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똑똑한 무능력자다. ‘똑똑한’을 붙인 건 살면서 여러 차례 느낀 적이 있어서인데 더 큰 이유는 그냥 무능력하다고 말하기 미안해서다. 아빠는 운도 없고 줄도 없고 현실 감각도 없는데 심지어 도와줄 가족도 없는 사람이었다. 유복자였던 아빠를 두고 할머니는 재가를 했다. 아빠는 큰 이모네, 둘째 이모네, 막내 이모네를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빠와 달리 교장 선생님네 막내딸로 태어난 엄마는 순수하고 낙천적이고 단순했다. 엄마는 가족도 없고 운도 없는데 잘생기고 자존심이 센 아빠에게 반해서 집안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결혼한 이후에도 아빠의 운 없음은 지속 되어서 엄마는 외갓집에 가서 자주 돈을 가져왔다. 돌이켜 보면 힘든 일이 많았다. 빚쟁이들이 쫓아오고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시팔’이란 단어도 돈 받으러 집에 찾아온 어떤 아저씨 때문에 알게 되었다. 여덟 살 때였던 거 같은데 아저씨 입에서 ‘시팔’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던 그 순간의 기분이 아직도 기억난다. 뜻도 잘 몰랐는데도 마음이 와장창 깨지면서 우리 집이 더러워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래도 엄마는 늘 씩씩하고 명랑했다. 아빠는 이상하게 품위가 있었다. 큰소리를 내서 화를 내지도 엄마와 다투지도 않았다. 그 시절들을 지나오면서 아빠의 자존심이 꺾이지 않았을 리 없고, 엄마가 운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을 텐데 아빠는 하얀 학 같고 엄마는 따뜻한 호빵 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아직도 학 같고 호빵 같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인간은 그냥 태어난 자기 모습대로 사는 수밖에 없어서인 것 같다.
선택이 가능했다면 아빠는 유복자로 태어나고 싶지도, 어린 나이에 친척 집을 전전하고 싶지도 않았을 거다. 넉살 좋고 계산이 빨랐다면 그렇게 번번이 사업에 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빠는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다. 아빠는 자존심 세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나 자기의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자기 몫의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아빠는 남편의 장례식장에 와서 나에게 딱 한 마디를 건넸다. ‘선희야 울지 말어. 다 네 팔자야.’ 그러면서 아빠는 내 등을 천천히 두 번 다독여 주었다. 아빠는 진작에 운명에 진 사람이었다. 운명에 지고 자기를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 아빠의 그 말은 점점 울림이 커져갔다. 나는 자주 그 말을 되뇌었다. 결국 아빠가 건넨 그 말은 뿌리를 내리더니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일까, 이제 나도 다가오는 대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박선희라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박선희의 운명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어떤 일이 닥치든 다가오는 대로 살아가는 수뿐이다. 너무 돌아보지 말고 너무 걱정도 말고 담담하고 산뜻하게 살아가는 수뿐이다. 이것이 2020년, 내가 가장 자주 되뇌었던 각오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나도 엄마처럼 아빠처럼
호빵 같이, 학 같이
따뜻하고 품위있게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