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인 거예요.
상담은 보통 주 1회 비슷한 시간에 만나 이루어진다. 미천한 내 생각에는, 내담자의 한 주를 점검하고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여러 시도를 체크하는데 루틴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4회기와 5회기 사이에는 텀이 조금 있었다. 아이의 유치원 방학 때문이었다. 나와 남편은 연차를 번갈아 쓰며, 그 한 주를 채워갔다.
언제부턴가 나는 상담을 가는 날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고르게 되었다. 50분이라는 상담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고 싶어서, ‘이번 주는 이 이야기는 꼭 해야지.’하며 J다운 면모를 십분 발휘했다.(중간에 혹시 2회기를 하루에 소진하여 오~래 상담할 수 있는지 여쭈었는데, 해당 바우처는 그렇게는 사용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랜만에 보는 만큼 얼마나 숙제를 잘하고 있는지, 나는 상담사님께도 잘 보이고 싶었나 보다.
5회기의 상담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좋은 소식부터 전했다. 지난주에 있었던 가족 모임에 용기 있게 불참을 선언했었던 것이다. ‘내 기준에서 하면 안 될 것 같은 일을 해봐라.’는 숙제를 한 셈이었다. 엄마가 서운해할까 봐. 그러면 안 될까 봐. 못 했던 일을 그냥 한번 저질러봤다. 스케줄 상, 순전히 내게 조금 무리가 될 것 같아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내가 없어도 모임 분위기는 괜찮았다고 했다. ‘엄마가 서운했을지도 몰라요.’라는 내 말에 상담사님은 ‘안 그랬을 수도 있죠. 그리고 그건 엄마의 마음이에요.’라고 확실히 선을 그어 분리를 해 주었다. 그녀는 ‘은호씨가 기꺼이 할 수 있는 일, 그 정도만 하셔도 괜찮아요.’라고 덧붙였다.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인 거예요.
상담사님은 내 검사자료를 다시 훑으며, 조금 이기적으로 구는 것이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가끔 조금 단호하면서도 정확하게 자신의 ‘호, 불호’를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편했던 기억이다. 나도 모르게 남에게 맞추려고 드는 나의 성향상, 그런 사람이 오히려 쉬웠다.
우유부단하게 구는 것보다 내 것을 챙기는 것이 결국은 남을 위하는 것이라니. 이해가 될 듯 말 듯하던 찰나, 상담사님이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이건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에요.’ 내 검사 결과가 말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지금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mmpi 검사 결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현재의 나는 일상생활에서 ‘부적응’을 겪고 있고 그 상태가 꽤 심각하다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숨구멍을 만들어야 더 큰 우울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신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 묻고, 그것들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고심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꼭 해야지.’ 결심했던 질문 하나를 꺼냈다. 상담에 오지 못했던 한 주, 유독 회사 일이 힘들었는데 내 뜻대로 처리되지 않는 일을 하다 또 심장이 뛰고 뒤이어 가슴 통증이 왔다. 굳이 표현하자면 심장 밑이 답답하면서 꽉 막힌 듯 아픈 통증인데, 종종 찾아오는 편이었다. 나는 혹시 상비약처럼 정신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으면 이 증상을 없앨 수 있는지 물었다.
상담사님은 확실하게 진단할 수는 없지만 ‘신체화 증상’의 일종으로 보인다고 했고, 약을 먹으면 호전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는 법. ‘정신의학과’에 가게 되면 여러 약을 복용하며 부작용을 겪고 내게 맞는 약을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 말했다. 그 부작용을 감내하는 것과 가슴 통증을 겪는 것 중 더 비중이 큰 쪽을 선택하는 건, 결국 또 내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