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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06. 2024

소설_엉덩이의 변수 1화

  할머니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너는 아침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걸 또, 하며 타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입안의 꽈배기를 천천히 씹으며 생각했다. 이미 두 번을 권했는데 한 번 더 권할까, 말까. 할머니는 간식을 좋아했다. 그러나 습관인 양 일단은 사양했고 세 번쯤 부추기듯 해야 마지못해 먹는 시늉을 했다. 그걸 고려하여 여러 번 권하는 과정은 마치 판에 박힌 절차 같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것을 어른에 대한 예의라 가르쳤다.


  나는 이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입을 쑥 내밀고 “이거 좋아하셨었는데 입맛이 변하셨나 보네, 어쩔 수 없죠, 그럼 제가 다 먹을게요.” 했다. 할머니 얼굴에 대번 서운한 표정이 어렸지만, 짐짓 못 본 척하며 접시로 손을 뻗었다. 할머니, 이거 드세요, 하는 말이 한 번 더 나오길 기다렸을 게 틀림없었다. 나는 설탕이 듬뿍 뿌려진 꽈배기를 입에 넣었다.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시선을 천장에 고정한 채 더욱 야무지게 씹었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너는 어째, 하며 말꼬리를 쯧쯧쯧으로 마무리하는 할머니의 핀잔이 들렸다. 나는 먹고 싶은 마음을 저렇게 처리하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잔소리 모드로 바뀌는 할머니의 모습은 보지 않아도 훤했다. 입술은 주름이 잡힐 정도로 앙다물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기름과 설탕이 범벅된 나의 입을 쳐다보고 있을 거였다. 그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한 번 더 권해서 꽈배기를 할머니 입에 넣었어야 했다. 그렇다고 크게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지칠 줄 모르는 푸념이 듣기 좋은 건 아니지만 이골이 난 지 오래였다. 나는 태연하게 세 번째 꽈배기를 집어 들었다. 


  언제 시집갈 거냐는 꾸지람, 내 나이쯤 되면 당연히 결혼하고 아이도 있어야 한다는 말은 할머니의 반복적인 레퍼토리였다. 요즘은 예전보다 결혼이 늦는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혼자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대꾸를 몇 번이나 해도 소용없었다. 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아버지의 정년퇴직이 내년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더욱 나를 닦달했다. 지금껏 뿌린 축의금을 회수하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할머니는 혼잣말처럼 또다시 중얼거렸다. “결혼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아? 어째 데려가는 놈도 없어?” 작은 목소리라서 못 들은 체했다. 발끈해 봤자 다음에 나올 말은 뻔했다. 입이 심심해서 혼자 군소리 좀 해 봤다, 듣기 싫거든 결혼해서 나가라.


  나도 그런 소리 들으며 집에 붙어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도서관에서 근로학생으로 일했으며, 취업 준비를 위해 토익시험을 보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여러 개 취득했다. 졸업한 뒤로는 적당한 채용공고가 보이는 대로 지원서를 냈다. 종종 합격해서 크고 작은 회사의 회계직이나 행정직으로 일했다. 그렇듯 부단히 애썼지만, 비정규직이었기에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그걸로 끝이었다. 내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하던 회사에서도 나를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을 때는 무척 섭섭했었다. 계속 일할 수 있게끔 해 줄 것처럼 애를 태우다 계약이 끝날 즈음에야 회사 규정상 방법이 없다는 곳도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점차 일하는 곳에 정을 붙이지 않았다. 내가 마음의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런 마음가짐이 은연중에 드러났는지 언젠가부터는 최종면접까지 가도 끝내 떨어졌다. 


  직장에 다니지 않을 때는 일종의 다양한 사회 경험 쌓기라 생각하며 판촉이벤트 도우미, 편의점과 PC 방 아르바이트, 방송국 모니터링이나 방청 아르바이트 등을 했었다. 그러나 점차 단기 아르바이트만 전전하게 되자 나 스스로가 실망스러웠다. 더군다나 재작년부터는 아르바이트마저 쉽게 구하지 못했다. 백수 소리를 듣느니 공시생이 낫거니와,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기도 해서 더 늦기 전에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미 적은 점수 차이로 탈락하기를 몇 번 겪고 나자 공부할 의욕도 사그라들었다. 학원도 독서실도 더는 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할머니는 이런 나를 볼 때마다 빨리 결혼이라도 하라며 성화였다. 사실 나는 남자를 사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화려한 싱글이나 솔로 판타지라면 차라리 좋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열성껏 다니던 직장에서 버림받고 원서를 내는 회사에서 줄줄이 거부당하면서 구질구질한 기분은 충분히 만끽했다. 거기에 이별이라든가 미련 같은 것까지 더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나았다. 게다가 할머니의 ‘결혼이라도’라는 표현은 정말이지 싫었다. ‘이라도’에 담긴 포기랄까, 대체의 뉘앙스가 나를 울컥하게 했다. 얼마나 더 그래야 하는 거냐고 누구에게든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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