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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마나 Sep 29. 2020

31화. 불편해서 불편하신가요


 동네활력분과위원이 모두 모였다. 서로 인사를 나눈 위원들은 각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전통차 거리 번영회장 조숙영은 고만덕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고 하재명 사장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박춘수와 김원재 운곡시장 상인회 회장은 자리에 미리 놓여있던 회의자료를 각자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10시 5분 정도 되자 이재우 주무관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회의장으로 뛰어들 듯 들어섰다. 

 “열 시 좀 넘었다고 될 회의가 안되는 것 아닙니다, 천천히 오시지, 하하하.”

 그런 이재우 주무관을 향해 편집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껄껄 웃으며 쉽사리 숨을 고르지 못하는 그를 향해 말을 건넸고, 다른 이들도 이 주무관을 안심시키려는 듯 나름으로 가볍게 웃어 보였다.

 “매번 위원님들이 일찍들 오시니까 제가 긴장됩니다. 하하. 자아, 그럼. 다들 오셨지요?”

 이재우 주무관이 앉은 위원들을 한차례 빙 둘러가며 눈을 맞추고는 들고 온 업무수첩과 메모가 가득한 회의자료를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펼쳐놓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자, 그러면 다들 아실 테니, 아. 아니군요. 박 위원님은 처음이시니까… 음, 그럼 오늘은 현안을 이야기하는 첫 자리니까 오늘까지만 제가 사회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분과위원장이신 박 위원님의 진행은 2차부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네네,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지금 상황을 말씀드리면 작년 말에 홍영 도심 지역 재개발을 위한 국비 40억 정도를 따냈고요, 당초 도시계획공사에 제출했던 계획을 기초로 현재 해당 정비구역에 위치한 오래된 가옥이나 빈집, 잡종지 등을 지금 저희 과에서 정리 막바지 작업 중입니다. 이번 3기 위원회에서는 이렇게 정리된 부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군청의 고려가 필요한 부문에 대해 위원님들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고, 말씀해 주시는 고견은 저희 사업 진행할 때 소중하게 참고할 예정입니다.”

 이재우 주무관의 말은 사실 듣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말이었다. 듣기는 들을 테지만 꼭 그 말대로 하지는 않을 거라는, 대충 그런 식의 말이었다.

 “혹시 박 위원님, 제가 드린 말씀 중에 질문 있으실까요?”

 이 주무관의 물음에 박춘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하신 말씀 중에는 따로 없고, 회의 진행되면서 궁금한 것 여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재우 주무관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 그럼 일단 저희 과 향후 추진일정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정비구역 토지, 건물 등 매입해서 정리하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서, 이제 해당 부지 개발을 위한 업체 선정 입찰공고를 낼 예정입니다. 상세 입찰공고 세부내역은 공고가 뜨면 아시게 되고, 지금 단계에서 알려드릴 수 있는 건 공사 규모, 그러니까 대지 개발 규모인데요, 가지고 계시는 회의자료 두 번째 쪽 가운데 부분 네모 3번을 보시면 됩니다.”

 이 주무관의 안내에 따라 모두가 각자 앞에 놓인 인쇄물을 한 장 넘겼고 부지런히 주무관이 말한 내용을 눈으로 찾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위원들을 이 주무관은 잠시 기다리다, 다소 들뜬 표정으로 자랑하듯 위원들을 향해 설명을 보탰다. 

 “저희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고려해서 입찰 참가자격을 홍영에 법인을 두고 있는 우리 지역업체로 제한했습니다.”

 주무관의 말에 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춘수만 빼고.

 “주무관님, 질문이 있는데요. 지금 회의자료에 나와 있는 수준의 공사를 소화하려면 업체 규모가 상당 수준 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이런 규모의 업체가 홍영에 있습니까?”

 박춘수의 물음에 하재명이 가볍게 웃었고 고만덕은 그런 하 사장과 박춘수 그리고 이재우 주무관의 표정을 기민하게 살폈다. 

 “아, 박 위원님. 그럼요, 저희가 그런 조사도 없이 홍영 법인에만 제한을 두었을 리가 있습니까.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사를 안하셨을까봐 걱정하는 건 아닙니다.”

 말을 마치고 웃을 준비를 하던 주무관의 얼굴이 박춘수의 말에 다시 굳어졌다.

 “일단 제 질문은 이런 수준의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규모의 건설사 풀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네요.”

 박춘수의 질문에 모든 위원의 얼굴이 저마다의 이유로 제각각 일그러졌다. 

 “위원님, 이게 제한경쟁이 아니기 때문에, 저희가 따로 몇 개 업체를 생각해 두고 입찰을 진행하는 건 아닙니다. 저희도 몇 개 업체가 응찰하게 될지는 모르지요.”

 이 주무관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듯 주변을 힐끗 살피더니 어린아이 다독이듯 박춘수를 얼렀다. 그러나 박춘수는 그대로 물러설 기미 없이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주무관님도 아실 텐데요. 이 정도 규모의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매칭 펀드 5:5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업체는 제 생각에 손에 꼽을 것 같은데요. 만약에 단 한 개 업체만 응찰했다고 가정해 보죠. 수의계약 요건이 어떻게 됩니까. 단독업체가 응찰할 경우, 몇 번까지 유찰이 나야 수의계약 성립이 가능하죠?”

 이 주무관은 거의 울상이 되었고 하 사장은 아랫입술을 짓이기듯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그러나 주무관이 답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답을 안 한들 박춘수가 이를 가만둘 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게 위원님, 그건 내부규정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어차피 입찰공고에서 다 설명이 되는 부분일 텐데 왜 대답이 어려우시죠? 공고 게시되면 다들 알게 될 내용인데, 보안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 순간이었다. 이 주무관의 시선이 하 사장을 향했다. 그 시선을 눈치챈 고만덕은 바로 박춘수를 바라보며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고, 박춘수가 그 찰나를 놓칠 리 없었다. 

 “제 기우일 수 있겠습니다만, 주무관님.”

 박춘수는 목을 훤히 드러낸 먹잇감의 숨통을 노리는 날쌘 육식동물처럼 아주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만약에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말씀드린 것처럼 이 건에 응찰할 수 있는 업체는 있더라도 손에 꼽을 정도일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응찰업체가 하나라 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싶은,”

 “박 위원님, 너무 나가셨네요.”

 박춘수의 말을 무지르며 나선 이는 권세진이었다. 하 사장은 말을 아끼는 눈치였지만 자꾸만 입술을 씰룩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어지간히 참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박 위원님,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서 지역에 법인을 둔 업체에 기회를 준다는 것이 홍영 주민으로서 해당 공무원을 칭찬해 주셔도 모자랄 판에 특정업체라니요. 그럼 이런 입찰 자격 제한없이 그냥 오픈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본력 빵빵한 큰 업체들이 밀고 들어올 텐데, 그런 업체들이 독식하는 모습은 보기 좋으시려나요. 좋게 생각하시면 되실텐데 일하는 공무원들 힘 빠지게 너무 하십니다.”

 권세진이 안경 너머로 뱀눈을 빛내며 능글맞게 박춘수를 향해 말했다. 그제야 이재우 주무관의 표정이 고비를 넘긴 듯 편안해지기 시작했고 다른 위원들도 심각해진 얼굴을 거두어 권세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권세진이 여세를 몰았다. 

 “그리고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혹시나 모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말씀을 드리면, 행여라도 업체 하나만 응찰한다고 해 보죠. 그래서 수의계약을 했다고 치죠. 절차에 따라서 진행하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 체결하는 게 걱정되어서 외지 대기업 건설사들이 이런 공사 건을 독식해 가는 건 괜찮으십니까?”

 권세진이 말을 마치자 하 사장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마 박 위원님이 서울분이라 그러신가 본데, 이런 결정이 지역 기업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올해 봄이었던가.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을 넘어섰다는 뉴스를 보던 엄마가 오징어채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었다 - ‘하이고, 도대체 그 돈은 어느 놈 주머니로 들어가길래 내 주머니는 어떻게 노상 이렇게 텅텅이냐, 이놈들아.’ 외지 기업이든 지역기업이든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어떨 때는 대기업을 유치해야 한다며 난리이고, 어떨 때는 지역 기업에게 기회를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 되었든 엄마를 포함한 대부분 운곡맨션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가 권세진의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 ‘어느 놈이 됐든, 내 주머니 채워주는 놈이 제일이다.’ 하지만 박춘수는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 위원 중 어느 누구도 우리 엄마같이 말해 줄 사람은 없는 듯했다. 박춘수가 승기를 잡는 듯했던 분위기가 권세진의 등장으로 반전되었다.

 “특정 지역업체를 고려한 참가자격 설정이냐는 의문이 어떻게 외지 대기업을 끌어들어들이는 것은 괜찮냐는 비약이 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네요. 의혹이든 의문이든 분명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명료하게 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시민의 의견을 듣자는 게 이 위원회의 취지인 줄로 알고 있는데요.”

 박춘수가 말을 이었지만, 회의 테이블에 앉은 이 중에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 이는 더 이상 아무도 없는 듯했다. 권세진의 말이 비약이든 거짓이든 핑계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아 보였다. 그 사실은 김원재, 조숙영, 고만덕, 하재명, 이재우의 표정이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박춘수의 말에 일그러지던 그들의 얼굴은 권세진의 말에 ‘하마터면 불편할 뻔 했다’는 안도가 묻어나기 시작했고, 머지 않아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곁에 앉아있던 고보영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정치하네.”

 “누구?”

 내 질문에 고보영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권세진 말이야.”

 그녀는 내 말을 기다리는 듯했으나 달리 덧붙일 말이 없었다. 그 때 운곡시장 상인회 김원재 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기 부지 위치가 정확하게 어디입니까.”

 “아, 네. 옛날 극장 터 아시지요? 거기 건너편에 빈집하고 노지있는 곳, 그쪽입니다.”

 이 주무관의 대답에 김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2기 때는 정확하게 사업할 땅이 정해지지 않았었는데, 아닙니까? 그냥 몇 개 후보지가 있다, 이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게 언제 정해진 겁니까?”

 “아, 저번에 설명을 드렸었는데. 이게 그때 2기 3차 회의 때 몇 개 후보지를 정해서 국비 신청을 할 거라고 말씀드렸고, 우선순위를 올려서 진행했었어요. 그리고 지금 사업지가 1순위였는데 원안대로 통과되어서 최종 사업지가 되었습니다.”

 이 주무관의 말에 김 회장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 이게 운곡시장하고 너무 가까운데, 이게 쇼핑몰 들어서고 그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하 사장이 김 회장의 말을 받았다. 

 “김 회장님, 사업지 확정된 게 언제인데 갑자기 왜 옛날이야기를 하십니까. 무슨 걱정하시는 줄은 알겠는데 운곡시장하고 잘 상생할 방도를 고민해 보자, 이렇게 나와야지요.”

 “쇼핑몰이요?”

 이번에는 박춘수가 하 사장의 말에 끼어들었다. 하 사장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대꾸했다. 

 “하, 이거 참. 회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하니까 뭐 진행이 이게 제대로 됩니까.”

 하 사장이 역정을 내듯 혀를 찼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김 회장은 무슨 까닭인지 말을 거두었다. 조숙영 회장도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잠시 미루는 눈치였다. 권세진은 슬며시 웃고 있었고, 편집장은 과하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춘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결코 편해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살피던 이 주무관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쇼핑몰이라며 되묻던 박춘수의 말을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러면 저희 일단 잠시 분위기를 식히는 차원에서 저기 회의장 뒤편에 준비된 커피 한 잔씩 하시고 10분 후에 다시 뵙죠. 그때 다시 향후 일정보고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재우 주무관의 말에 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하 사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향해 다가오려던 박춘수를 편집장이 잡아 세웠다. 편집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심각한 이야기는 전혀 아닌 듯 했다. 단지 우리 쪽으로 오려는 박춘수를 막아서려 없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가며 그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듯했다. 편집장은 워낙에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이니 이상할 일도 아니다. 나도 바람이나 쐴 겸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 밖으로 나섰다. 느린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불러세웠다. 권세진이었다. 

 “이 대리님, 회의에도 오시는 줄 몰랐네요?”

 “아, 네. 편집장님이 오자고 하셔서.”

 “담배?”

 “아뇨, 안 피웁니다.”

 나의 대답에 그는 품에 있던 담뱃갑을 빼 내려다 말고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대리님, 안 그래도 연락을 좀 드려볼까 했는데. 저희 중부지사에서 이번에 국민정보공개 일환으로 서비스를 하나 오픈하거든요. 그거 매일홍영에서 취재 좀 해 주셨으면 하는데. 저희 중부지사 관할권역에 홍보를 좀 해야 해서. 오실 수 있으실까요?”

 예상치 못한 제안에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그럼 이번 주 수요일에 괜찮으실까요?”

 “네, 저는 오전이 괜찮은데 10시 괜찮으세요?”

 “오신 김에 같이 점심도 하시고 그러죠, 11시 어떠세요?”

 점심이라니, 평소같으면 안된다고 했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를 향한 호의나 신뢰 그 어느 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그러시죠. 11시에 뵙고, 점심도 괜찮습니다.”

 권세진은 뱀눈을 번뜩이며 싱긋 웃었고, 나와 함께 내려가던 계단에서 몸을 우뚝 돌려세우더니 이렇다 할 말도 없이 그대로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다음 주 월요일, 3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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