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고백
268번 버스에서 내렸다. 런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햄스테드히스 공원 근처. 조용한 중산층 마을 속에 180년 역사를 자랑하는 왕립무상병원 (Royal Free Hospital)이 있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늘 이곳 병원 도서관으로 와서 밤11시 문닫을 때까지 책에 묻혀있곤 했다. 오늘은 이 곳에서 아내를 만난다. 조금 늦은 첫 초음파 검사를 하기 위해서.
‘내가 아빠가 된다는 말인가’
몇 달 전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느껴지는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 그 여운은 여전히 내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돌았고 나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볼록해진 아내의 아랫배 위에 초음파 탐촉자가 가로선을 그리며 보물을 찾아내듯 조심히 움직였다. 흑백 화면 속에 비치는 흐릿한 아기 형상을 보고 있을 때 아내를 잡고 있던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을 박동하며 살아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가 있었다. 놀라운 광경에 입을 벌린 채로 모니터 상단에 적혀진 태아의 나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21주 1일살.
심장을 박동하며 살아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가 있었다.
모니터 상단에 적혀진 태아의 나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21주 1일살.
모니터 하단에 적힌 날짜를 보는 순간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고 비장해졌다. 예정일이었다. 아빠가 되는 예정된 날짜를 마주 한 것이다. 뭔가 정지된 듯한 그 순간 아내가 나를 깨우 듯 내 손을 두 번 꽉 잡았다. 초음파 화면 속 확대된 아기의 모습이었다. 나를 닮을 아이가 빚어지고 있다는 현실과 마주했다. 가슴 깊은 곳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뜨거움을 느꼈다. 깊은숨을 천천히 내쉬며 아내 손을 잡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자주 가던 까페에 앉아 가슴을 천천히 식혀보려 했다.
세상의 전부를 가진 듯 부부는 손을 꼭 잡고 말없이 한참을 미소 지었다. 생애 처음으로 디카페인 커피잔을 비워냈다. 이제 20주가 남지 않았다. 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인턴생활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아내도 임신과 함께 시작한 상담 공부를 출산 예정일 일주일 전까지 잘 마무리 해야겠다고 했다. 임신 중 공부는 좋은 태교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
부부는 손을 잡고 많이 걸었다. 단풍잎으로 물든 가을의 공원을 걷고, 흰눈으로 뒤덮인 영국정원을 거닐고,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며 템스 강가를 산책했다. 두꺼운 출산 대백과 한 권을 성경책 옆에 고이 두었다. 출산 경험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도 많이 들어두었다. 한국에서 보낸 마른 미역도 부엌 한켠에 보이도록 두었다. 아기 침대도 도착하고, 주변에서 선물해 준 아기 옷과 양말과 옷 싸개도 아기 서랍장에 넣어두었다. 준비완료.
아내가 진통을 시작했다. 예정일보다 3일이 지난 새벽이었다. 아침까지 진통 간격이 서서히 5분까지 단축되는 것을 체크하며 병원으로 갈 채비를 끝냈다. 예약해 둔 블랙캡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운전기사는 병원 현관 정문 앞 노란색 구급차들 사이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눈빛으로 고마움을 전달했다. 오래된 병원 건물, 긴 직선 복도를 지나야 출산센터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한걸음 한걸음 무겁게 발을 옮겼다. 걷다가 진통이 오면 아내는 복도 한중간에서 나를 한참 안았다. 드디어 병원 엘리베이터를 탔다. 친절하게도 누군가 알아서 출산센터 5F 버튼을 눌러주었다. 넓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를 둥글게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이 침묵을 깨고 한마디씩 건넨다. '행운을 빌어요', '잘 될 거예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아내의 자궁문도 이미 5센티가 열린 상태로 도착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자궁문은 10센티가 모두 열리고 이제 아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수축이 온다. 힘이 들어간다. 힘을 주란다. 힘을 주었다. 그렇게 10시간이 지났다.
출산 하러 와서 수술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모든 것이 낯설기 시작했다.
이제 밤 11시가 되었다. 엄마도 아기도 아빠도 지쳐있었다. 푸시를 아주 잘 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던 인상 좋았던 흑인 조산사는 근무교대를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차트를 넘기며 새로운 출산팀이 비장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수술을 할지 보호자 남편이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손에 펜을 쥐어주고 서류의 여러 곳에 서명하길 요청했다. 난 아직 갑작스런 ‘수술’이라는 단어를 소화도 못하고 있는데, 마음이 체하여 헛기침이 나오는데, 이미 아내를 수술실로 옮기기 위해 준비하는 동선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출산 하러 와서 수술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모든 것이 낯설기 시작했다. 아이의 머리가 좀 비틀어져 출산이 지연되는거 같다고 한다. 게다가 바로 사용 가능한 수술실이 없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사용할수 있는 수술실 문 앞에서 아내의 이동침대가 멈췄다. 지금부터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손을 떼지 않고 있는 것 외에는.
서늘한 수술실 안 회색의 차가운 수술대 위에 아내가 올려졌다. 수술을 준비하던 의료진 중 한 명이 따뜻한 미소를 짧게 지어보냈다. 그 미소의 온기가 추워서 떨고 있는 아내의 파란 입술까지는 전달되지 못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불룩한 아내의 아랫배 위에 긴 칼선이 그여졌다. 내 가슴 깊숙한 곳도 찢어지는 것 같았다. 파란 입술을 깨문 아내는 내 손을 꽉잡았다. 몸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턱을 위로 들어올리고 눈물을 흘려 내렸다. 아내의 깊은 한숨이 있고, 잠시 뒤 환한 조명이 켜졌다. 동시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수술실을 가득 채웠다.
아들과의 첫 만남. 너무나 뽀얗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태어났다. 탄생이 이루어진 수술실은 생명의 온기로 가득 찼다. 갈라진 배를 꿰메일 때 아내는 눈동자만을 움직일수 있을 정도의 힘으로 고개를 돌려 멀리서 아기를 지켜보았다. 아내의 입술이 분홍색으로 돌아왔고, 입가에 얇은 미소도 보였다.
의료의 최종 도움이 없이는 출산을 할 수 없었던
아내의 몸상태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감사했다. 의료진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기도 산모도 위험했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학의 힘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불편했다. 의료의 최종 도움이 없이는 출산을 할 수 없었던 아내의 몸 상태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이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머리 위치가 비뚤어져 열려진 자궁문을 빠져 나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갈라진 나의 마음은 꿰매지 못한 채 수술실을 나왔다. 아내는 중환자실에서 하룻밤을 보낸후 식은 수프와 마른 빵으로 첫 아침 식사를 했다. 이틀 후 아기와 함께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아기와 함께 보내는 첫날 밤,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밤새 우는 아기를 달래며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긴 하루를 보내고 긴하루를 동시에 맞이하는 육아의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