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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킴박사 Sep 23. 2019

남편의 후회 #1

남편의 고백

무지했다. 

잘먹고, 운동하고, 맘편하게 지내면 출산은 된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다 알아서 해줄거니까. 그리고 후회했다.





런던을 빠져나와 M4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히드로 공항으로 달려가고 있다. 백미러로 본 뒷 자석 아내는 창 밖의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있고 카시트에 앉은 두 살 아들은 잠들어 있다. 무거운 침묵으로 어느 덧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행 직항 항공권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 앞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아내를 한 동안 꼭 안았다. 아장 걷는 아들도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내의 배도 어루만져주었다. 아내는 눈에 맺힌 눈물이 흘려내리지 않도록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미소를 보내며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아내의 뒷 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아내는 한손으로 살아있는 아들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은 유산된 태아가 있는 배 위에 얹고 있다.



복잡한 공항을 빠져나와 바쁜 일상의 런던으로 향했다. 텅빈 뒷 자석을 거울로 계속 쳐다보게 된다. 부슬비로 앞 창문에 빗방울이 맺힌다. 공항에서는 억눌렀던, 가슴에 고여있던 눈물이 두 눈에 맺혀 흘러내렸다. 힘 빠진 발은 엑셀 페달을 밟기도 버겁다. 런던으로 들어가는 M4 고속도로 위에서 자동차 와이퍼처럼 한손으로 뿌옇게 흐려진 눈가를 연신 닦아냈다. 그리고 가슴 깊이 다짐했다. 이 다음에는 아내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임신과 출산이 되도록 해주겠다고.


홀로 남겨진 런던 핀칠리가의 작은 아파트. 바닥에 가득한 아들의 장난감을 치우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첫째 아들은 열 두 시간의 진통 끝에 결국 응급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차가운 수술실과 따뜻한 국물 없이 씹어야 했던 영국 병원의 딱딱한 식사들. 남편 손의 온기만으로는 아내의 몸을 따스하게 해주기에 부족했다. 이제 둘째 아이의 계류유산으로 다시 차가운 그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아내는 한국에서 수술을 하고 싶어했다. 수술에 대한 염려보다 수술 후 따뜻한 미역국을 먹고 싶기 때문이란다. 고생하셨다며 따뜻한 손길을 건네줄 것 같은 한국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싶다 했다.


왜 아내는 내과적 문제가 없었음에도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을 할수 없었을까?


 첫 번째 임신에서 왜 아내는 내과적 문제가 없었음에도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을 할 수 없었을까? 왜 의료의 최종 도움없이는 출산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까? 또 두 번째 임신에서 유산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영국 주치의는 ‘유산이 현대에 와서 흔치 않은 일이 아니다’ 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던 그 말들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더 깊은 고민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 이후 나는 나의 모든 환자에게 절대 어설픈 위로로 말을 먼저 건네지 않기로 했다. 그저, 안타까움의 눈빛과 공감의 시선으로 잠시 기다려주고 객관적인 내용들을 담담히 전해주기로 했다.


 동료들과 환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도서관 책과 논문 저널에 파묻혀 살며
새벽별을 보며 집으로 향할때가 잦았다.
 그러나 정작, 나는 나의 아내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나


 당시 나는 주목을 받았던 인턴과정의 예비 오스테오파스 전문의였다.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클리닉을 찾아오는 런던 시민들의 통증경감을 도와주고 있었다. 완벽한 영어는 아니지만 명확하게 통증의 원인을 진단하여 분명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설명을 잘하는 인턴이었다. 유럽인들에게 다소 낯선 동양적 공경과 예절로 환자들을 대하니 곱게 차려 입고 클리닉에 발걸음 하는 영국 할머니들이 참 좋아했다. 동료 인턴들이 꺼려했던 런던 북동부 출신 알코올 중독자도 늘 내 앞에서는 무장해제로 웃으며 귀를 기울이곤 했다. 


당시 의대의 전설이셨던 독일출신 얀센 명예 교수님도 젊었을 때 자기 모습 같다며 따로 불러 고급 치료방법들을 가르쳐주시기도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많은 교수님들이 이분의 노하우를 전수 받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번번히 거절 당했었다고 한다. 50명이 입학하여 15명이 포기할 정도로 고달픈 커리큘럼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 11시 병원도서관이 닫히면, 24시간 개방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기곤 했다. 동료들과 환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도서관 책과 논문 저널에 파묻혀 살며 새벽별을 보며 집으로 향할 때가 잦았다.


 그러나 정작, 나는 나의 아내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나. 도대체… 9개월간의 첫 임신 기간 동안 무엇을 해주었나.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위해 얼마나 고민을 했나. 아빠가 되기 위해 책이나 논문을 한번 읽어 본적이 있었나. 미안함과 후회와 자책스러운 한숨이 뒤섞여 홀로 남겨진 방에서 가슴에 고인 눈물을 모두 비워내며 긴밤을 뜬 눈으로 뒤척였다. 지난 날 첫째의 제왕절개 출산과 이어진 임신에서의 유산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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