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결혼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 있을까요?
6월에 시작한 상담이 2달을 넘어가고 있었다. 8월 중순, 날씨는 무더웠지만 마음만은 한결 편한 나날이었다. ‘조금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응원해 주는 누군가 덕분에, 나는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1년간 쉬지 않고 진행하던 토요일 문화센터도 아이에게 양해를 구했다. ‘엄마가 가을 학기는 숨 좀 돌리고 싶어.’
생각의 흐름도 바꾸려 노력했다. 일을 하다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아도 그것은 온전히 내 탓만은 아니었다.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누군가 나를 나쁘게 평가할지언정 떳떳할 일이었다. 조금 힘이 들면, 속으로 읊조렸다. ‘괜찮아. 잘될 거야. 어쩔 수 없었어.’ 마지막 말은 꼭 과거로 돌아가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던 고리를 끊기 위한 내 나름의 주문이었다.
갑자기 만나자는 친구에게도 솔직하게 나의 상황을 밝히고 정중히 거절했다. 여름이라 체력의 한계에 직면한 것도 있었지만, 하루에 두 개 이상의 큰 스케줄은 과감하게 잡지 않았다. 무리가 되어 내가 무너져 내리면 기본적인 업무 처리와 아이와의 소통까지 망칠 것 같았다. 정신을 좀 더 단디 차리기 위해, 나는 좀 더 쉬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보건소’에서 문자가 하나 날아들었다. 요지는 올해 예산이 모두 소진되어 9월부터는 해당 사업의 신청이 어렵게 될 수 있으니, 앞으로의 상담 가능 여부는 상담 센터에 문의를 하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회기가 얼마 남지 않아, 남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참 아쉬웠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업을 알고 경험해 보길 바란 것이었는데, 쩝.
그렇게 7회기 상담을 앞둔 금요일 저녁, 하필 남편의 업무가 늦어졌다. 부쩍 유치원에 혼자 남아있는 시간을 싫어하는 딸아이가 아른거려, 나는 ‘당일 취소’를 해야 하나 동동거렸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 남편은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나를 위해 ‘된다!’를 외친다. 얼마 남지 않은 상담이지만 나는 또 한 번 느꼈다. 일주일에 단 하루, 그 저녁을 나를 위해 온전히 쓰는 것도 쉽지 않구나!
상담이 이어지는 동안, 상담사님과는 많이 친해졌다. 이러한 감정을 바로 ‘라포’라고 하나보다. 풀어서 말하면, ‘내담자와 상담사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유대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녀가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사실을 상담 중에 알고는 매우 반가웠다. 그 이후에 우리는 아이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이번 상담에는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혼재했는데, 중간엔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내가 스스로 ‘좀 더 믿음직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그 책임감이 무거워 버둥거리는 상황에 대해 공감하며 상담사님이 한 말이 머리를 띵 울렸다.
저는 ‘결혼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너무 놀란 이유는 나도 정말 똑같이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저 문장 그대로였다. 거기에 덧붙여 2탄도 있었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 안 되는 사람인가?’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종종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40대는 힘든 게 너무 당연하다!’ 내 주변의 모든 상황이 바뀌었는데 20대처럼 편하려고만 하니, 머릿속에 힘들다는 생각만 가득 차는 게 아닐까? ‘편함’, ‘평화로움’, ‘행복’의 기준이 아직도 예전에 머물러 있어서, 나는 맨날 ‘힘들다.’,‘힘들다.’를 달고 살게 된 게 아닐까. 그러다 체력이 조금만 바닥을 쳐도 못해 먹겠다며 울어재낀 게 아닐까.
상담사님은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도 ‘심리검사 내용을 토대로 나를 이해하기’를 진행해 주셨다. 사회적 민감성과 의존 성향이 강한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지, 또 이러한 기질적인 부분은 고칠 수 없으므로 어떻게 하면 자율성과 유대감을 키워내 이후에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길 권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