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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09. 2024

소설_엉덩이의 교집합 6화_완결

  집에 돌아온 나는 온몸이 땀에 젖고 흙먼지로 옷도 더러웠지만 그대로 소파에 널브러졌다. 가만히 그러고 있다가는 눈물이 나올 듯했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없었지만 무작정 텔레비전을 켰다. 리모컨을 마구 눌러대다 만화 채널에서 멈추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할 것 같았다. 짱구라는 캐릭터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그걸 보며 무심코 웃다가 이내 표정이 굳었다. 오래전 남편과 다투던 한 장면이 기억난 거였다. 텔레비전을 끄고 리모컨을 멀찌감치 밀어놓았다. 몸을 돌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소파 등받이로 파고들었다.


  결혼 십 주년이었다. 우리는 외식을 하고 집에 와서는 와인도 한 잔씩 마셨다. 딱히 할 말도 없어서 이제 그만 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남편이 입을 열었다. “있잖아. 우리가 벌써 십 년을 같이 살았잖아? 그런데…….” 식탁에 앉은 채 나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는 어딘지 슬픈 빛이 가득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분위기였다. 말끝을 흐리던 그는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재채기하듯 물었다.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언성을 높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당신이나 잘하라고!”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 앞에 엉덩이를 내보였다. 때마침 방귀까지 나오려 하기에 참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 내어 웃으며 내 방으로 들어가 거칠게 문을 닫았다.


  나는 화가 나면 그렇게 다소 터무니없이 행동하곤 했다. 그러면 남편은 사과하며 나를 달래주었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마지못해 용서하는 척을 하면 되었다. 우리의 자연스러운 부부 싸움 과정이었다. 그런데 그는 예전과 달리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남편의 변한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계속 버티고 있으면 제풀에 지친 그가 다시 내게 손을 내밀 거라 믿었다. 우리 사이는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떠나던 날, 뒤돌아선 채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과 있었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


  당찬이가 근처에서 맴도는 게 느껴졌다. 나는 기운을 내고 자리에 앉아 바짝 다가온 당찬이를 쓰다듬었다.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일부러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그러고 있으면 당찬이가 걱정할 것 같아서였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조금 낯설었다. 아무튼 나는 화장실로 가서 샤워기 아래에 섰다. 온수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냉수 쪽으로 꼭지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내 머리와 몸으로 매섭게 떨어져 내렸다. 순간 매라도 맞는 기분에 움찔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물줄기가 내 몸을 긋고, 그 위에 또 다른 물줄기가 쉼 없이 떨어지며 나를 그어댔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서 있다가 뒤돌아섰다. 이제 뒤통수와 등, 엉덩이로 물줄기가 꽂혔다. 넘어진 자리가 욱신거렸다. 손을 뻗어 늘어진 내 엉덩이를 만져보았다. 그나마 이 빈약한 살덩이마저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밭에서 본 노인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붙이고 있던 의자는 예쁘지는 않지만 작업을 덜 힘들게 하려고 추가한 엉덩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엉덩이는 완충재이자 의지할 만한 것인 셈이었다. 이어 어린 시절 노트를 보며 교집합이 예쁘장한 엉덩이와 닮았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났다. 교집합…… 아까 뒷산에서는 당찬이 역시 온전히 나만 바라보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아가 뒤집혔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마냥 서러웠다. 혹시나 다른 핸들러가 유혹하더라도 당찬이가 머뭇거리길 바랐다. 나와의 추억이라는 교집합을 소중하게 여길 거라는 확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와도 좋은 교집합을 나눈 적이 없었다. 어깨가 축 늘어졌다. 나는 바보처럼 오로지 성공만이 나를 지켜줄 거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빨리 성공하려고 필요한 사람만 찾아다녔고 남에게 배려나 관심을 기울이는 정성을 쏟지는 않았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에는 귀를 막았다. 입술 사이로 길고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샤워를 끝낸 나는 맥주를 들고 베란다에 앉았다. 막막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겸 시원하게 한 캔만 마시려고 했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낮보다 한결 나아서 뜨거운 머리를 조금이나마 식혀줄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여러 캔을 비웠고 어느덧 밤이었다. 잠은 오지 않고 마신 맥주 탓인지 내 몸과 마음이 모두 일렁이는 느낌이었다. 밖에서는 열대야를 피해 밖으로 나온 주민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와 나직한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갑자기 나도 저렇게 앞에 누군가를 두고 내 심경을 꺼내놓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래봤자 곁엔 아무도 없었다. 당찬이마저 자고 있었다.


  내 얼굴을 타인인 양 쳐다보면서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거울 앞까지 가기는 귀찮았다. 어쩔 수 없이 셀프 동영상을 찍었다. 휴대폰 앞에서 마치 누구에게 말하듯 나는 강의도 못 받은 시간강사이며 못된 여자라 소개했다. 다른 사람들을 나를 위한 도구 내지는 소유물로 생각했다고, 엉덩이를 세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고 운동을 결심했다고, 특히 엉덩이를 돋보이게 할 청바지도 샀는데 평생 못 입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주절주절 떠오르는 대로 말하다가 예쁜 엉덩이 모양과 교집합의 닮은 모양으로 인해 내가 어떤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도 늘어놓았다. 그런데 이미 주변 사람이 다 떠나 함께 아름다운 교집합을 만들 이가 아무도 없다는 한탄도 했다. 그렇게 두서없이 주절댄 십 분 남짓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몇 년 간 업데이트를 하지도 않았으며 구독자도 거의 없는 나의 수학 강의 개인 채널이었다. 그러고는 신기할 정도로 단번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내가 동영상을 굳이 왜 올렸을까 싶었고, 비공개 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났다. 얼른 지워야 했다. 누군가라도 동영상을 공유하며 나의 사악한 심보를 널리 퍼뜨릴지도 몰랐다. 그런데 맙소사! 무심코 지은 제목 ‘엉덩이에 진심인 여자’ 때문인지 밤사이 백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댓글도 십여 개 달렸다. 제목에 낚였다며 허탈해하는 글이 대부분이었지만, 고백에 진심이 느껴졌다며 용기를 내라는 응원, 자기도 그런 못된 면이 있어서 고통스럽다는 공감, 그리고 마음먹기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게 사람 아니겠느냐는 격려도 보였다. 사 놓은 옷을 꼭 입게 되길 바란다며 다음 동영상을 기다리겠다는 댓글도 있었다. 그걸 읽는데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뭔가가 속에서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고해성사 비슷한 그 영상을 올린 지 보름 정도 지났다. 그동안 나는 다시금 마음을 잡고 엉덩이 운동을 했으며 영상도 세 차례 더 올렸다. 첫 영상은 수학적으로 엉덩이 부피와 질량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까지 모든 걸 내 방식대로 생각한다는 점을 반성하는 의미였다. 그런데 어이없다는 반응 속에 뜻밖의 긍정적 반응도 있었다. 시각적으로 자기암시를 하는 훌륭한 방법 같다며 반구가 쌓이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엉덩이 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덕분에 나를 드러내는데 더욱 용기가 생겼다. 두 번째는 전남편을 내 부분집합이라 여기며 그를 서운하게 했던 일을 올렸다. 전남편은 나와의 기억, 그러니까 불쾌한 교집합을 떼어버리고 싶어 했다는 말도 했다. 그때는 부분집합이면 더 잘해줬어야지 왜 그랬느냐는, 진짜 소중한 사람이 누군지 몰랐던 거냐는 질타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전남편의 마음은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하는 분석적 댓글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 번째 영상에서는 내게 친절했던 친구를 오해하고 질투했다고 고백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도 싸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진실을 담아 사과해 보라는 충고도 있었다. 사과하면 애플힙, 이런 시시껄렁한 글도 있었다.


  처음에 응원했던 사람들 모두가 나의 영상을 지켜보는 건 아닐 거였다. 여전히 ‘엉덩이에 진심인 여자’라는 제목에 클릭하는 사람이 많아서 대놓고 욕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제목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악플은 당연히 기분이 나빴지만 선플은 따뜻해서 좋았고 쓰디쓴 조언은 달게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댓글로라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이 조금씩 어딘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조만간 혜인에게 연락해 사과할 용기도 낼 수 있을 듯했다.


  내 채널에서 엉덩이는 단순한 엉덩이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치켜세우는 구독자도 있었다. 엉덩이 운동만 할 게 아니라 인간 사이에 어떤 교집합을 만드는 게 좋을지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스승이라나 뭐라나. 또 다른 사람은 이런 댓글도 남겼다. 교수님 엉덩이 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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