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기

왜 항상 생각이 그렇게 흐를까요?

by 은호씨

8월은 격변의 시기였다. 무더위는 정점을 찍고 있었고, 남편은 잠시 실직 상태였다. 이런 표현이 남편에게는 조금 부당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는 직업 특성상 몇 년에 한 번 한 두 달 쉬는 시기를 가지곤 했다. 결혼 후, 두 번째 쉼이었는데 경기가 어려워도 한참 어려워서 다시 계약을 하게 되지 못할까 나는 조금 노심초사했다.


반면, 매우 오랜만에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온전히 쉬게 된 남편은 모처럼 가족이 다 같이 해외여행을 가길 바랐다. 언젠가 브런치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마저 ‘No’를 외치기엔 남편의 그간의 고생이 자꾸 눈에 밟혔다. 연차를 당겨 써야 할 정도로 조금은 갑작스러운 일정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신혼여행 후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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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다면, 무슨 미션을 처리하듯 후딱후딱 대충대충 넘겼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밝히고 서로 협의하는 건, 더 많은 에너지가 드니까. 그냥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그대로 맞추다, 여행지에서 아프기도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상대는 이제 나와 합을 맞춘 지, 나름 10년의 경력자가 아닌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해도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E성향의 남편은 10년만의 해외 여행에 들떠서 하고 싶은 게 많아도 너무 많았지만, 난 이제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 여보, 난 이 스케줄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당신이 꼭 하고 싶은 것들을 하루에 한 개씩 넣어서 자유여행을 가자.


누군가의 안내가 없이 온전히 3인 가족이 부딪히며 떠난 여행길이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다르게 말하면, 추억이 겹겹이 쌓였다고 자부할 수도 있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오랜만에 상담사님을 만나러 간 터였다. 나는 지난주 어떻게 지냈는지 묻는 그녀에게 여행이 어땠는지 간단히 소개하고 ‘남편에게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여행이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자평했다.


당연하지요. 그럴 수 밖에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나 홀로 떠난 여행이 아니기에 완벽하게 만족스러울 수 없는 여행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단다. 20대에 떠나는 여행과 아이를 데리고 40대에 떠난 여행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은연중에 내가 그 모든 것이 마치 ‘내 탓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그 원인을 나에게 돌리고 자책을 하곤 했다. 그리고 동시에 바랐다. 누군가가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하지만 그 말을 해 줄 사람을 찾는 것보다 가장 간편하고 빠른 해결책은, 내가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이었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언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결혼을 할 사람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도, 돈도 아니고 ‘문제 해결 능력’이란다.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화를 내거나, 울거나,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므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다소 손쉬운 ‘자책’을 주 무기로 써 온 나는 결혼하기에는 ‘별로’인 사람이 틀림없다. 다만,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내가 그 사실을 지금이라도 알고 ‘나를 포기하지 않을 사람’(아직까지는...)과 계속 맞추기 실험을 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상담사님은 내 이야기 속에서 남편의 강점을 찾아내고, 그를 적극 활용하기(?)를 권했다. 안전지대에서 계속 조금씩 ‘생각의 흐름을 고치는 연습’을 해 보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연습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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