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하고 용감한 코리안입니다.

자기소개 2

by 어거스트

(전편에서 이어짐)



1.jpg 우측 이미지: (좌로부터) 오빠 아빠 나. 엄마는 사진을 찍어주시는 중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교육받았다.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100% 한국 사람. 서른 중반이나 되어서야 한국을 떠나 살아온 덕분(?)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온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릴 적에 부모님은 나에게 두 가지 가르침을 주셨다.

엄마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시고 한국 무용을 취미 이상으로 즐기신 사랑스러운 여성인데, 나 또한 사랑스럽고 상냥한 여성으로 자라길 원하셨다. 엄마에게 늘 받았던 가르침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누구에게든 친절할 것.

아빠는 중앙부처 공무원(요즘도 이런 말을 쓰나요?)이셨는데 유복한 성장 배경과 유럽으로의 해외 출장이 잦은 직업 덕분인지 소위 말해 "열린 분"이셨다. 나에겐 늘 여자라고 해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없다면서, 집안 친척들이 모인 제사나 차례 자리에서는 관례를 깨고 내가 오빠와 함께 절하도록 항상 나란히 세우셨다. (당시 우리 집에서는 남자들이 먼저 절을 올린 후 여자들이 따로 절을 하곤 했다.)

엄마 아빠 덕분에 우리 집은 춤과 음악,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과 유적지에서 온 사진집과 엽서가 넘쳐났다. 문화적으로 풍부한 환경에서 자라게 해 준 점에 대해 늘 부모님께 감사한다.


엄마의 상냥함과 아빠의 (여자도) 하면 된다는 가르침, 그리고 문화적 풍부함이 나를 길러낸 건 맞는데, 그 결과물이 부모님의 뜻과 딱 맞아떨어졌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에 잘 매료되고 (품위유지비가 많이 드는 편), 모르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며, 나의 노력은 좋은 결과로 공정하게 보상받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진 어른으로 자랐다.

이 대체적인 낙관주의 탓인지 나는 인생의 방향을 좌우하는 큰 결정을 덥석덥석 생각 없이 내지르곤 했는데, 음.. 25살의 결혼과 26살의 출산 또한 그러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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