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목적지만 선명하다면 어찌됐든 가게 되어있다
2024. 9. 21. 9:18
오랜 연휴가 끝나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 삶이 잠깐 멈췄다. 오랜만에 휴식을 가졌다. 그 속에 나는 불안했다. 그 불안의 정체는 뭐지? 글을 쓰는 건 내 그런 불안을 채워주는 가장 좋은 일이다.
먼저 그 불안이 쓸모 있었던 것은 내 세계여행을 앞당겨주었다는 사실. 원래 언제든 준비가 되었을 때 가겠다고 했었는데. 아니 사실 내심 내년 1월달에 바로 출발하고 싶었다. 우격다짐이었다. 수중에 돈도 없으면서 마음은 그 상태를 초월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마음이 어떤 상태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불안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것도 착각일 수도 있다. 그냥 삶이라는 건 불안 없이도 알아서 되어지는 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 알아서 되는 것도 결국 언젠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각 위에서 내가 스스로 힘을 내야 가능한 것 같았다. 그런데 마침 누나가 내년 5월달 쯤에 조카를 낳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내게 불안에너지가 생겼다. 그렇다면 조카가 3개월이 되기 전에는 한국에 도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반드시 내년 1월달에 나는 세계여행을 가야겠다.
하지만 그 불안이 쓸모 있다고 더 사용만 해버리는 건 위험하다. 불안이 있다면 그 불안이 왜 있을지를 깊이 의심해보아야 한다. 불안은 위험함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것이 있다면 점검 해야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 현재 상태가 세계여행을 하기에 가소로울 치만큼 우습기 때문이다. 모아 놓은 돈은 한 푼도 없다. 앞으로 막노동이라도 해서 돈을 벌겠다고 다짐이야 했지만 실은 그렇게 막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본 적도 없다. 거기에 연휴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 세계여행 계획을 전혀 알지 못할 가족들 사이에서 쉬고 있는 시간은 나를 더 가소롭게 만들었다. 내가 지금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마음을 먹는 일이다. 현재 조건과 상관없이 나는 계속 마음을 깊이 쑤셔 넣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 먹은 일 자체가 애초에 현실적인 일이 아니었다면? 혹은 애초에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이라면?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의심이 드는 이유는. 내 꿈이 단순한 세계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꿈은 세계여행을 해서 유투브하기 이다. 25살부터 27살까지, 나는 세계여행에 가서 온갖 풍경과 바다, 산, 사막, 음식, 사람들을 좋은 카메라로 담겠다는 일념이 있었다. 계속해서 여행 브이로그 영상을 찾아보며, 어떻게 하면 나는 저 사람들보다 더 시네마틱하고, 더 영상미 있는 여행 브이로그를 만들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너머에 어떤 커리어적인 꿈이 내게 있었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 때는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 꿈이 흐릿하다. 유일하게 선명한 게 있다면 세계여행을 가서 영상을 만들겠다 라는 현재의 꿈이다. 때문에 과연 내가 세계여행을 가서 좋은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내 영상을 좋아해줄까. 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도 자연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현재 나의 상태에 대한 의심이다. 이 세계여행이라는 것을 반드시 하고 말겠다는 단단한 나의 상태에 대한 의심. 의심은 공고하게 굳어지고 닫혀 있는 것들에 바람을 통하게 만든다. 의심의 세기가 강하면 그 공고하게 굳어지고 닫혀 있는 것이 날라가겠지만, 의심이 적당하다면 꽤 중요한 순환을 일으켜 더 융통성 있는 것이 되게 만든다. 나는 보상받고 싶다. 꿈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보상. 사람들은 그 보상을 구하기를 두려워하고, 바로 찾을 수 있는 행복에 기댄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그 큰 보상을 구하고 싶었다. 내가 혼자 살아온 시간이 많다면, 내가 남들보다 더 독립적인 가치관을 쌓아왔다면, 내가 이렇게 멀리까지 나아갔다면. 나는 기꺼이 이 여정을 끝내지 않고 끝까지 가 보상을 누리겠다. 거기서 남들의 부러움까지 살 수 있다면 기꺼이 그 부러움도 사겠다. 누리지 못했던 시간들을 마음껏 누리는 시간들로 보상하겠다. 어찌보면 이 의심은 보상에 대한 의심인지도. 나는 늘 '내가 이런 보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에 대해서 의심했기 때문에.
시작 하기 직전의 두려움일 수도 있다. 난 아직 발걸음도 제대로 떼지 않았기 때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언제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 이미 난 마음을 충분히 확인했고, 충분히 그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한다. 세계여행에 대해서 생각한 게 벌써 6년이 지났으니까. 그 6년이라는 시간동안 이 세계여행이라는 꿈은 마음의 표면이건 깊은 내부이건 늘 있었으니까. 그것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없애버릴 이유는 없다. 내 삶의 바깥으로 꺼내주는 게 중요하지. 그러니 이제 내년 1월에 출발하기 위해 나는 발걸음을 디뎌야 한다. 하루하루 막노동을 해야 하고. 유투브 영상도 꾸준히 올려 새로운 채널을 잘 키워야 하고. 더 나은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카메라 장비도 구입해야 하고. 그리고 비현실적인 결과가 나타나야 내 계획을 이행할 수 있다. 내년 1월에 출발할 만한 자금을 모았으면서, 동시에 유투브도 꽤 성장해서 그 뒤로 여행 경비 걱정은 없을 만큼의 수익이 나야 현실이행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여행을 갔다가 계획한 일정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그 불확실한 모든 것들을 시작할 단 한걸음을 떼기 직전이기 때문에 그 한걸음에 필요한 모든 의심과 불안이 현재의 나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바람과도 같다. 간절히 원하는 일을 할 때의 나의 마음은. 지금까지 내가 세계여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느꼈던 의심과 불안들은 회오리 치는 바람과도 같았다. 세계여행을 하는 내가 땅에 발을 디디는데 필요했던 공기저항이다. 그게 거의 죽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죽을 것 같은 두려움, 죽을 것 같은 수치심, 죽을 것 같은 죄책감을 모두 뚫고 지금 이 땅에 나는 서있다. 이렇게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텅빈 땅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껌껌한 안개가 그윽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목적지만 선명하다면 어찌됐든 가게 되어있다. 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목적지만 선명하다면, 한 걸음 한 걸음 저항하는 의심을 뚫고 걸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