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끝났다는 기대와는 달리 본격적인 재판 준비는 한국에 와서야 시작되었다. 터키 경찰서와 현지 병원으로부터 서류를 전달받은 변호사는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급여를 산정할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우리는 귀국하자마자 인천공항에서 수도권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을 한 상황이었기에 병원 외부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병원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직장에 (그것도 얼마 전 퇴사를 하고 나온 시점에서) 급여와 관련된 자료를 요청하는 것은 참으로 껄끄러웠다. 그러나 우리는 어렵사리 전 직장에 연락을 취해 최근 1년 치 급여자료를 발급받았고, 우리 부부의 사고 전 경제상황을 증명할 근거 서류들을 준비하기 위해 인근의 주민센터와 PC방을 전전했다.
모든 서류들은 외국으로 보내기 전에 영어로 번역하고, 법적인 효력을 갖게 하기 위해 다시 공증을 받고, 그것이 국외에서도 공문서로 인정받을 수 있게 아포스티유를 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한국에서조차 해본 적이 없는 듣도 보도 못한 재판 과정들을 외국에서 진행하려니 도무지 뭐가 뭔지, 이걸 왜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이해하는데만 해도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부산 신혼집으로 돌아가기 전, 서울에 머물며 입원해 있는 동안 모든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하루 2번 잡혀있는 물리치료를 가장 이른 오전과 가장 늦은 오후 타임으로 짜깁기해놓고서, 병원 측의 허가를 받아 매일 낮시간마다 밖으로의 외출을 강행해야 했다.
서울에 사는 10년 지기 친구가 지리를 모르는 우리 부부를 돕기 위해 차를 끌고 병원으로 와주었다. 그는 2주 내내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까지 틈틈이 짬을 내어 서초구 외교센터는 물론, 번역 사무실과 행정사 사무실, 변호사 사무실을 번갈아 오가며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실어 날랐다.
서초구의 미친년
그의 도움과는 별개로 모든 장소에서 마주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적잖이 소모적으로 다가왔다. 몸과 마음이 성치 않은 상황에서 매번 주어지는 새로운 과업들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매번 나름의 공을 들여 애를 썼지만 어느 것도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없었고, 여러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겨우 하나의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한 장의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서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했고 계속해서 크고 작은 실수와 누락들이 생겼다. 이는 빠듯한 시간적 제약 속에서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나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내 일'이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에겐 그저 '처리해야 할 무수한 일들 중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 크다.
모든 일들을 막힘없이 한 번에 처리하고 싶었던 나는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시퍼렇게 날이 선채로 일이 예정대로 처리되지 않을 때마다 문제를 만든 이들에게 미친 듯이 분노를 쏟아내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사소한 문제 혹은 실수에 불과했지만 그 사소한 것들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의 멘탈과 인내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히 컸다.
이 씨부랄 육실헐 옘병할 것들아!!!!!!!!!!!!!!
나는 마치 그들이 나의 신혼여행과 결혼생활을 어그러뜨리고 망친 것 마냥 분노를 폭발했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미친 듯이 퍼붓는 나의 악다구니를 받은 이들은 당혹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상황에서 그들에게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압도되어 숨을 거칠게 내쉬며 손발을 부들부들 떠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미친 사람 같았다. 이러다 누군가 SNS에 '서초구의 미친년'이라는 제목으로 나의 난장짓을 찍어 올리면 어쩌나 싶을 정도의 난리법석이 이어지다 보면 남편과 친구가 큰 소리를 듣고 나타나 나를 뜯어말렸다. 그리고 아무 잘못 없는 희생양들에게 '지금 이 친구가 많이 힘들다'는 상황설명과 함께 사과를 드리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매번 싸움을 중재하던 친구는 '왜 여기만 오면 싸움닭이 되는 거냐'며 아직도 분을 삭히지 못하고 씩씩대는 내모습에 배를 잡고 웃었다.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무엇이 나를 미친개로 만드는 건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인지 나에게 물어보았지만 스스로도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남편은 진절머리 나게 싫은 병원과 법원이라는 상황을 더는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거라며, 사고 이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 속에서 우리의 인내심이 바닥난 탓이라고 나를 달래었다. 매번 사소한 문제들을 마주할 때마다 통제력을 잃고 미쳐 날뛰는 내가, 언제쯤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