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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Nov 08. 2021

꿈을 꾸는 이들에게

새벽 기상은 일어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느냐에 의미가 있다. ‘매일 글쓰기‘가 애초의 목표였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 중에 ’올해엔 에세이집을 한 권 출간하고 싶다’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려면 글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글이라는 게 공장에서 기계 돌려 찍어내는 것이 아니다 보니 하루에 한 편, 혹은 일주일에 한 편을 규칙적으로 써내기가 힘들었다. 쓰는 날보다 쓰지 않고 넘기는 날이 많아졌고 쓰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글을 쓴 날에서 다음 글을 쓰는 날까지의 거리가 점점 어지고 있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애초에 계획을 세울 때부터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나’라는 사람이 계획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좋은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몰라서 발생했다. ’에세이집 출간하기’라는 목표는 막연하다. 그것을 위한 실천 방향을 구체적으로 정했어야 했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진 어느 시점에서야 어렴풋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했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다짜고짜 글쓰기를 일단 시작하자라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렇게 한다니 한번 흉내나 내보자는 마음으로.

    

일단 방향이 옳았다. 이전까지는 퇴근 후의 시간을 이용해서 글을 써 왔는데 그 시간에는 하루 동안 수고한 자신을 위해 상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스스로에게 ‘유튜브 보기’나 ‘인터넷 쇼핑하기’를 허락하면서 지친 몸과 고독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어 진다. ‘글은 내일 쓰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오늘에서 내일로, 내일에서 모레로 곰팡이처럼 번져갔다. ‘유튜브 보기’나 ‘인터넷 쇼핑’은 정말 악명 높은 시간 도둑이어서 ‘이것만 봐야지’하면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그런 세 시간을 보내고 나면 회의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책망하는 날들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것이 습관으로 굳어 자기부정의 감정이 내 일부로 자리 잡게 된다. 자기부정의 감정은 살아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 될 수 있으면 빨리 털어내야 한다. 어느 부분이 그런 감정을 유발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 모른 채 내버려 두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는 날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먼지처럼 작고 가벼운 것이었는데 먼지가 구르면서 몸집을 불리듯이 점점 부피가 커져서 나를 집어삼켜버리는 날이 온다. 그러니 알아차렸다면 그대로 두지 말아야 한다. 바로잡기의 한 방법으로서의 새벽 기상은 옳은 선택이었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잠자는 시간을 앞당겨야 했다. 1시~2시에 자던 습관을 10시~11시로 바꾸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다 보니 나에게 주는 휴식이라는 미명으로 쓸모없이 허비하는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일어나자마자 무조건 컴퓨터를 켰다. 새벽 기상의 목적이 뚜렷했기 때문에 비몽사몽 정신이 몽롱해도 일단 컴퓨터를 켜서 한글파일을 열고 새하얀 종이와 대면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순조로웠다. 시작이라는 건 그 자체가 주는 에너지가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깜빡이는 커서를 응시만 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글자 한 자 찍지 않고 백지만 바라보고 있는 것에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책이나 읽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건 나와는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꾸벅꾸벅 조는 날이 많아졌다. 글을 쓰는 것은 손가락을 움직이고 능동적인 사고가 필요한 작업이어서 쓰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또렷해진다. 그래서 글쓰기를 끝내고 책 읽기를 할 때도 졸리지 않았다. 그에 비해 책 읽기는 너무나 수동적이고 정적인 활동인지라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에서는 수면제를 먹는 것과 다름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대신 방법을 좀 바꾸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5시에서 8시까지 글을 쓰는 시간으로 정해두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세 시간은 빨리 간다.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시간을 정하는 것에서 분량을 정하는 것으로 방법을 좀 바꾸어 보기로 했다. ‘최소한 A4 한 장은 쓰자.’ 좋은 방법이었다. 역시 공부 시간을 정해두는 것보다 공부 양을 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공신들의 말씀이 옳았다. 머리에 글자 한 자 떠오르지 않는 날이 많았지만 그래도 뭐라도 상관없으니 그냥 아무 말이라도 써본다. 그러다가 정신이 맑아지면서 의도하지 않고 쓴 한 단어가 거미가 거미줄 뽑아내듯이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장이라는 약속을 지키는 시간들을 모으고 있다.    

  

이 습관이 몸에 배어 졸리면 잠이 들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싶다’는 꿈은 허황되고 얄팍한 것이었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다음은 시간과 세계에 맡겨야 하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새벽의 시간을 보냈다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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