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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킴박사 Sep 24. 2019

순산공부 #5

남편의 연구



 몸 내부의 변화를 보다 더 알기 위해 실용적인 고급 생리학이 필요했다. 수업과 인턴생활로 피곤했지만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매주 한 번 진행되는 생리학 수업을 한 학기 듣기로 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갔던 도시에 가기 위해 이제 홀로 아내를 생각하며 매주 A1고속도로를 달린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인체의 기능을 스스로 조율할 줄 아는 자율신경계가 나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낯설고 막연한 첫 출산의 현장에서는 교감 신경의 작용이 민감해질 것이다. 그려면 골반근육이 긴장되어지고, 가파른 숨 사이로 배에 힘을 주기가 힘들고, 마음의 불안으로 빨리 이 순간이 어떻게든 지나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럴수록 몸과 마음은 더 굳어지고, 골반의 이완과 아기가 빠져나오기 위한 공간 확보는 시간을 더 필요로 할것이다. 

 그러나 사전 출산 공부로 자신감 있는 남편의 눈빛과 힘있는 손길 그리고 출산에 대한 리허설을 하며 세심하게 준비해 온 산모의 마음은, 부교감 신경의 작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면 자궁과 주변 근육이 부드럽게 이완되고, 릴렉신(Relaxin)과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출산 호르몬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적절하게 분비될 것이다. 이를 통해 산모는 산통과 산고를 넉넉히 견디고 부부는 건강한 출산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캠브리지대학 야간수업. 인턴으로 녹초된 몸을 이끌고 런던에서 캠브리지로 오갔다. 아내의 몸을 더 잘 알기위해 공부했다.


 임신기간에 약물복용이 제한되는데 어떻게 임산부의 면역력을 높여 건강하게 지내도록 할 수 있을까


  늦은 밤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62마일 A1 고속도로 위에선 종종 여러 고민들을 풀어내곤 했다. 문득 '임신기간에 약물복용이 제한되는데 어떻게 임산부들의 면역력을 높여 건강하게 지내도록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번에는 58마일 떨어진 옥스포드 대학교로 향했다. 최신 면역학 소규모 특별세미나. 이틀 세미나는 우리 런던 보금자리의 두 달 월세보다 비쌌다. 나를 제외하고 참가자 대부분이 세계 굴지 제약회사 개발 연구원들로 회사의 후원을 받아 참여하고 있었다. 

 마이크로(Micro) 수준에서 바라본 인체의 세포 표면은 지구처럼 거대하고 광활했다. 아직도 밝혀내야 할 것이 더 많은 면역반응 결합작용에 대해 여러 메커니즘을 설명하던 교수는 문득 매크로(Macro)적인 면역체계의 흐름을 강조했다. 이미 우리 몸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이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면역세포의 순환을 말이다. 불현듯 예전 해부하며 보았던 우리 온 몸에 퍼져있는 림프선과 림프절들이 떠올랐다. 근육을 관통하고 주요 근육 사이로 지나다니는 림프선과, 관절들 주변에 모여있어 관절이 움직일 때 마다 그 물리적 자극을 이용해 순환을 해나가는 림프면역 순환. 임신 중 이 임파선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서는, 림프선과 림프절들을 감싸고 있는 근육과 관절의 이완과 움직임이 면역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기본이겠구나. 출산 후 아이에게 모유를 통해 면역세포가 잘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 흐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머리에 되네이게 되었다. 


옥스포드 대학교 세미나. 아내가 한국에서 수술 후 회복 중일때 남편은 아내의 몸을 공부하고 있었다.


 오랜 돌벽난로와 그 위 선반에 놓여진 의학 책들과 척추뼈 모형. 걸을 때 마다 삐걱 소리가 나는 오래된 나무 바닥. 벽과 천정을 둘러싼 오랜 원목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느껴지는 클래식한 교내 도서관이다. 도서관 문 닫는 시간이 매일 조금씩 다르다. 친구들은 도서관 문 닫는 시간을 모두 나에게 묻는다. 입학 후 첫 학기 힘겨워 하는 나를 도와주었던 친절했던 영국 동료들은 이제 나에게 노트 복사를 부탁하며 불친절하게 나의 집중을 방해한다.  도서관 2층. 논문과 저널들을 읽을 수 있는곳으로 자리를 옮겨 좀더 집중하려 했다. 창문 너머 백년이 넘은 영국의 집들과 잘 가꿔진 정원이 보인다. 수술을 잘 끝내고 따뜻한 미역국을 먹었다는 아내의 이메일을 확인하고 내마음도 좋아졌다. 저널들을 살펴보다 손길을 뻗어 집어 올리기에 버거운 구석 가장아래 선반대에 놓여진 저널에 눈길이 멈췄다. 먼지를 털어내고 페이지를 넘겼다. 1920년대에 편찬된 오래된 건강 저널이었다. 저널 속 한단어에 시선이 멈췄다. 웰빙 (Well-being). 


할당된 인턴시간이 끝나면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시험을 위한, 환자를 위한 공부보다 먼저 아내의 몸을 연구했다.


건강한 출산을 위해 임신의 웰빙이 필요하고, 그 전에 건강한 임신을 위해 웰리빙 (well-living) 즉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웰빙. 잘 지내는것. 잘 존재하는 것. 20세기초 건강에 대한 시대적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같은 고민을 하고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하는 건강에 대한 정의는 4가지 웰빙의 조화이다. 몸의 웰빙. 마음의 웰빙. 관계의 웰빙. 그리고 영혼의 웰빙.

 건강한 출산을 위해 임신의 웰빙이 필요하고, 그 전에 건강한 임신을 위해 웰리빙 (well-living) 즉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건강한 임신을 위해 4가지 웰빙의 조화를 만들어가며 웰리빙을 한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이것을 즐겁게 유지한다면 자연스러운 출산은 누구나 가능할 수밖에 없다. 단순하지만 소중한 삶의 진리를 찾은 기분이다. 

 아내의 몸을 고백하고(Go Back. 원래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린다), 그 마음을 이해해준다, 우리 사이에 막힌 관계의 벽을 하나하나씩 허물어내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과 맡겨진 새생명을 어떻게 키워낼지 함께 찾아간다면, 임신과 출산은  인간이 생애 누릴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위대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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