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의 사랑

두 번째 일기

by 박선희


내가 쓴 두 번째 일기는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스물에 겪은 짝사랑에 대해 썼다. 밤만 되면 기침을 부르던, 시름시름 앓을 정도로 좋아했던 짝사랑에 대해 썼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사랑을 잘 모른다. 남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게 뭔지 지금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 사랑에 대한 것뿐이다. 스물한 살에 남편을 만나 6년을 사귀고 결혼했다. 12년을 함께 산 우리는 삶과 죽음으로, 서 있는 곳이 갈리게 되었다. 남편을 보내고 나는 사랑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사랑이 뭘까, 우리가 한 것은 마지막까지 사랑이었을까.


스물 중반의 나는 너의 괴로움이 나에게 고스란히 옮겨 오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기쁨보다도 괴로움에 있어서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건 결혼 전에 언젠가의 남편이 내 앞에서 눈물 콧물을 흘리고 울었기 때문이다. 그때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남이 우는데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있구나, 이런 게 사랑이구나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사귀고도 몇 년 쯤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렇게 오래 만난 후였는데 그때 그 순간에 비로소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이후에도 늘 생각했다. 우는 그 마음이 네 마음인지 내 마음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의 다짐을 나는 혼인 서약서에 썼다. 당신이 내 앞에서 크게 울음을 터트린 날, 나는 당신이 되어버렸다고 썼다. 당신이 웃어서 내가 웃는 게 아니라, 당신이 울어서 나도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당신이 되어버렸다고 썼다. 그러니 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썼다.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구에서, 우주에서 나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당신을 사랑해서 나는 우주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되었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식 날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각자가 써온 혼인 서약서를 읽었다. 그 순간 나는 우리의 사랑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십 년 넘게 부부로 함께 살았다.


대부분의 부부처럼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우리 사랑이 완벽한 것이 아니었나 분해서 눈물 흘린 적도 있고 내가 몰랐을 뿐 사랑이 원래 이런 것이구나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 적도 있었다. 사랑했고 미워했고 이해했고 귀여웠고 무심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꼈다. 그냥 남들처럼 살았다. 특별한 것이라곤 조금 일찍 헤어진 것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의 사랑이 이후에 어떻게 변했대도 그날 결혼식에서 내가 느꼈던 기분은 진짜였다. 우리의 사랑은 완벽했고 지상 최고였다. 서로에게 혼인 서약서를 낭독해주던 우리는 퍽 아름다웠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누군가의 괴로움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구분한다. 너의 괴로움이 너의 괴로움으로 그치지 않고 너의 괴로움을 상상하기만 해도 괴로워지는 것, 적어도 내 사랑의 기준은 그렇다.


언제나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것은 그러므로 사실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괴로운 한 나 역시 기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당신의 안녕을 빈다.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상했더라도 금방 떨쳐냈으면, 곧 잊었으면, 다시 웃었으면, 그랬으면 좋겠어서 안녕을 빈다.


어떤 마음을 갖는 게 아무 마음도 갖지 않은 것보단 힘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너의 안녕을 비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으로 나는 힘이 생겼다.

이 힘이 공기를 가르고 너에게 닿으면 좋겠다. 손오공이 쏘는 에네르기처럼 공기를 가르고 너에게 닿으면 좋겠다.

그래서 네가 '오늘은 이상하게 기운이 나네.' 그러면서 괜히 한 번 웃으면 좋겠다.


내가 자주하는 아름다운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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