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상담을 마치며

by 은호씨

내가 상담을 처음 접했던 것은 과호흡이 시시때때로 찾아오던 20대 후반이었다. 길을 걷다가 뭔가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작정 눈에 보이는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난 거의 오열하듯 울부짖으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 상담사님은 내 말을 다 이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후에도 한번 상담을 할 기회가 있었으나, 단회기에 그쳤다.


본래 제대로 먹지 못하고 손으로만 찍어 맛을 봤을 때, 더 먹고 싶은 법이다. 나는 상담을 ‘최후의 보루’처럼 여겼다. 상담을 제대로 하고 나면, 내 인생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현자처럼 뭔가를 깨닫고 득도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난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생각한 것 중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글을 읽고 상담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리 밝혀둔다. 나는 상담에 전문지식은 전혀 없으니, 이 글은 8회기의 상담 서비스를 이용한 뒤 ‘나의 소감’에 가깝다.

상담, 할까? 말까?

사실 상담비는 비싸다. 시세를 알아보니, 50분의 개인 상담 비용이 8~10만 원 선이었다. 상담사들 입장에서는 이 직업이 워낙 고학력을 요하고, 배움에 돈이 많이 드는 학문이다 보니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물가라도 그렇지 이 정도 금액을 매번 지불하며 상담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처럼 가정이 있으면 더하다. 이 돈이면 ‘아이 피아노 학원을 보낼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사실 나 또한 관련 복지서비스가 아니었다면 상담에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향인이라면, 특히 더 추천한다. 나는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은 데다, 그 생각의 흐름이 꼭 나쁜 쪽으로만 흘러서 나를 괴롭히던 게 문제였다. 20대에는 주변 친구, 엄마, 남자친구(?)에게 의지했지만, 이제는 그마저 어려웠다. 그들이 나에게 질린 탓도 있겠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뻔한 지지는 뭔가 그 효력이 다한 것 같았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되, 응원을 보내주고, 근거에 입각해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원했던 상담사는 이런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런 상담사를 잘 만났던 것 같다. 혹시 상담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우선 상담을 지원하는 복지서비스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신건강복지센터’도 지역마다 있는 모양이니, 내가 신청할 수 있는 서비스를 잘 알아보면 좋겠다.


나에게 맞는 상담사

상담에 대해 조금 알아본 바에 따르면, 아직 국가 공인 자격증은 없다고 한다. 다만, 가장 공신력이 있는 학회가 두 곳이 있단다. 나를 담당했던 상담사님도 이 중 한 곳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상담사님을 간택(?) 한 것은 꼭 이러한 자격요건 때문이 아니었다.


옛말에 서울대에 갔다고 해서, 누군가를 서울대에 보낼 정도로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질 않나. 자격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결코 상담을 잘한다는 방증이 될 수는 없다. 또, ‘상담을 잘한다’는 것은 무척 상대적인 기준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잘 맞는 상담사님이 나에게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상담’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나는 나보다 인생을 많이 산 사람으로부터 코칭을 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고, 안전한 상황에서 내 문제를 털어놓길 바랐다. 내가 원하는 상담을 떠올리며, 한참을 웹서핑을 했고 해당 상담 센터를 고를 수 있었다.

또 하나 추가적인 요건이 있다면, 거리나 시간대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두 번 가고 마는 곳이 아니고, 혹시나 상담이 종결된 이후에도 찾을 수 있으므로 내가 접근하기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내가 간 상담센터는 원룸 형태는 작은 곳이었다.) 물론 이 또한 모두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상담 선생님이 모여 있고, 좀 더 인증(?)이 된 기관을 가고자 한다면 그것도 다 본인의 선택이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에 ‘무엇이든 물어보살’이라는 방송이 있다. 나는 요즘보다는 초창기에 이 프로를 자주 보았는데, 여장을 하기 싫어하면서도 볼터치가 잘 그려졌는지 살피는 ‘서장훈 씨’가 좋았다. 자신은 연예인이 아니라 일반인이라며, ‘연반인’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그가 뭔가를 제대로 하기로 결심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었달까.

아무튼! 내가 상담을 진행하던 중간중간에 자꾸 이 프로가 떠오른 것은 왜였을까. 4회기 정도 되었을 때, 상담에 대한 회의감이 확 밀려왔다. 상담은 진행되고 있는데 뭔가 해결되는 것 없이 자꾸 답답함만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은연중에 상담을 시작만 하면, 나만의 서장훈이 ‘너 왜 이랬어! 앞으로 이렇게 해!’라며 조금은 툴툴대면서도 따듯한 조언을 해줄 줄 알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상담사님은 ‘이렇게 하세요!’라는 직접적인 말을 많이 하질 않았다. ‘왜 그럴까요?’, ‘~라는 말에서는 이런 점을 알 수 있어요.’라는 투가 가장 많았고, 이를 통해 내가 다시 생각해보게 하려는 것 같았다. 정신과에 가서 불안에 관한 약을 타는 것조차 결국은 ‘내 선택’이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결국 내 문제의 키는 ‘내 손안에 있소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인데도, 상담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 ‘자기 성찰’이 잘 되어서, 바로 생각의 전환이 되는 사람이라면 받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길다.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을 한 번쯤 내가 나에게 줘도 되지 않을까.


끝으로,

아주 작은 바람은 이 글이 나처럼 갈피를 못 잡고 계신 분들을 위로했으면 좋겠다.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힘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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