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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킴박사 Sep 24. 2019

해부실에서의 깨달음 #4

남편의 연구

알았다. 왜 임신중 요통과 골반통을 겪었는지. 왜 고달픈 오랜

산통 끝에 수술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진정한 출산이란 무엇인지.




제왕절개와 계류유산을 하게된 아내의 이다음 출산에서는 막연한 염려보다는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인생 프로젝트를 비밀리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태아를 지닌 산모의 몸의 구조를 더 세밀히 알기위해 도서관 1층 두꺼운 해부책들을 힘이 닫는 데로 들고 2층 도서관 창가 자리 한켠에 쌓아올렸다. 1층 도서관 해부책들이 보이지 않는다며 분주하던 신입생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릴 때, 건들지 말기를 바라는 눈빛을 보내고 바로 탐독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갈 일이 없을 것 같던 해부실을 다시 찾아갔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생명의 출산을 위한 발걸음이었다. 다시 맡는 방부제 냄새, 암모니아 냄새. 유리관에 담긴 기증된 인체 부위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 아직 탯줄을 끊지 못한 태아와 눈 감은 작은 신생아들이 담긴 유리관 앞에 멈춰 섰다. 깊은 한숨이 내쉬어졌다. 잠시 생명이 머물다 결국은 삶으로 꽃피우지 못한 작은 천사들이었다. 이 기증은 누군가가 생명의 지혜를 발견하여 다른 아기들의 생명이 더 잘 꽃피우고 결실하도록 바라는 것이다. 책임감을 느꼈다. 부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그 사랑으로 한 생명이 빚어지고, 그 생명이 출산의 과정을 통해 부부에게 부모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모태에서의 짧은 9개월의 삶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상에서 좀더 긴 삶을 위해 한번은 떠나야 하는 출산 여정. 어떻게 잘 태어나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한 생명이 탄생하는 출산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의대 2층 도서관. 매일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던곳.

 

갑자기 내 눈에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전에는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았던 몸의 세밀한 출산구조가 보여지기 시작했다. 


 어느 부모의 눈물로 기증되었을 유리관 속 아기들. 눈물로 채워진 그 유리관들 앞에서 나의 눈물도 가슴 깊은 곳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한참을 머문 후 자리를 옮기려다 문득, 생명이 존재하여 머물고 있는 인간의 몸은 출산이 자연스럽게 가능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머물렀다. 해부되어 유리관에 담긴 자궁 속의 태아와 탯줄이 남아있는 신생아들을 한없이 다시 쳐다보았다. 출산과 함께 생명과 삶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하게 되었다. 갑자기 내 눈에 무슨 일이 생긴걸까 전에는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았던 몸의 세밀한 출산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인다. 생명의 탄생을 위한 몸의 세밀한 구조들. 아기가 안전하게 머무르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는 골반의 형태. 9개월간 커져가는 자궁을 안정적으로 지탱해주기 위해 자궁과 골반에 연결된 인대들. 릴렉신 호르몬으로 연해진 인대를 대신하여 골반을 지탱해주는 숨은 근육들. 그 근육들 사이로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궁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지나가는 혈관들. 꼬리뼈 위 천골에서 시작하여 자궁의 이완을 돕기 위해 연결된 부교감신경들. 몸 안의 체액이 고이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할수 있도록 파도치게 하는 척추. 무게로 버거워할 골반근육을 도와주기 위해 정교하게 온몸 전체로 서로 연결시켜 무게를 배분해내는 근육들. 관절들의 구석마다 위치하여 관절이 움직일 때마다 그 힘의 압력을 받아 온몸으로 면역 순환하는 림프체계. 아기와의 공존을 위해 완벽하게 디자인된 몸의 해부구조들이 조용하게 소리 치는 거 같았다. 만일, 지적 설계자가 있다면, 그는 출산을 위한 몸의 완벽한 설계를 위해 하루를 천년처럼, 천년을 하루처럼 고민을 했을 것이다. 부부의 세포 2개가 만나 80조개 이상의 세포로 늘어가는 생명력 넘치는 작은 우주 자궁. 작은 우주 속 주인공 아기를 키워내고, 더 큰 우주에서 기다리는 엄마 그리고 아빠. 늦은 오후 텅 빈 해부실에는 생명을 알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자궁을 위한 골반이라는 환경이 개선되었다면 태아는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내 몸의 자연스런 고백(go back)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깊은 한숨이 쉬어졌다. 그저 숨만 쉬고 있어도 기한이 이르면 출산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정교하게 디자인 된 몸인데. 아내의 몸은 자연스럽지 못했었다. 아내의 뒷모습들이 기억났다. 무거운 배로 엘리베이터 없는 오랜 런던 지하철역 계단에서 골반을 움켜잡던 뒷모습. 사전을 찾아가며 에세이를 쓰다가 지쳐 턱을 손목으로 바치고 있던 뒷모습. 바닥에서 일어날 때마다 암벽 등반하듯 작은 무언가라도 잡고 일어나던 뒷모습. 아내의 몸이 원래의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아기 머리가 충분한 공간에서 틀어지지 않고 자궁문으로 수월하게 내려왔을 것이다. 육아로 몸이 지치지만, 자궁을 위한 골반의 환경이 몸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개선되었다면 태아는 짧은 생명을 더 이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내의 몸의 자연스러운 고백 (go back)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해부실 관리인이 몇 번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얼굴을 감싸고 생각에 빠진 나에게 다가와 큰소리로 이야기했다. 내가 괜찮은지. 본인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내가 대답했다. 나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의 몸을 고백 (go back) 할 시간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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