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기

우울과 강박, 이 두 가지가 높은 분들은요.

by 은호씨

MMPI는 다면적 인적성 검사로, 우리가 어떻게 자라왔는지에 따라 결정된 성향을 파악하는 검사 정도로 알고 있다. 참고로 내가 설명하는 것은 전문적인 지식은 절대 아니며, 상담에 임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나 알만한 방법들로 찾아 얻은 정보들이다. 무엇을 하든 어느 정도의 준비를 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 검사 전에 알고 있었다.(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계획을 많이 세워서 준비하는 것도 ‘예기불안’이 높아서 그러는 거라더라.)


각설하고, 3회기에는 내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폭염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주말 내 1박 2일 아이와 물놀이 여행을 다녀온 뒤였다. 체력이 바닥을 찍어, 구토와 설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속된 말로 위로도 나오고, 아래로도 나왔다. 중간에 상담사님이 일정의 변동이 있는지 물었으나,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정해진 게 있으면 그냥 그대로 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상담을 하기로 한 날은 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래서 나는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상담을 갔다. 지난번에 다 듣지 못한 TCI 검사 결과도 마저 듣고 싶었다. 그런데 상담사님은 내 앞에 mmpi 검사지를 들이밀었다. 이 내용을 먼저 보고 전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2-7 코드 타입이 나왔다. 이 타입은 ‘우울’과 ‘강박’의 수치가 높게 나온 것이라고 했다. 뭔가 엄청난 비밀을 들킨 것만 같았다. 뭐 우울은 기본값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내가 강박적인 성향이 이렇게 드러날 정도라고?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있었다.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서울로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길이었는데, 집을 나설 때 향초를 껐는지 안 껐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생각은 계속 나쁜 쪽으로만 이어졌다. 겨우 마련한 전셋집에 불이 나, 다른 집까지 우리가 변상해야 되는 상상까지 이르자 지하철에서 뛰어내리고만 싶었다. 나는 울며 불며, 어떻게 관리사무소 연락처까지 알아내 우리 집 비번을 알려주고 확인을 부탁했다. 지금 같아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향초는 아주 잘 꺼져 있었다.)


이 외에도 가스, 선풍기, 에어컨 등 대부분 껐음에도 나오기 전에 한번 더 확인하지 않으면 가끔은 불안이 확 올라오곤 했다. 이 모든 게 나에게 이미 고착화된 성향인 건가. 멍하니 있던 나를 대번에 울린 건, 상담사님의 한 마디였다.


이 타입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과도한 책임감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랬다. 나는 3남매 중 첫째로 자랐고, 엄마에겐 정서적 남편이었으며,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장녀였다. 엄마는 당시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겠다는 나에게 단지 내가 ‘첫째’란 이유로, 첫째부터 실업계를 가면 줄줄이 그렇게 된다는 이유로, 인문계를 보냈다.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에 갔다면, 내 삶은 뭐 좀 달라졌을까?


그 당시의 엄마를 탓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빠가 연대 보증으로 아파트를 날린 후, 단칸방에 살게 된 우리에게 엄마는 자주 부재했다. 줄줄이 사탕인 아이들의 입에 뭐라도 넣어주려면, ‘진짜 엄마’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했다. 그 시간에 초등 저학년인 동생들을 챙기는 것은 ‘가짜 엄마’인 내 몫이었다. 그렇게 엄청나게 그 역할을 잘 해냈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그 책임이 버거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는 일도 참 어려웠다. 어떤 결정을 할 때, 그것이 잘못된 선택일까 봐 너무 무서웠다. 그냥 조용히 있다가 남의 결정을 따르는 편이 나았다. 그러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그 사람 탓을 하면 될 일이니까. 그래서였을까. 나는 사회생활이 너무 어려웠다. 하루에도 열두 번, 수많은 선택이 이어지고 그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했으니까.


이렇게 내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는 ‘완벽주의 성향’도 한몫을 하는 듯했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나는 ‘높은 기대와 통제 속에서 자라서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었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나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모범생으로 살았다. 사춘기도 심하게 겪지 않았다. 오히려 성인이 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을 했다면 모를까.


이날의 상담은 내가 왜 이런 식(!)의 성향이 되었는지를 찾아가는 첫 단추쯤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성장 과정을 반추하고 돌아봐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어떤 기억이 속절없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절대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었는데도, 나는 꽤나 오래 그런 일이 없는 듯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을 떠올리자마자, 바로 그 당시의 기분이 되었다.


참 신기했다.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은 감정을 압도당하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스러웠다. 내가 원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과거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인데, 이러한 원인으로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걸 안다는 게, 정말 앞으로의 미래에 도움이 될까? 나는 ‘과거’에 숨어, 핑계를 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 남편의 아내, 내 아이의 엄마는 그러면 안 되었다.



이것은 내가 내담자가 되어 상담을 한 ‘내 이야기’이므로, 철저히 내 관점에서만 쓰이고 있음을 한번 더 밝혀둔다. 이건 내 브런치니까, 그래도 되겠지.

혹시 이 글을 읽고 상처를 받을 누군가를 위해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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