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기

사는 게 참 힘들었겠어요.

by 은호씨

TCI는 쉽게 말해, 기질과 성격을 알아볼 수 있는 검사라고 한다. 요즘 엄마들은 워낙 아이들 양육에 진심이어서, 아마 ‘기질’이라는 표현이 매우 친숙할 것이다. 기질이란 보통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성격은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핸드폰으로 발송된 검사지는 출퇴근을 하는 지하철 안에서 재미있게 했다. TCI는 문항이 비교적 적었는데, ‘그렇지 않다/별로 그렇지 않다/약간 그렇다/그렇다/매우 그렇다’와 같이 5점 척도(?)로 되어 있어서 꽤 고민을 하면서 눌러야 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불안한 성미를 가진 나는 2,3,4번을 왔다 갔다 하며 선택했다.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결정을 해야 좀 더 나의 본질적인 기질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얼마나 ‘나’ 다운 결과가 나오려나? 궁금해하며 2회기 상담을 갔다. 상담사님이 내가 써 온 문장 완성 검사를 받아서 읽는 동안, 나는 본인부담금 납부를 미리 했다. 참고로 해당 사업은 소득 수준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차등으로 적용된다. 그러니까 아예 무료는 아니고, 내가 받는 상담 서비스의 비용을 국가가 일부 부담해 준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상담센터 책상 한쪽에 내 이름으로 뽑힌 TCI 검사 결과지가 놓여있었다. 상담사님은 은호씨와 어울리는 검사 결과가 나왔는지 보자며, 하나씩 짚어가며 설명을 해 주었다. 설명을 듣는 동안,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자극 추구’는 낮은 편이었고 ‘위험 회피’는 높은 편이었다. 상담사님이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살면서 많이 힘들었겠어요.

‘위험 회피’는 무려 98이 나왔는데, 이는 전체 인구를 100으로 보았을 때 2등으로 위험을 무서워하고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란다. 이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폈을 때, 내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항목은 ‘예기 불안’이었다. 이는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부정적인 일을 미리 걱정하여 불안해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높아 나는 뭔가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듯했다.


절망적인 것은 이들은 모두 ‘기질’이라 내가 죽었다 깨어나야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맨날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이냐.’ 한탄했던 게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던 것이다. 상담사님은 그래도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했다. 적어도 내가 타고 태어난 것이니, 스스로 ‘못난이’라고 생각하는 게 줄어들까?


기질적으로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것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나.

절대로 그들처럼 될 수 없는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늘 자책하는 나.

이 모든 게 너무 명명백백하게 나와서 오히려 ‘그럼, 그렇지!’하며 맞장구만 치게 되었달까.


이날의 상담은 자연스럽게 이 ‘예기 불안’이 어디서 왔을까?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상담사는 엄마와 내가 매우 융합되어 있다고 짚어 주었다. 엄마가 나에게 무척이나 의존하고 있고, 그래서 비난을 서슴없이 하게 되며 나는 그 상황에서 억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사실, 그녀가 말하는 것들 모두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아주 개운하진 않았다. 상담이란, 결국 내가 알고 있던 사실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어렴풋이 알겠다. ‘이 상담이 결코 어떤 해결책을 가져다 주진 않을 것이란 걸.’ 상담사님은 앞으로 남은 회기에서 계속 검사 결과에 대해 다룰 것이라며, 2회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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