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온 지 몇 달이 지난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보통날이었다. 보고 싶은 터키 가족들에게 안부를 묻고, 영상통화 속 익숙한 얼굴을 반가워하며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던 그런 여느 날 말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터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 든 나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변호사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다소 상기된 것을 느꼈다.
그의 전화는 항상 '베드 뉴스가 있다'는 말로 시작되었기에 나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으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아주 오랜만에(아니 처음으로) '굿뉴스가 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딱히 좋은 일이 있을 리 없는데... 걱정 어린 마음이 쉬이 놓이질 않았다.
그러나 뜻밖의 소식에 저 아래로 떨어졌던 심장은 다시 가슴 가까이로 떠올랐고 이내 불안과 두려움으로 벌렁대던 마음이 설렘과 기대감으로 콩닥대었다. 그는 1년 간의 재판 끝에 남편의 케이스가 마무리되어 보상금이 지급되었다고 했다. 언제 완료될지 알 수 없던 재판이 끝났다니 그리고 보상금이 나왔다니. 그의 말을 듣고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바닥을 치고 잇는 터키화와 코로나로 인해 높이 치솟은 달러화의 여파 탓일까? 변호사 몫의 수임료 300만원을 제하고 나니 우리에게 주어지는 금액은 고작 2천만원 남짓한 정도였다. 그 돈은 우리 부부가 벌 수 있는 노동력의 가치로 환산하여 1년 이상 무직 상태인 것을 감안할 때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지만 현실감 있는 금액을 알고 나니 그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당신의 돈이 내 손에 있습니다
변호사는 영상통화로 보상금 돈뭉치를 보여주며 '얼른 여기 와서 내 손에 있는 당신의 돈을 가지고 가라'고 했다. 우리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건넨 뒤 일단 방법을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남편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돈을 어떻게 받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비행기를 타고 터키 변호사 사무실로 날아가고 싶었지만 당장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를 편히 오갈 수 없었다. 또한 계속해서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터키 화폐를 무한정 터키에 맡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주머니에 들어와야 비로소 나의 것이 될 돈을, 코로나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며 기약도 없이 묵혀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터키 한인회 사이트와 인터넷을 뒤져 백방으로 해외에서 송금받을 방법들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중 가장 크고 믿을만한 곳인 Westurn union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500$ 가까이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사실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적잖은 돈을 떼이는 것이 정말 아까웠지만 그 방법 외에는 뾰족한 묘안이 없었다.
간사한 마음이 나를 괴롭힐 때
오랜 고민 끝에 마음의 정한 나는 변호사에게 모든 관련 정보를 보내어 보상금을 수령받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너절해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잠을 청하기 위해 자리에 눕자마자 머릿속에 뒤섞여있던 온갖 감정들이 튀어나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실 그간 모아둔 돈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목돈이 주어진다는 것만으로 마냥 좋고 신나는 일이어야 했다. 또한 나처럼 아예 보상금을 받지 못하거나 한참이 지나도록 재판 과정이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었기에 이렇게 과정들이 완료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좋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를 도와줄 터키 변호사가 없었으면 아예 시작조차 못했을 일들이었기에 재판이 이렇게까지 진행되고 하나의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마음은 뭘까. 단지 생각보다 큰 변호사 수임료며 생각지 못한 수수료 따위가 사라지는 것이 아까운 나의 간사한 마음일까? 단순히 그 돈이 아까워서 라기엔 내 마음이 쉬이 이해되지도 정리되지도 않았다.
미련과 슬픔의 대가
이틀 가까이를 이해되지 않는 뒤숭숭한 마음으로 보내고 나서 친한 동생을 만났다. 로스쿨에 다니는 그녀에게 변호사 선임과 보상금 관련해 여러 번 조언을 구했던 지라 어찌 되었건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의 말미에 '왜 일이 해결되었는데 마음이 이렇게 씁쓸한지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몇 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잃고 혼자 법적인 분쟁을 감당하다 스스로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그녀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다가 이내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마 그건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 남은 미련과 슬픔 일 거라'고 했다.
그랬다. 보상금이 마냥 언젠가 받게 될지도 모르는, 정말 막연한 상상 속의 동물 같은 존재였을 때는 아득한 기대감과 함께 마치 남 일 같은 거리감이 들었다. 그 사고로 인해 내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살아남았고, 우리는 극복했으며, 그 대가로 소중한 사람들과 가족을 얻었다는 합리화가 크게 먹혔던 것 같다.
그러나 상상 속의 용 같던 보상금이 손에 잡힐만한 크기의 작은 용가리가 되어 내 손바닥에 덜렁 놓이고 나니 아련한 기대감은 산산조각 나고 강한 현타가 확 하고 찾아왔다. 이게 내가 그 끔찍한 일을 겪고 지난 몇 년 간 했던 그 고생에 대한 대가란 말인가... 묘한 억울함과 분함, 그리고 허탈감과 씁쓸함이 뒤섞여 한데 몰아쳤다. 차라리 이 애매모호한 양의 보상금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아주 머나먼 미래에 언젠가 무언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 속 동물로 남았더라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까? 모르겠다.
만약 상상했던 아주 큰 용과 같던 보상금이 정말 거대한 용 대가리 만하게 턱 하고 떨어졌다면 '이 정도의 보상이라면 기꺼이 그 정도 일을 겪을 수 있다'고 아주 쿨하게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에서 주어진 보상금은 거대 용만큼 드라마틱하게 어마어마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나는 모든 상황들을 툭툭 털고 넘어갈 만큼 쿨해지지 못했다.
여전히 내 몫의 보상금은 나올지 안 나올지, 나온다면 언제 얼마가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느끼는 이 미묘한 감정을 털어내고 잊기 위해 또 다른 상상 속 동물의 존재를 절실히 원한다. 나의 용, 아니 나의 유니콘아. 네가 언젠가 내 삶에 나타나 줄 지 말지 알 수 없지만 너는 제발 나에게 이런 씁쓸함과 억울함을 가져다주지 않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