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과 첫 미팅을 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난 듯하다. 대표님께서 강조해 주셨던 것이 선수들의 이름을 빨리 파악하고 감독님이나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먼저 가서 인사하거나 하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스페인은 오히려 먼저 밝게 웃으면서 인사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귀띔해주셨다.
내가 만약, 한국에서 생활했다면 낯을 가린다는 이유로 절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냥 멀리서 안녕~ 혹은 안녕하세요만 했을 테다. 그리고 워낙 한국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하는 생활이 익숙하다 보니까 나도모르게 스페인 친구들을 만나도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라스 로사스 팀이 와서도 느꼈도 다른 마드리드 지역 팀들과 경기를 하면서도 느꼈는데 스페인에서는 모든 것이 '하이파이브'로 통했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인사하는 것이 문화이다. 근데,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서 하이파이브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눈치도 많이 봤다. 처음에 하이파이브를 먼저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선수들이 다가와서 하이파이브를 척척해줬다. 하이파이브가 참 매력이 있는 것이 작은 부위지만 상대방의 신체 일부와 나의 신체 일부가 접촉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사를 하면 서로 친밀감도 느껴지게 마련이다. D급 지도자교육 때, 아이들에게 하이파이브를 많이 해주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하이파이브를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스쳐갔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먼저 선수들을 기다릴 때가 아닌, 내가 늦게 도착하고 선수들이 나를 기다릴 때 하이파이브를 해야핼 때였다. 참 곤혹(?)스러웠다. 이때는 낯을 가리는 ISFP인 나에게 모든 선수에게 다가가서 하이파이브를 건네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아드리 감독님과 에두 수석코치님과 무섭게 생긴 에스코 코치님에게까지 인사를 먼저 해야 한다니... 참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ㅎㅎ
마침,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래도 ‘로마에 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이방인이니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큰 용기를 내서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무뚝뚝하게 인사를 받아주는 친구(선수들)도 있고 밝게 웃으면서 맞아주는 친구들도 있고 감독님께서는 ‘케딸’이라고 인사해주셨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애써 웃으면서 모든 인사를 했다. 그래도 막상 해보니까 할 만(?)했다. 이렇게 먼저 인사하는 ‘태도’는 나에게 많은 변화를 줬다. 사실, 나는 참 이상한 성격이다. 내가 먼저 보면 무조건 인사하는데 또 인사타이밍을 놓치고 서로 인사를 못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속으로 조금 서운해한다(지금은 아니에요^^) 아내는 그런 내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해줬다. 나도 아는데 막상 해보려니 참 쉽지 않았다. 이런 걱정이 앞섰던 듯하다. ‘내가 밝게 인사했는데 저 사람이 밝게 인사 안 해주면 상처받을 것 같다’ ㅎㅎ 참...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한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너무 본 것은 아닌지모르겠다.
스페인에서 내가 먼저 인사하는 태도를 통해 변화를 겪은 곳은 집과 훈련장이다. 우선, 에스코 코치님을 통해서다. 위에 언급한 ‘무섭게 생긴 코치’가 바로 에스코다. 에스코는 스콜스를 닮은 용모에 키도 어느 정도 크면서 목소리도 조금 독특하고 표정 변화도 많이 없어서 처음에는 많이 무서워했다. 그래도 내가 먼저 다가가서 웃으면서 인사하니까 한 1-2주 정도 지났을까, 에스코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래서 에스코와 나는 서로 마주칠 때마다 정말 행복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훈련장에서 서로 각기 다른 팀을 훈련 중일 때도 내가 항상 먼저 에스코에게 다가가서달려가서 웃음과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누군가 나를 향해 반갑게 인사해 준다’는 건 나에게도 좋은 일인데, 왜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반성하게 된다.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는 태도는 나의 일상에서도 크게 변화를 줬다. 이 변화는 내가 머무는 숙소의 경비아저씨와 그리고 집주인 할머님과의 관계였다. 나도 스페인어를 모르고 어른들도 스페인어를 모르니까 서로 멋쩍은 웃음으로만 때웠는데, 내가 먼저 스페인 인사를 외워서 인사를 건네니까 집주인 할머님께서도 경비 아저씨께서도 너무너무 좋아하셨다.
축구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제목에 언급한 ‘스페인 선수들이 세계 최고인 이유’는 분명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내가 찾은 이유는 바로 ‘하이파이브’였다. 라커룸에서 감독과 수석코치에게 격 없이 장난치고 하이파이브하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에서 독일 연수 중 만났던 TIM코치가 ‘We are family (선수와 지도자는 가족이다)’라고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단순하게 ‘하이파이브’에서만 이유를 찾는 게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이파이브’는 단순하지 않다. 라커룸에서 자유스럽고 편안함을 느낀 선수들은 경기장에서도 ‘자유로운 플레이’를 펼치고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을 내린다. 대신, 책임을 확실하게 진다. 우리 Las Rozas Juvenile B팀의 규율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지각하면 벌금 1유로’였다. 선수들은 해당 시간을 지키기 위해 시간엄수를 스스로 실천했고 훈련 중 누구보다 열심히 그라운드를 불태웠다. 이렇게 라커룸에서부터 자유로움을 느낀 선수들의 축구이기에 스페인의 축구가 세계 최고의 축구가 되는 것 아닐까? 한국의 라커룸 분위기도 조금 변하고 있는 추세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감독-코치-선수 등의 위계가 뚜렷한 문화에서 축구를 한다. 그런 문화 속에서 축구를 배우는 선수들은 감독과 코치의 존재만으로 ‘압박’과 ‘불편’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한국축구의 동전의 양면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양날의 검'을 잘 활용한다면 대한민국 축구도 지금보다 더 괜찮지 않을까.