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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킴박사 Sep 24. 2019

아내의 유산, 소파 수술 #3

남편의 고백



 육아 19개월째. 아들이 태어난 병원 현관 정문 앞까지 차를 몰고 갔다. 아내가 두 번째 임신을 했다. 아내는 카시트 위에서 막 잠든 아들을 깨우지 않고 혼자 빨리 초음파 검사하고 오겠다며 차에서 내렸다. 출산을 위해 함께 걸어 들어갔던 긴 복도를 혼자서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봤다. 뒤에서 밀려들어오는 구급차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인근 주택가에 주차를 하고 아내를 기다렸다. 벌써 13주 차였다. 육아와 입덧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라 첫 초음파 검사가 늦었다. 


 예상보다 아내가 더 늦게 병원에서 나왔다. 배를 잡고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는 아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눈이 빨개져 있던 아내는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여보…아기 심장이 안 뛴다고 하네… 심장이 7주 때쯤 이미 멈춘 것 같다고. 이런 일은 요즘 흔치 않은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아내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기력이 없어 보였다. 내 심장도 호흡도 잠시 멈춰있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한국 가서 따뜻한 미역국 먹고싶다. 비행기 타는것을 추천하지는 않았는데....지금 나도 육아로 지쳐있고, 당신도 마지막 라이센스 시험 준비로 밤을 세우고 있으니까 나 좀 쉬다가 잘 회복하고 올께.” 


왜 유산이 되었을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한 것에 마음이 아팠다.

 

 아내 홀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해서 미안했다. 아니, 함께 가지 못해 미안했고, 가지 않아 속상했다. 머릿속이 계산으로 복잡했다. 함께 한국행으로 갈까? 몇 과목 재시험을 치르고 인턴 시간과 일정을 조율하고 제출할 에세이는 비행기 안에서 마무리하고…아…왜 이렇게 삶이 많은 것들로 엮여있을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한 것에 마음이 아팠다. 왜 유산이 되었을까. 영국도 35-40세 산모들의 유산 비율이 15%에 달한다는 통계적 수치가 나를 위로해주거나 합당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출국심사를 위해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천천히 보고 있을 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 보여오기 시작했다. 버거운 육아로 지쳐 한쪽으로 기울어진 어깨. 기울어진 쪽에 유난히 버거워 보이는 허리와 골반. 뒷모습만 봐도 보이는 앞으로 구부러진 등. 어쩌면 아내의 몸은 임신과 출산의 싹을 틔울 온전한 토양 상태가 아니었을지도. 아내를 보내며, 문득 19개월 동안 잊고 있었던 차가웠던 수술실이 떠올렸다. 그때 꿰매지 못한 가슴 깊은 곳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홀로 다시 수술대에 올려질 아내 모습이 그려졌다. 유산의 근원적 이유들을 조금씩 알게 되는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쟁 치른 듯 어질러진 육아의 흔적들이 가득한 방은
유산의 또 다른 이유를 속삭여 주었다. 마음의 지침. 

 

아내와 아이가 없는 텅 빈 집. 전쟁 치른 듯 어질러진 육아의 흔적들이 가득한 방은 유산의 또 다른 이유를 속삭여 주었다. 마음의 지침. 온종일 육아로 씨름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밥 한끼 편하게 먹지 못하고 케이크 한 조각 으로 점심을 채우는 바쁜 삶. 생명을 싹 틔울 영양분의 부족과 집중할 시간적 환경적 요인들의 부족함이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나는 가슴으로 이해되어 가고 있었다. 

엄마로 살아가는 아내의 뒷모습. 매일, 반복된 육아일상.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일상의 삶. 이른 아침 조용히 일어나 학교와 클리닉으로 향하고, 늦은 밤 조용히 집으로 와서 다시 부엌에서 책과 논문에 파묻힐 때 마다 되뇌였다. 지금의 노력이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가장이 되게 해 줄꺼야. 언젠가. 어리석었다. 무지했다. 후회했다. 가족이 흩어진 지금. 홀로 12시간 비행기에서 부대끼는 아들을 진정시키고, 유산이 되어도 멈추지 않고 있는 입덧으로 지쳐있을 아내. 그곁에 같이 있어주지 못한 못난 남편이고 아빠였다. 치열한 학위과정과 유일한 동양인 인턴으로 살아남기 위해, 환자들이 통증 없이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동료와 교수들의 기대치에 맞추기 위해 살았다. 그리고, 지쳐있는 아내 품속의 작은 태아는 생명을 싹 틔우지 못했다.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생명의 씨앗이 심어진다면 그때는 건강하게 생명의 싹이 틔워지고, 넉넉하게 그 생명이 지지를 받으며 태어나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건강한 출산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반드시 찾아 내겠다는 다짐으로 벽에 기대어 밤을 세웠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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