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혁 Oct 03. 2024

세상에 눈을 뜨자

삶의 중심을 심장으로 옮겨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원 준비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갈 것이라 다짐했더니. 자꾸 한눈을 팔게된다. 옛날에는 그 한눈 파는 중력에 이끌리듯 다시 되돌아가는 삶을 살았다. 한눈을 팔게되는 곳은 다음과 같다.



해야하는 일을 하는게 마음이 편하다. 해야하는 일을 해야 내가 온전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귀찮다. 그냥 이미 정해진 삶의 의미를 좇아 편하게 따라가고 싶다.


지금까지 해온게 아깝다. 내가 애써서 쌓아온 것들을 무시하면 큰일이 나지 않을까?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게 정말 맞을까? 이렇게 불안한데?



내 삶의 공이 무더기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이전에 무더기에 나를 결착시켰던 찐득찐득한 점들을 회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저 위의 생각들을 의지해서 계속 하고싶은 것을 하는 것을 미뤄왔기 때문에. 저 생각들에 대한 애착이 엄청난 것이다. 그 점들이 찐득찐득한 이유는, 그 점들 또한 나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통로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양소가 꽤 가득한 찐득찐득한 용액을 나에게 공급하던 공급원들. 그것들이 나를 자라게 했고, 나를 무겁게 했고, 나를 만족하게 했고, 나를 두려워하게 했다.



더 상상해보자면, 눈이 돌아가는 것과 같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인데. 하면서 내 눈이 뒤통수로 돌아가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대해, 나에 대해, 삶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구나. 이 세상이 정해진 삶의 의미, 해야하는 일들, 차곡차곡 쌓아야 할 것들을 강요하는 매트릭스 세상이라면. 나는 그 세상에 반대하고자 나만의 매트릭스를 내 스스로 짠 것 같다. 그래서 머리로 하는 일들은 촘촘하고 방대하나,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구나. 결국 똑같은 것을 바라보고 생각만 다르게 한 것에 불과했다. 삶의 중심을 심장으로 옮겨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제가 이대로 계속 가는걸 원치않아요"


"바로 그걸세.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세. 그대가 마침내 얻어낸 모든 것들을 한낱 꿈과 맞바꾸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제가 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거죠?"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없기 때문이네.

아무리 그대가 듣지 않는 척해도, 마음은 그대의 가슴속에 자리할 것이고 운명과 세상에 대해 쉴새없이 되풀이해서 들려줄 것이네."


"제 마음이 이토록 저를 거역하는데도요?"


"거역이란 그대가 예기치 못한 충격이겠지. 만일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대의 마음도 그대를 그렇게 놀라게 하지는 않을 걸세.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의 꿈과 소원을 잘 알고, 그것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도 알 것이기 때문이네.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는 없어.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편이 낫네.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그대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대를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파울로 코엘료-연금술사 211p , 소년과 연금술사의 대화




내가 요즘 타인의 존재를 생각 속에서 계속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생각을 거대하게 쌓은 이유는 내가 절대 마음으로 알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다 죽여버리겠다는 말 속에 내포된 숨은 의미는. 그 생각 속에 파묻혀버린 내 마음의 소리를 발견하겠다는 이야기이다. 그 타인에는 우리 아빠, 우리 엄마도 있다. 언제 내 마음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나를 덮칠까, 바로 떠오른 순간이 우리 아빠가 죽을 때였다. 나는 종종 내 꿈을 좇아 멀리 떠나는 것을 두려워한 이유를 그 사이에 아빠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로 두곤 했기 때문이다. 만약 아빠가 죽는다면, 나는 그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식으로서 못다한 효를 후회하는건 고리타분하다. 나는 내 삶을 가로막을 정도로 아빠를 사랑했고. 그런 후회를 자신이 죽어서 자식이 하길 바라는 그런 아빠가 아님을 나는 이제 믿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후회를 할 것 같았다. 왜 이 순간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내 삶을 계속 미뤄온걸까. 왜 나는 내가 살 수 있는 삶의 모습을 아빠에게 보여줄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다 죽여버리겠다. 내 생각 속에 존재하는 타인들을 모두 다 죽여버릴 것이다. 그들의 심장이 박동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 두 눈으로 쳐다보기 위해서다. 더 이상 심장이 박동하는 모습을 불안이라는 말로 잘못 해석하지 않을 것이다. 내 심장이 박동하는 울림에 내가 쌓아온 거대한 생각의 매트릭스가 흔들리는 것을 불안해하지 않겠다. 나의 울림이 남들에게 전해져 그들의 심장에 닿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겠다. 그렇게 세상과 더 맞닿아 세상에 눈을 뜰 것이다.






이전 01화 벗어나는게 아니라, 나아가는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