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엔 오사카에 다녀왔다 이번 오사카행의 명장면을 단 하나 꼽자면 문 연 이자카야를 찾아 아와자 밤 골목을 누비던 순간이다. 명숙씨네 가게에서 저녁을 먹고 2차를 나선 김이었다.
명숙 씨는 오사카에 있는 친구로 내 책에도 나와서 책을 읽은 친구들이 종종 명숙 씨의 안부를 묻는다. 오사카에서 작은 스낵바를 열었던 명숙 씨는 한국 식당의 사장님이 되었다. 명숙 씨 솜씨가 좋아서 입소문도 나고 TV에도 소개가 되어 꽤 인기 있는 식당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명숙 씨를 처음 본 2015년, 명숙 씨의 소원은 한국 식당을 여는 것이었다. 딸아이와 단 둘이 낯선 오사카에 와서 그 소원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애를 썼을지 헤아리다 보면 뭉클해진다. 명숙 씨의 딸인 유주는 지호와 동갑인데 십 년 전 어린 유주를 혼자 집에 두고 일하러 나가야 했던 일이 지금까지도 사무치게 미안하다고 했다.
작년 가을에는 오사카에 가서도 만나지 못해 이번에는 머무는 이틀 모두 명숙씨네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둘째 날인 일요일은 식당 휴일이라 간판도 모두 내리고 우리가 앉은자리에만 불을 밝혔다. 식당에는 나와 명숙 씨, 가영 씨, 시오짱, 정은이뿐이었다.
가영 씨도 오사카에서 만난 친구인데 우리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 더 가까워졌다. 일본 철강 회사에서 일하는 가영 씨는 가끔 한국으로 출장을 오는데 그렇게 만나다 보니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가영 씨는 희한할 정도로 마음이 넓고 굽어진 곳이 없어 만날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한다.
시오짱은 일본인인데 명숙 씨와 가영 씨의 친구다. 오사카에서 몇 번 만난 시오짱은 말수가 무척 적다. 나는 말수가 적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게 된다. 마음에만 두고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말은 없을까, 그게 뭘까 그런 걸 상상하다 보면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다만 시오짱은 가끔 아주 큰소리로 웃는데 그날 몇 번이나 그렇게 웃어서 말은 안 해도 즐거워하고 있구나 안심했다.
작년 가을에 함께 오사카에 갔던 정은이는 지난달에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 조문을 간 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3월에 오사카에 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바로 비행기를 예매했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느라 고생했을 정은이에게 편히 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렇게 다섯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내일 일해야 하니까 오늘은 맥주 한 잔만 할 거야라고 했던 명숙 씨가 소주를 한 병 먹을까라고 했을 때, 짜릿했다.
“우리 독수리 5형제 하자!”
갑자기 머리에 독수리 5형제가 떠올라 툭 던졌는데 아무도 그걸 왜 하냐고 묻지 않았다. 소주를 퍼마시던 우리는 단숨에 그냥 독수리 5형제가 되었다. 1호부터 5호까지 후딱 정하고 자기 이름을 외치고 원샷을 했다. 영문도 모른 채 4호가 된 시오짱은 엉겁결에 파도를 탔다. 깔깔 웃으며 2차를 가려고 가게를 나섰다. 문 닫은 곳이 많아 여기저기 찾아 헤매며 아와자의 뒷골목을 누비는데 신이 났다.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씩씩한 모두가 대견해서 마음이 벅찼다.
정은이가 작년 초에 남편상을 치르고 가영 씨가 작년 말에 이혼을 해서 우리는 어쩌다 보니 모두 남편 잃은 여자들이 되었다. 아파서 죽고 사고로 죽고 그냥 막 죽었다. 너무 사랑했다가도 남이 되었다. 현재 스코어로는 일 년도 안 된 사이에 남편과 아버지를 보낸 정은이가 괴로움 탑티어지만 우리는 사실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했다. 말이 그냥 너무 말 같아서 아무 말 못 하고 다만 함께 마시고 걷고 웃고 노래했다.
이젠 하다 하다 지구까지 지켜야 한다며 웃었지만 사실 우리가 지켰던 것은 서로였다. 웃음소리에 고단했던 시간들이 날아갔다. 내일을 열 힘이 생겼다. 좋아하는 일본 노래 중에 <満ちてゆく미치테유쿠>라는 곡이 있는데 가사 중에 ‘밝아가는 하늘도 저물어가는 하늘도 우리는 모두 넘어설 거야.’라는 구절이 있다. 그 부분을 따라 부를 때면 늘 앞을 보게 된다. 우리의 뒤에 뭐가 있었든, 우리의 앞에 뭐가 오든 그게 뭐라도 우리는 넘어선다. 함께 나란히 기대어 넘어선다. 서로 염려하고 같이 기뻐하고 많이 웃다 보면 어느새 내일이니까. 그렇게 내일 또 내일, 한 발씩 가다 보면 밝은 날 어두운 날 모두 훌쩍 넘어설 수 있을 테니까. 아와자의 밤골목에서처럼, 곁의 소중한 사람들과 내일을 열 힘을 쌓아나가는 시간들이 나는 너무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