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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tsbie Jul 05. 2020

서울에서 살아남기

살아남기 참 힘들다

독립한지 7년째, 서울에서 산지는 어언 4년째. 지금 집으로 이사온 지는 5달 됐다.



분명 집 계약하기 전에 부동산 아저씨와 함께 둘러볼 때는 깨끗하고 멀쩡했던 집이었는데 입주하자마자 한 두 개씩 말썽이더니 오늘은 세탁기에서 누전이 일어났다. 괜히 치기 어린 마음에 아빠한테 전화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빠, 어떻게 된 게 이 놈의 집구석에 제대로 굴러가는 게 하나도 없어. 처음에는 냉장고가 말썽이더니 인터넷도 잘 안돼, 곰팡이도 슬어, 방충망은 다 찢어져, 입주한지 다섯 달짼데 아직도 집을 고치고 있는 게 말이나 돼?"


"서울에서 살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해.

그 정도 가격에, 그 정도 옵션으로 살려면 몇 가지는 손해 보더라도 꾹 참고 해결해나가야지."



맞는 말인건 알았지만 서러웠다. 가뜩이나 신경 써야 할 일도 태산인데 집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야 하는 게 짜증났다. 



집에 입주한지 다섯 달이나 지났는데도 집을 계속 손보는 중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반전세를 구하려다 보니 지어진 지 오래된 집에 입주하게 되었고, 집이 낡을대로 낡아 멀쩡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벽지가 통째로 갑자기 뜯어지고 커튼을 걷다가 나사로 박아놨던 커튼봉이 벽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방충망이 헐어서 모기는 슝슝 들어오고. 속상한 일뿐이지만 이게 다 집 떠나와서 고생이라는 생각에 한숨 푹푹 쉬면서 집을 수리중이다.



내가 자취하고 있는 집은 역으로부터 도보 2분 거리의 집이다. 내가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게 역으로부터 거리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집을 나와 1-2분만 걸으면 금방 인파에 둘러싸여 정신 없는 서울의 분위기에 합류하게 된다. 조용한 집에서 빠져 나와 전쟁과도 같은 현실에 스며드려면 1-2분 사이에 정신을 챙겨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한다. 내 본가는 경상도이지만 방학 때마다 집에 내려가지 않는다. 집에 내려가면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이유였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뒹굴뒹굴 휴대폰만 하면서 나태해질까봐 불안했다. 서울에 있으면 항상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니까 나도 덩달아 바삐 나를 채찍질 하며 달릴 수 있고 뭐라도 할 걸 만들어서 하게 되니까, 매번 꾸역꾸역 서울에 남아 바쁘게 달렸다.



대한민국, 서울공화국이라고 하지 않나. 나와 내 친구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남아있기 위해 비싼 집세를 감수하며 살고 미어 터지는 지하철과 꽉 막히는 도로를 감수한다. 난 지금 서울에서의 삶, 타지에서의 삶이 꽤 힘겨운 것 같다. 그럼에도 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상상해왔던 어른의 모습. 여의도나 광화문에 직장을 잡아 출퇴근하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여기에 남아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 모든 힘든 걸 감내하면서까지 서울에 남아있으려 할까. 좋은 직장이 많고 문화적 인프라도 좋으니까? 내 순간의 행복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그만큼의 등가적인 가치가 있는 걸까. 모르겠다. 바쁜 인파에 몸을 맡기다 보면 현실 감각이 무뎌지고 계속 앞으로, 계속 미래의 내 행복에게만 기대를 걸게 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서울로 온 거 같은데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Seoul, Soul 

외국인들이 서울을 Soul로 많이 알아듣는다던데. 소울 푸드(Soul Food)가 미국 남부 노예제 시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슬픔을 담고 있는 음식이듯, 서울도 나중에 먼 미래에는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이 힘겹게 살아간 애환이 담겨있는 소울 시티(Soul City)라고 국사책에 실리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으로 하루를 달랜다.



아직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고 불확실한 미래에 여전히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와중에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서울에 매몰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거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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