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허무해, 그래도 사랑하지

by 박선희

짧지 않은 시간을 살면서 저는 세계의 본질이 허무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많은 일들이 우연히, 이유 없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문도 모른채 태어난 우리는 이유 없이 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면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을 찾아 헤매지만 이것에도, 저것에도 쉽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면 곧 스르르 사라져 버리는 게 행복이니까요.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 안의 허무는 점점 커져갑니다.


왜 사는 걸까, 이렇게 사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시달리다 보면 허무해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돌이표처럼 돌고 또 돌뿐,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오랫동안 그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어떤 의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가는 자체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왜’나 ‘어떤’에 방점을 찍으면 허무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니 태어난 이상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의미라는 걸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나를 둘러싼 세계와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아야 허무에 깊게 빠지지 않을 수 있구나, 어느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허무에 빠지더라도 검게 뻥 뚫린 허무의 구멍에 뚜껑을 덮고 뒤돌아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채울 건 사랑뿐입니다.


그 사랑은 찬찬히, 자세히 바라보는 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얼핏 휙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의 안에는 무엇이 들었나, 이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걸까,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 속에 사랑이 차오릅니다. 제 사랑의 방식은 그렇습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일기를 쓰며 그런 일들을 해온 것 같습니다. 스쳐 지나가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는 일을 말입니다. 어제 있었던 일을, 그제 만난 사람을, 오늘 뜬 달을, 내일 아침에 필 꽃을, 4월에 부는 바람을, 8번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의 미소를.

아침 6시에 일어나 일기를 쓴 십 년 동안 저의 인생에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아 서툴고 벅찬 순간이 많았고,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시 돌아와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또 다른 인내와 에너지를 필요로 했습니다. 남편과의 사별은 상상조차 해 본적 없는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이 일들을 겪으며 세계의 무자비한 면에 상처받으면서도 혼자 쓰고 걷고 생각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있어서 저는 이 세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나누고 싶은 것은 세계를 사랑해 온 저의 방식입니다. 작은 것들을 가만히 살피며 크게 키워온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돌아보고 되새기고 다짐하는 일을 반복했던 저의 아침 6시 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또 다른 사랑을 불러일으키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만의 6시를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도 누군가가 쓴 몇 줄의 글을 붙들고 겨우 버티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 세계에 사는 우리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쓴 글을 나누는 이 시간이 친구들에게 아침 6시 같다면 더할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제가 건네는 첫 인사입니다.


세계는 허무합니다. 그렇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껏 제가 내린 결론은 그렇습니다.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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