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증후군

무의식에 작동한 오랜 사고의 틀

by 별썽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2019년 봄에 복직을 앞둔 올케와 7박 9일 이탈리아 패키지여행을 다녀왔었다.

서툰 주부인 나는 긴 여행을 앞두고 부산스러웠다.

냉장고 정리를 하고, 가족들이 먹을 간단한 음식 위주로 장을 봐두고, 쓰레기를 모두 비우고, 빨래들은 남김없이 빨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집을 치웠다.

그리고 남편의 배웅으로 제주공항을 떠나 김포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 2 청사 카페에 앉아 올케를 기다렸다.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이 없으니 여행 일정 잡기가 이렇게수월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청사를 오가는 여행객들과 여행객들 속에 섞인 공항직원들을 행복한 마음에 바라보고 있었다.

5월 23일부터 5월 31일까지. 예약도 끝났고, 대금도 완납했고, 여권도 잘 챙겨 왔고, 여기서 비행기만 타고 떠나면 되는데 뭔가 찜찜하고 불편한 기분이 드는데. 되게 중요한 걸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다 문득 이유를 알 것 같았다.

21년의 은행 생활에서 말일은 늘 전쟁이었기에 편히 보내본 기억이 없고, 말일에 휴가를 써서 여행을 간다는 건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게다 23일부터 31일은 피크의 시작과 피크의 피날레므로 탑승을 앞둔 순간에도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것. 무의식 중에 작동한 오랜 사고의 틀.

어이없는 무의식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고개를 젓고 다시 여행의 기분에 몰두해 본다.

이 크고 웅장한 공항에서 여유롭게 커피와 크루아상을 즐기는 시간, 어떤 풍경이, 어떤 기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자유로움에 눈물이 날듯 말 듯했다.

도비는 자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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