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기

나는 이런 사람, 그것은 힘이 있다.

by 은호씨

모든 상담은 시작할 때 먼저 물어보는 것이 있다. ‘왜 상담을 하려고 하니?’ 상담을 하고자 하는 이유, 다른 말로 ‘주호소’라고 한단다. 이 ‘호소’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맨 처음 상담 신청서에 쓴 ‘주호소’는 바로 이것이었다. ‘어른이 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마지막 회기 상담을 가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상담을 시작했는지 떠올렸다. 여전히 아침 등원길엔 아이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회사 일은 버거웠고, 혼자 계신 엄마는 걱정스러웠고, 저녁 차리는 일은 귀찮았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그것은 마음이었다. 그냥 원래 이렇게 사는 거지.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당연한 거지.

8회기에는 1회기 때 했던 우울척도 등을 다시 똑같이 체크했다. 아마도 상담 전과 후의 변화를 보고자 함일 것 같은데, 나는 ‘같은 검사를 했었나’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가물가물했다. 얼마나 변화가 있는지 그 수치는 상담사님이 확인할 테지만, 나 스스로도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막막했던 나’와 ‘조금은 길을 찾아가는 나’의 차이를.


종결을 앞두고 있음에도 ‘나를 알아가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이게 끝이 있긴 한가!) 마지막 회기, 나와 상담사님 앞에는 ‘문장완성검사’가 놓여 있었다. 이 검사에는 총 50개의 여러 문장이 혼재되어 있는데, 각 질문들은 그 항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에 대한 생각’, ‘두려움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생각’ 등과 같이 말이다.



상담사님은 내 검사 결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양가감정’이라고 했다.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좋다면서도 내 험담을 할 것 같아 두렵다.’ 거나 ‘어머니를 애정하고 연민하면서도 피로감을 느낀다.’는 내용을 대표적으로 꼽았다. 이외에도 또 있었는데, 나는 분명 내가 썼던 문장임에도 연신 ‘제가 이렇게 썼어요?’를 되풀이했다.


내 머릿속과 마음을 몽땅 들킨 것만 같았다. 발가벗겨진 듯 당황스러웠다. 나는 항상 부정적으로만 생각이 흘렀고, 학창 시절의 좋지 않은 경험으로 친구를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불행한 기억은 힘이 세다. 이렇게나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나에게 흔적을 남기다니.

제가 정말 불안정한 사람이군요.


상담사님의 해석을 듣다, 내가 불현듯 뱉은 말이었다. 나는 참, 안정적이지 않았다. 무엇 하나 줏대 있게 내 의견을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확신이 부족해, ‘난 이게 좋아!’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만에 하나, 그런 주장을 했더라도 ‘아니면 어떡해!’ 또는 ‘아닌가?’하고 걱정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실패하면 좀 어떤가! 그게 정답이 아니면 또 어때! 다시 시도하고,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면 될 일을.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또 잠시 답답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이미 상담을 통해 그 답은 찾았으니까.


상담을 마치며, 그동안 어떠셨는지 묻는 상담사님께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 안다는 건 아주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내가 ‘이런 사람이다.’를 받아들이는데 유용한 정보가 되어주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물론 과거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의 내 삶을 계획하는데 딱 맞는 기준이 되어줄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내 문장완성검사에서 ‘평온해질 것이다.’라는 부분을 검토하며 한번 더 당부를 해주신 상담사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 문장을 쓸 당시의 ‘평온함’은 그녀가 걱정한 그것을 떠올리며 쓴 게 맞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아이와 남편이 함께 하는 나의 삶, 이 일상 내에서 ‘평온함’을 찾아보자는 새로운 목표도 살짝 생겨났으니까.



아직은 끝이 아닙니다.

이 상담을 통해 느낀 점을 정리한 ‘에필로그’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전 09화7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