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사건 처리와 보상을 위해 변호사 선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고가 있은지 2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Zeliha 언니와 Nesrin 아줌마는 보상을 받기 위해 사고를 함께 당한 이들이 모두 모여 상대편 운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야 된다고 했다.
우리는 사고 이후 일상을 회복하는 것에 급급했던 터라 미처 보상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살면서 교통사고 자체를 당해본 것이 처음이었고 더군다나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의 소송은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문제였다.
He said he is lawyer But he is lier.
그런 우리에게 처음으로 변호사라는 존재가 나타난 것은 가족들과 함께 Arda의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짜 티가 줄줄 나는, 잘 봐줘야 동네 양아치 같이 생긴 남자 하나가 와서는 자신을 변호사라고 소개했다.
도무지 변호사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 남자는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와서 상처 부위 이곳저곳을 들쳐보며 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경계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내가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거부감을 표현하자 그는 나중에 연락하겠다며 황급히 사라졌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역시나 그는 변호사가 아니었다.(역시 관상은 사이언스다) Zeliha 언니 말에 따르면 그는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정보를 캐낸 뒤 사기를 쳐서 돈을 빼내 보려는 협작꾼으로, 아직 개인정보보호체계가 잘 발달되지 않은 터키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Zeliha는 병원과 언론사로부터 우리의 정보를 알아낸 사람들에게 수십 통의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언니는 그들이 변호사인지 사기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변호를 해주겠다며 5년 전 접촉사고 내역까지 들먹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들의 행동은 겉보기에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보상금이 높은 사건을 맡아 돈을 벌어보겠다는 심산에 불과했다.
눈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낯선 손님 두 명이 찾아왔다. 여자는 자신을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라 소개했고 함께 온 남자를 자동차 보험사 직원이라고 했다. 선임한 적도 없는 변호사가 그것도 고객의 집으로 직접 찾아오는 것이 퍽 생소했기에 우리는 그들의 방문에 적잖이 놀랐다.
그들은 상대편의 과실이 커서 승소할 확률이 높다며 자신들에게 케이스를 맡기라고 설득했다. 터키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 부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가족들 곁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오랜 이야기 끝에 그들이 떠났다.
그들이 떠난 뒤 저들에게 소송을 맡길 것인지 묻자 언니로부터 놀라운 이야기가 돌아왔다. 그들은 가족에게 '외국인인 저들이 높은 보상금을 받을 것이고 그에 반해 터키 법체계나 터키어는 모르니, 자신들에게 이번 케이스를 맡기면 한국인 몫의 보상금을 떼어 나눠주겠다'며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했다.
그들은 충분히 매력적인 자신의 전략이 먹혀들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가족들은 그 말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하며 '그들은 우리 일을 믿고 맡길 수 없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는 그들이 힘든 시간을 함께하며 가족같이 지내고 있는 우리 관계를 몰랐기에 일어난 해프닝이었지만, 만약 우리가 터키 가족과 아무런 유대 없이 남남 같은 사이었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사기를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2번의 사건은 외국에서 피해자로 소송을 걸고 보상금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가르쳐 주었다. 그와 더불어 변호사가 우리와 같은 편이 되어 함께 싸워줄 것이라는 믿음을 모두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첫 만남에서의 Soner과 1년 만에 다시 만난 그
당신을 믿어도 될까요?
그로부터 며칠 뒤 함께 사고를 당한 Nesrin 아주머니의 소개로 한 변호사가 찾아왔다. 아주머니는 자신과 같은 봉사단체에서 오래 보아왔다며 그는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전까지 겪은 변호사들에 대한 부정적 경험들로 인해 잔뜩 날이 서있던 나는 방어적인 자세로 그를 맞았다.
그 지역에서 꽤나 이름난 변호사였던 그는 나의 경계심 가득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영어로 우리와 직접 소통이 가능했고, 자신의 사무실과 이름이 적힌 명함을 건네었으며, 처음으로 보상금과 수임료가 아닌 소송절차에 관해 먼저 설명해주었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맡았던 한국인 부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우리처럼 터키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였는데, 열기구 추락사고로 한 명은 하반신이 마비되고 다른 한 명은 양팔을 못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그것이 우리 부부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에 몸서리치며 눈물을 흘렸다.
갑작스러운 나의 눈물에 당황한 그는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나는 그 간에 어려움을 토로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변호사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설명했다. 그는 자기를 믿고 사건을 맡겨주면 내가 억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노라고 했다.
그의 말은 나를 적잖이 안심시켜주었고 나아가 그간 잃었던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줬다. 그날 나는 마음의 빗장을 풀고 그를 우리의 변호사로 선임했고, 그는 위임장 작성과 공증 과정, 통번역 서비스에 대해 알려주며 그 이후 상황들을 진행시켜 주었다.
팍팍한 공증 사무실에서 답답한 번역사 선생님과.....
이튿날 우리는 인근 도시에 있는 공증 사무실 찾았다. 그것은 우리 사고에 관한 수사기록과 병원 서류들이 위조되지 않고 정식 발급된 공인 문서임을 확인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우리가 여권을 제출하고 위임장 작성하는 동안 변호사가 연결해준 전문 번역사가 위임장을 영어로 번역하여 읽어주었다.
터키 딕션이 잔뜩 섞인 영어로 더듬더듬 터키 문장과 영어문장을 오가며 설명하는 그녀의 번역은 우리가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우리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전문적인 법률 위임장을 이해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20만 원가량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공증을 받아 나오던 그날, 우리는 그것으로 모든 할 일이 끝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맞이 할 모든 과정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다가올지 전혀 알지 못한 채 홀가분 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