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멀어지는 법

‘만약에’는 부질없어

by 박선희

“세상에는 겪지 않는 게 더 좋은 일들이 있는 것 같지 않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내게 만약 선택이 가능하다면 남편의 죽음을 겪지 않는 쪽을 고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고민할 것도 없는 너무 당연한 질문이었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말문이 막혀버렸다. 당연하다고, 겪지 않을 수 있다면 당연히 겪지 않는 쪽을 선택할 거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왜지, 왜 이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거지, 스스로에게 놀라며 속으로 말을 골랐다. 그러다 겨우 ‘나는 인생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만약에’는 부질없다.


‘만약에’는 남편을 보내고 나서 내가 가장 버리기 힘든 말이었다. 만약에 그때, 만약에 그날, 만약에 내가.

‘만약에’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이후의 일을 상상하는 것은 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버티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만약에’를 지워나가야 했다. ‘만약에’로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후회의 굴레를 둘러쓰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나는 그 말을 버렸다.


그런데, 친구가 '만약에' 선택할 수 있다면 겪지 않는 쪽을 선택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은 나를 순식간에 4년 전 그 자리로 돌아가게 했다. 티브이에 있는 되감기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온갖 힘을 다해 통과해 온 길을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에’를 상상해야 했으니까. 무기력했다. 대답할 수 없었다. 쉽게 대답하기에는 내가 너무 안간힘을 다해 그 시간들을 지나왔다는 걸 알았다. 어떤 일들은 간단히 말해질 수 없고 만약에는 부질없구나 그런 걸 배웠다.


‘만약에’는 우리를 후회의 순간에 붙들어 둔다. 그러지 말걸, 이렇게 할걸. 그러니 후회에서 멀어지려면 ‘만약에’를 버려야 한다. 나는 그 말을 버리고 후회는 후회로 남겨둔 채 그 순간들에게서 돌아서는 방법을 선택했었다. 그리고 매일을 살았다. 그랬더니 뒤에 두고 온 후회와 조금씩 멀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후회를 현재 진행형으로 데리고 다니지 않을 뿐이다. 걸어온 어느 곳엔가 후회를 놓아두었다. 같은 순간을 곱씹으며 그럴 걸 이럴 걸 나를 탓하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한 번뿐이니까.


남편의 죽음으로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은 없어. 우리 인생은 너무 한 번뿐이다. 그러니 귀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인생은 귀해.’라고 말할 때 내가 잃은 또다른 인생이 떠올라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쓰리다. 그래도, 그래서 더 귀해. 그런 걸 알게 되었다.

어제의 후회에 묶여 있기엔 오늘 핀 꽃이 너무 아름답다

어제, 오늘, 내일을 후회로 채우기엔 놓치기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다.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달이 빛난다. 꽃이 핀다. 나는 후회를 하느라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무엇이든 지금 좋은 것을 좋은 그대로 느끼고 싶다. 이것이 지금 내 진짜 마음이다. ‘만약에’를 버리고 얻은 ‘지금’의 내 진짜 마음. 그러니 누구라도 '만약에'를 버리고 후회와 멀어지면 좋겠다. 지금을 손에 넣었으면 좋겠다. 2월이 시작되었고 목련나무에 새순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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