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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마나 Sep 26. 2020

30화. 혼자서

 “늦었네. 밥은?”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엄마가 현관에 들어서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응.”

 “밥 먹었냐니까 ‘응’이 뭐야. 먹었다는 거야, 뭐야. …응? 안 좋은 일 있었어?”

 엄마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물었다. 엄마의 말이 길어지기 전 나는 방으로 숨어버릴 요량으로 재빠르게 내 방을 향해 몸을 돌려놓으며 말했다.

 “아니, 피곤해서.”

 엄마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못 본 체하고 방으로 들어섰다. 창밖 먼 곳으로부터 날아든 희미한 불빛이 어두컴컴한 방의 한가운데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곳으로 가서 몸을 뉘었다.

 저 벽 너머 박춘수를 떠올려 본다. 카페에서 나와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눌 때의 고보영 얼굴도 떠올려 본다. 평소 같으면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을 그녀가, 눈에는 눈물을 입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잔뜩 머금고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한 채 나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내가 먼저 뒤돌아 한 걸음을 옮기고 또 한 걸음을 내디디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까지도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어서 들어가라는 뜻으로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차마 따뜻하게 웃어줄 수는 없었다.

 믿고 싶은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나는 박춘수가 왜 믿고 싶었을까. 연인도, 가족도, 오래 두고 사귄 친구도 아닌, 기껏해야 오다가다 만난 이웃사촌일 뿐인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을 타들어가듯 아플까. 돌아보면 믿어야 할 이유보다, 믿지 말아야 할 이유가 경계해야 할 이유가 훨씬 많았던 이가 아니던가. 그가 도시계획공사에 있었다는 사실도 그날 권세진이 회의에서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지도 모른다. 박춘수는 이야기하려 했다지만, 모르는 일 아닌가. 박춘수가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 건 회의가 있던 그 날 이후였다. 그가 내게 가깝게 다가섰다고 느꼈던 때도 역시 그 날 이후였다. 기회가 되면 내게 차근차근 이야기하려 했다지만 그것 또한 그의 말일 뿐이다. 예상치 못했던 권세진의 등장이 박춘수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믿음을 붙잡아 두려 그날 이후 내게 더욱 가깝게 다가섰던 것일까.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왜 하는 거지. 그래서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가 나를 이용하려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를 향했던 내 마음을 돌려세우면 그만일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게 잘 안되지. 왜 이렇게 억울하지. 박춘수가 내게 진심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왜 나를 아프게 만들지. 마음에 값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래서 손해를 볼 수조차 없건만, 그저 거두기만 하면 될 일이 나는 왜 이리도 어렵지. 왜 박춘수가 밉지. 그 사람의 온기 때문인가. 그럴듯한 남자 어른이 되기 위해 궁금한 것들이 생길 때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이야기가 마음에 가득해져 버거운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잠시 기대어 쉬고 싶을 때마다 책을 뒤지고, 인터넷 속 다른 사람들의 삶을 뒤적이며 답을 찾곤 했던 그 당연한 시간들이 박춘수의 등장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그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있는 줄조차 몰랐던 내 마음 한 켠의 헛헛함이 그의 눈빛으로, 말로, 손길로 말미암아 생생해졌기 때문일까. 그를 잃고 또다시 마주하게 될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그 허전함이 나는 두려운 걸까. 이렇게 어두운 방안에 가만히 누워 기다리다 보면, 오늘 고보영이 내게 한 말들이 의미를 잃고 공중에서 흩어져 먼지처럼 어딘가에 내려앉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길 수 있다면 생각날 때 그저 쓱 닦아낼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 모른 척, 하고 싶다.      



 “좋은 아침!”

 사무실에 들어서자 김 실장이 화분에 물을 주며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나는 바로 자리로 가 컴퓨터를 켰다. 그런 나를 김 실장은 내내 지켜보고 있었는지 내 쪽으로 걸어오며 말을 건넸다.   

 “이 대리, 오늘은 왜 가만히 앉아있어?”

 “네?”

 “아니, 월요일이면 올리브 나무 흙이 말랐는지 체크하면서 물을 주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맨날 물어봤었잖아. 오늘은 왜 멍하니 앉아서 모니터만 보고 있는데.”

 “아, 네…. 제가 그랬어요?”

 “뭐래니, 무슨 일 있었어? 정신이 반은 다른 데 팔려있는데.”

 때마침 고보영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녀를 보자 아주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생각이 많았는지 평소와 달리 목소리에 힘이 없는 듯했다. 그런 고 주임을 보자 김 실장이 눈을 이리저리 굴려 가며 나와 고보영을 번갈아 보더니 알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옆으로 와 몸을 숙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고 주임이랑 무슨 일 있었어?”

 “네?”

 내가 되묻자 김 실장은 대답 대신 고보영에게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이 대리, 내가 트렁크에서 뭘 좀 꺼내야 하는데 도와줄래?”

 김 실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등을 쿡 쑤셨다.

 “아, 네네.”

 대답과 함께 나는 김 실장에게 이끌려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나가는 우리 두 사람을 고보영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아직 켜지지도 않은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사무실 건물을 돌아 뒤편 주차장으로 나를 이끌고 간 김 실장이 우뚝 멈춰서며 물었다.

 “고 주임하고 무슨 일 있었어?”

 “네?”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한 들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하릴없이 되묻기만 하고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시선만 떨구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김 실장은 눈을 질끈 감고 가볍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다, 둘이 무슨 일이 있었든 그건 말 안해도 되는데, 절대 티만 내지 마.”

 “네?”

 이번에는 그녀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김 실장이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다른 게 아니라 편집장님이 너희 둘이 일 말고 연애할까 봐 아주 노심초사인 것 같더라고.”

 나는 말 없이 김 실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눈빛에 머쓱해졌는지 말을 보탰다.

 “오해는 하지 말고. 알잖아, 편집장님 일 땡땡이 엄청 싫어하는 거. 너희 둘이 연애한다고 일 핑계로 여기저기 놀러 다닐까 봐 그러는 거지, 뭐.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편집장님 눈길을 끌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고. 괜히 이 대리만 성가시게 될 수 있으니까, 알았지.”

 오해하지 않았다.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나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다. 편집장처럼 나름 지역유지로 성공한 사람이 나같이 가진 것 없는 놈을 경계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다. 행여 고보영의 지금 나이에 그 성격에 나와 결혼이라고 한다고 달려들면 말릴 재간이 없을까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과정에서 고보영의 마음이 다칠까봐 염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괜한 걱정으로 엄한 내 마음에 생채기가 난 것이 억울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고 주임이랑 무슨 일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럴 일 없어요.”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김 실장은 머쓱해진 건지 날 걱정하는건지 처음보다 더 깊어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애써 한번 싱긋 웃어 보이고는 먼저 몸을 돌려 사무실로 천천히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편집장이 양복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있었다.

 “어? 이 대리 출근했었네. 뭐야, 김 실장이랑 밖에 있었어?”

 “아, 네, 제가 트렁크 좀 정리하는데 이 대리 도움 좀 받았네요. 편집장님 주말 잘 보내셨죠?”

 김 실장이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편집장에게 인사를 건네며 자리로 가 앉았다. 덕분에 나는 편집장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자리에 도착하자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오늘 군민위원회 갈 거야?’


 고보영이 보낸 메시지였다. 나는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러자 그녀가 다른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갈거야. 편집장님한테 오늘 너랑 같이 간다고 말하려고. 같이 가는거다.’     


 군민위원회에 꼭 오라던 박춘수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고보영에게 ‘왜 가는데’라고 물으려다 마음을 바꾸어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 생각해 볼게.’     


 때마침 김 실장이 편집장에게 그의 일정을 물었다.

 “편집장님, 오늘 위원회 회의가 몇 시라고 하셨죠?”

 “10시니까 조금 있다 나가야지.”

 “오늘 분과에 하 사장도 나오는 거죠? 그럼 이것 좀 전해주세요.”

 김 실장이 편집장에게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삼일상가 임대 물건 정리한 건데 그쪽 정 과장이 하 사장한테 최종 확인받아준다고 해 놓고 아직까지 답이 없어서요. 뭐가 그렇게 바쁜지. 어차피 정 과장도 하 사장한테 컨펌받아야 한다고 했으니까 가서 만나시는 김에 한번 물어봐 주세요. 이거 오늘 중으로 인쇄 넘겨야 해서.”

 편집장은 내키지 않는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답했다.

 “에이, 뭘 이런 것까지 들고 가서 물어보게 시켜. 참나. …알았어. 그럼 하 사장한테 혹시 문제 있으면 김 실장한테 바로 연락하라고 할게.”

 “알았어요. 감사해요, 편집장님. 하 사장 싫어하시는데, 하하하”

 김 실장이 자리로 돌아가자 어느 틈에 편집장 옆으로 갔는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고보영이 편집장에게 말했다.

 “편집장님, 오늘 분과회의 저랑 이 대리도 같이 갈게요.”

 편집장은 말을 건넨 고보영과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차례로 보더니 고보영에게 물었다.

 “왜, 거기 갈 일이 뭐가 있다고.”

 “저번엔 인사만 했지, 현안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가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들으면 홍영 돌아가는 것도 좀 파악하고, 그러다 보면 소식지에 낼만한 이야기도 나올 수 있고.”

 고보영이 말을 맺자 편집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에이, 그냥 분과 안에서만 나누는 이야기를 기사로 낼 수는 없지. 그리고 가면 어디에 앉아있을건데. 너무 눈에 띨 것 같은데.”

 “그냥 편집장님 모시고 온 사람들처럼 하면 되죠. 기사로는 그럼 말고 그냥 돌아가는 상황 좀 파악하려고요. 괜찮죠, 이 대리님?”

 그녀가 내게 말을 넘겼다. 별 생각 없이 앉아있던 나는 그녀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 네. 좋은 생각 같아요. 뭐, 네. 요즘 이렇다 할 취재거리도 없고.”

 편집장은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그냥 옆에 바짝 붙어서 앉아있어. 어디들 돌아다니지 말고. 괜히 다른 사람들 눈에 들어봤자 좋을 것 하나 없어. 알았지?”

 편집장이 나를 바라보며 당부하듯 일렀고 나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군청 주차장에 들어서기 무섭게 편집장은 고보영에게 주차를 재촉했고, 그녀가 기어를 주차에 넣기가 무섭게 문을 박차듯 열고 나아가 누군가를 향해 뛰어갔다. 나도 차에서 내리려 가방을 품에 안고 문을 열려는 순간 고보영이 말을 걸었다.

 “저기, 너무 깊게 생각 안했으면 해.”

 나는 룸미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에 없이 기운 빠진 그녀의 눈빛이며 목소리에 잘못 없이 속앓이했을 그녀가 안쓰러워졌다.

 “걱정하지 마. 네 말은 충분히 할만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해. 가자.”

 내가 먼저 차에서 내렸고 고보영이 따라 내렸다. 평소 같으면 먼저 가느냐며 핀잔을 주고는 생글거리며 곁에 섰을 그녀가 지금은 한 발자국 떨어져 터벅터벅 내 뒤를 따랐다. 나는 돌아보려다 말고, 그저 조금 더 천천히 걸었다.      

 편집장의 당부대로 우리 둘은 그의 곁을 바짝 따라다녔다. 늘 그렇듯 그는 오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회의 참석을 위해 온 지역 인사들은 물론이고 군청 사무실을 오가는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회의장에 도착했을 때 편집장은 우리를 달고 다니는 것이 내심 번거로웠지 내게 자신의 서류가방을 맡기며 먼저 회의장에 가 있으라 당부한 뒤 못 다한 인사를 나누러 어디론가 향했다. 우리 둘은 편집장의 당부대로 분과회의가 열리는 회의장으로 향했고 ‘고만덕’이라는 종이 명패를 찾아 그곳에 편집장의 서류가방을 놓아둔 뒤 회의장 한편에 비치된 보조 의자를 끌어와 편집장 뒤편 벽쪽에 붙이고는 나란히 앉았다. 회의장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나, 너무 후회돼.”

 고보영이 곱게 마주잡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지마. 별일 아니야.”

 내 말에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너가 못 봐서 그래. 그날 카페에서 덕구 너 표정을 잊을 수 없어.”

 나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늘 단단한 조약돌처럼 야무지던 그녀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한없이 고마워졌다.

 “고맙다.”

 “응?”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그러니까 이제 그런 걱정 그만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진짜 아무 일도.”

 그때였다.

 “일찍 왔네.”

 박춘수였다. 그가 활짝 웃으며 입구에서 우리 쪽을 향해 걸어왔고 우리는 당황한 나머지 동시에 자리에서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감색 양복에 하얀 셔츠를 반듯하게 다려입고 푸른 빛이 도는 검푸른 보라색 넥타이를 맨 그의 차림은 근사했다.

 “뭐야, 뭘 둘이 그렇게 놀란 사람들처럼 벌떡 일어나, 내 욕했어? 하하. 무안하네. 잘 쉬었고?”

 고보영은 표정으로도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박춘수를 보자 미처 표정을 가다듬을 여력이 없었는지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그대로 박춘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 박춘수는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는지 심각해진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밖에서 다들 인사하고 있던데.”

 그는 여전히 석연찮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화제를 돌리려는 내 뜻을 알아채고 응수해 주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나. 어색해서 들어왔지. 다행히 여기들 있었네.”

 사람들을 피해서 회의장에 들어선 건 박춘수만이 아니었다.

 “어쩐지, 여기 계실 것 같더라고요.”

 권세진이 목소리 톤을 높이며 우리쪽을 향해 경쾌하게 걸어왔다. 박춘수 역시 고보영만큼이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지 옅은 미소 뒤로 권세진을 향한 적개심이 희미하게 묻어났다. 권세진은 나와 고보영 그리고 박춘수와 차례로 악수를 나누고는 박춘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가 홍영 말고도 맡고 있는 지역이 두 군데 더 있는데, 홍영은 특별히 회의 날짜 꼬박꼬박 챙겨서 잘 오려고요. 아무래도 아는 얼굴이 있으니까 다른 지역보다 애정이 가네요.”

 권세진이 환하게 웃자 박춘수가 애써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각별하게 생각해 주는 줄 몰랐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고보영과 나는 눈치를 살피다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박춘수도 그런 우리가 마음에 걸렸는지 회의 테이블을 향해 걸음을 옮겨놓으며 권세진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두 사람이 조금 멀리 떨어지자 고보영이 조금은 밝아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오늘 권세진 과장이 뭐라고 하는지 잘 들어봐야겠다.”

 박춘수의 표정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권세진과 그런 권세진을 무표정한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는 박춘수를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그리고, 박춘수도. 박춘수가 뭐라고 하는지도 잘 들어봐야지.”  

   

(다음 주 월요일, 3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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