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1967년, 첨예하게 대립하는 여론 속에서 Wrgiht가 설계한 본관 건물을 허물고 고층의 호텔로 신축하는 계획안이 결국 승인됩니다.



1966년, 이사회는 일본 건축가 다카하시 테이타로의 신축 호텔 계획안을 1970년의 오사카 박람회 이전까지 완공한다는 조건 하에 승인합니다. 그리고 1970년, 17층에 772실의 객실이 배치된 세 번째 제국호텔이 마침내 문을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2021년 3월, 이 호텔의 현 소유주인 미쯔이 부동산은 이를 허물고 20억 불 규모의 사업비를 들여 호텔을 포함하는 복합시설로 재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재개발되는 복합시설은 2036년이 되어야 다시 문을 열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로써 제국호텔은 4대째 이어지게 되는 셈입니다.


거장 건축가가 아시아 지역에 남긴 몇 안 되는 건물, 특히 그중 호텔이라는 흔하지 않은 상업용 건축물을 사진과 그림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편으로, 일본의 기술력이라면 이를 충분히 살려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전쟁과 패망이라는 역사의 파고 속에서 이 걸작은 결국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건립 당시 거장 건축가가 생산해낸 엄청난 양의 스케치와 도면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이에 대한 3D 모델링 이미지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https://youtu.be/pZ9phSrQc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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