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통장 1억 8천만 원을 기록한 후, 그나마 희망적이었던 것은 제가 곧 복직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배우자는 제가 집에 있는 1년 동안 좋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이도 전담해서 돌보고 집안일도 분리수거와 주말 설거지 외에는 거의 다 했으니 본인이 신경쓸 일 없어서 좋았겠지 싶어요. 저도 내심, 일을 그만 두고 집에서 지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도 점점 힘들어 질텐데 직장인 타이틀을 내려놓고, 아이와 가정을 돌보는 것도 좋을 성 싶더라고요. 그런데 매월 적자인 가계부가, 집 사느라 최대치로 끌어쓴 대출이 제 등을 직장으로 떠밉니다.
덜 쓰고 사는 삶도 있을 거에요. 더 많은 구성원으로 제 가정보다 적게 소비하며 살아가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10년 넘게 살아보니, 저와 가족들은 그런 성향은 아니더라고요. 맞고 틀리고 좋고 나쁘고의 판단이 아니라 그냥 다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산다고 하는 물건을 사지는 않지만, 필요한 물건은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고 싶어요. 여행갈 때마다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묵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깔끔한 숙소에는 묵고 싶고요. 그렇게 하려면, 그렇게 하면서도 가계부에 적자를 내지 않으려면, 그렇게 하면서도 아이도 키우고 저축도 하려면, 제가 복직해야만 했습니다.
시기가 우연찮게 맞아 떨어져 마이너스 통장 한도가 꽉 찼던 다음 달에 복직했습니다. 3년 넘게 현업에서 떨어져 있었던 지라 며칠간 혼이 빠지게 적응 하던 와중에 월급날이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월급날이 돌아오니 행복하더라고요. 그런데, 응?! 통장에는 몇년 전에나 보던 숫자가 맨 앞자리에 찍혀 있었습니다. 한 달 꽉 채워 근무한 그 다음 달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잘못된 것 아닌가 싶어 명세서를 들여다 봅니다. 육아휴직 중에 납부하지 않은 건강보험과 연금을 후불로 내야합니다. 성과급도 당연히 없고요.
급여는 적은데 제가 복직하면서 추가 비용까지 생겼습니다.
제가 복직하면서 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기로 하셨습니다. 아이 100일 때부터 지금까지 육아를 부탁드리는 염치없는 아들딸이지만, 늘그막에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매달 소정의 금액을 보내드립니다. 급여에서 차감, 띠링.
휴직 중에 차를 샀어요. 10년 되었지만 잘 굴러가는 차가 한 대 있지만, 배우자가 원하는 차를 한 대 더 샀습니다. 그 동안에는 집부터 사야 한다며 욕망을 눌러왔는데, (대출이 많이 있지만) 제가 0순위로 여기는 집을 구입한 마당에 배우자가 0순위로 원하는 차는 왜 안되는 걸까 싶더라고요. 제가 무슨 권리로 배우자의 욕망을 누르고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워질 것이 맞지만, 배우자의 욕구를 부인할 이유가 마땅치 않아서 샀습니다, 세컨카.차 할부금도 급여에서 차감, 띠링.
저학년 때 외국에 다녀온 아이들은 귀국해서도 계속 학원에 다니며 영어실력을 유지해 줄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외국의 저학년 영어는 우리나라 유치원 방과후수업 수준이라 실력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안 보내면 불안한 게 엄마 마음이죠. 레벨테스트를 등록하고, 지필 테스트와 인터뷰까지 보는 데 네 달 걸렸습니다. 동네 인기학원이에요. 다행히 테스트는 통과했지만, 아이가 배정된 반은 정원이 꽉 찼다고 하네요. 여섯 달을 더 기다리니, 제가 복직하던 즈음에 학원에 자리가 났습니다. 영어 학원비도 급여에서 차감, 띠링.
휴직 중일 때는 대형마트 안 가고 동네에서만 장을 봤어요. 그런데 복직하고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대형마트에 가서 고기와 생선, 냉동식품 류의 식재료를 구매해 둡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매일매일 집 앞 유기농 마트에서 좋은 상품이 싸다고(?) 하시며 장을 보시네요. 두무 한 모, 계란 한 판, 우유 한 팩, 야채 과일 한두 종류씩 돌아가며 골고루 사시더라고요. 집에 소고기가 있으면 돼지 고기를, 냉동 만두가 있으면 냉동 돈까스와 냉동 탕수육을 사시고요. 장 보는 비용이 커졌죠?! 급여에서 차감, 띠링.
이런저런 비용들을 지출하고 나니 적자는 여전히 월 100만 원 이상 발생했습니다. 둘 다 일은 하는데 계속 적자인, 가계부를 쓸 때마다 숨이 막힐 듯 힘든 날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